신성한 관계 사립탐정 켄지&제나로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시작은 단순했다. 연쇄 살인마를 처리한 이후에 켄지와 제나로는 사무소 문을 닫고 쉬고 있었다. 그들은 몸과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켄지는 왼손 신경이 죽고 얼굴에 흉터를 입었다. 제나로는 총에 맞고 사랑했던 한 사람을 잃어버렸다. 사건 의뢰를 맡지도 않고 지내는 그들의 뒤를 누군가 미행했다. '충고 한 마디. 이 동네에서 누군가를 미행하려면 절대 핑크색 옷을 입지 말 것'이라는 경쾌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 『신성한 관계』는 그들이 전보다 절대적인 믿음 안에서 움직이는 관계로 나아갔음을 보여준다. 


  범생이와 깐죽이라는 별명을 붙인 그들이 다가와 탐정 콤비를 납치해 간다.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풍모를 풍기는 곧 죽어가는 트레버 스톤이 그들을 기다린다. 트레버는 사건 의뢰를 한다. 납치 후 의뢰라. 켄지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상실을 경험한 제나로는 트레버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차 사고가 나고 괴한이 트레버의 아내를 쏘아 죽인 후 자신에게도 총알을 박아 넣었다. 사건 이후 하나밖에 없는 딸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사라져 버렸다. 사라진 딸을 찾아 줄 것. 수임료로 현금 5만 달러를 준단다. 즉각 사건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켄지. 


에버렛 햄린의 말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명예가 멸종되고 있어. 아니, 늘 이렇게 멸종의 길을 걸어왔을 것이다. 더 심각한 건, 명예 자체가 처음부터 환각이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용의자야. 모두가 용의자.

문득 그 말이야말로 내 좌우명으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트레버의 딸 데지레를 찾기 위해 도시의 가장 유명한 탐정 제이가 먼저 수사를 하고 있었다. 트레버는 제이 역시 실종되었다고 말한다. 사립탐정이 되기 위해 켄지는 제이의 밑에서 일을 배웠다. 켄지에게 있어 제이는 제나로와 비슷한 존재였다. 사진으로 봐도 아름다운 데지레를 찾기 위해 그녀가 우울증에 빠져 거리에 앉아 있던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그녀는 연인과 어머니를 잃었고 슬픔에 빠져 살았다. 데지레는 거리에서 발견한 진리와 계시 교회가 운영하는 슬픔 치유원으로 들어갔다. 그 이후에 행적이 묘연했다. 제이 역시 거기까지 수사를 해 나갔다. 


  사이비 종교 집단에 빠진 딸을 구하기만 하는 되는 것으로 여긴 일은 점점 복잡해진다. 제나로는 사라진 제이와 데지레를 찾다가 의문과 예감에 빠진다. 켄지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진실을 꽁꽁 숨긴 채 사지로 몰아넣는 사람들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것을 자각하자마자 사건은 묘한 국면으로 돌아간다. 우리의 사립탐정 켄지와 제나로는 서로가 가진 아픔과 상실을 마주 본다. 사라진 딸 찾기 사건 의뢰를 맡으며 그들은 '신성한 관계'로 발전한다. 단순한 파트너, 제일 친한 친구, 애인도 아닌 전부로 향해 간다. 


  나쁜 놈 위에 나쁜 놈. 『신성한 관계』는 누가 더 나쁜 놈인지를 놓고 대결한다. 애초에 그들에게 현금과 함께 주어진 의뢰는 거짓에 불과했다. 돈과 욕심 앞에 사랑을 이용한다. 사랑에 배신당한 이는 죽어서까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비밀 암호를 보내온다. 사랑으로 한 사람을 아작 냈다고 생각했지만 탐정의 두뇌를 만만히 봐서는 안된다. 제이가 무덤에서 보내온 암호로 켄지는 이 판에서 누가 악역인지를 가려낸다.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이라고 해서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 데니스 루헤인의 문장은 아름답고 완벽하다.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실체를 드러내는 비밀의 반전 때문에 훌륭한 문장이 묻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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