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소설가의 사물 - 사소한 물건으로 그려보는 인생 지도
조경란 지음 / 마음산책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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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님이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뜨거운 여름 지나고 가을에 받은 『소설가의 사물』은 작가 님 표현대로 한 편의 편지가 되어 제 가슴에 날아왔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은 무너지고 사라지고 다시 생겨납니다. 그 마음을 다 잡는 일이 하루를 살아내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오래전부터 저는 작가 님의 소설을 좋아해서 열심히 읽은 소리 없는 독자입니다. 스무 살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방 안에서 책만 읽었다던 작가 님의 내밀한 고백이 저를 더 소설의 세계로 이끌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방이 책으로 가득한 옥탑방에서 자매들과 부모님이 자는 사이에 책을 읽고 글을 쓴 기록을 읽으며 문학으로 향하는 길에 서 있곤 했습니다. 작가의 소개 말에 실린 열일곱 번째 책인 『소설가의 사물』을 방금 다 읽었습니다. 오전에는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오후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집으로 돌아와 쉬는 하루를 가지고 있습니다. 종이책을 좋아했는데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해 처분한 뒤로는 전자책을 읽고 있습니다. 『소설가의 사물』이 전자책으로 나오길 기다려 구매했습니다. 사자마자 읽어 버렸습니다.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하루에도 필요한 물건들은 많습니다. 어제저녁에는 이 가을과 겨울에 들기 좋은 텀블러를 덜컥 구매해버렸습니다. 작가 님도 텀블러 두 개를 번갈아 사용하신다는 부분을 읽고 사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취향이 같다는 건 놀라운 일이니까요. 헐거운 마음을 다잡고 일하러 갈 때는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텀블러에 물을 담고 역시 귀여운 캐릭터 필통과 수첩을 챙겨 가방에 넣습니다. 발걸음이 가벼워지길 기다립니다. 


  『소설가의 사물』에서 소개해주신 소설과 영화, 사물들의 이야기를 잘 기억해 놓겠습니다. 그중에 제가 가장 먼저 읽고 싶은 작품은 록산 게이의 「언니가 가면 나도 갈래」입니다. 전자책으로는 없네요. 종이책으로 읽어보려고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저는 『소설가의 사물』을 읽고 작가 님의 일상과 표정을 조금은 알아버린 듯하여 친밀감이 생겼습니다. 예전에는 『우리는 만난 적이 있다』를 읽고 같은 제목으로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문학이 전부였습니다. 문학이 아니면 안 된다는 철부지로 살았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고 부드러운 표정을 지을 줄 알고 상심한 일이 생겨도 웃어넘기는 처세가 생겼습니다. 그러니 문학이 아니면 어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라며 욕심을 버리고 있습니다. 욕심을 버린다고 썼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가끔은 마음이 아프고 입술을 깨물곤 합니다. 


  상대를 정해 놓고 편지를 써 본 적이 오래입니다. 다시 생각해 봅니다. 저는 오래도록 누군지도 알 수 없는 정체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단 한 번도 답장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쓴 편지에 주된 내용은 '여기 있기에 문제없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편지의 수신인은 문학입니다. 새침하고 말이 없는 신경질적인 그에게 저는 구애의 문장을 쉴 새 없이 쓰고 있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여기 있기에 문제없이 살고 있다는 내용을 받은 그는 얼마나 우스울까요. 매번 좌절하고 혼자 실망하고 망설이는 제가 한심해 보일 텐데 그는 말없이 묵묵히 제 수다를 들어주고 있습니다. 


  『소설가의 사물』에 담긴 내용을 읽어가며 우리는 만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의 낯선 거리에서 움츠러드는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문구점에 가서 연필, 엽서, 공책을 고르는 풍경이 떠오릅니다. 손수건은 늘 두 개씩. 티셔츠를 소중하게 생각하며 입는 가족들의 등을 바라보는 일. 조카의 내면 일기를 읽으며 마음이 뜨거워지는 일. 우리의 일상이 닮아 있다고 느끼는 건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살아 있기에 소설을 읽고 사물에게 의미를 부여해줍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책상에는 어제 도착한 신간 책들과 유리컵 두 개, 필통과 공책, 마스킹 테이프, 외출용 노트북이 있습니다. 사 놓고 먹지 않은 초콜릿 과자도 하나 있네요.


  우리를 꿈꾸게 하는 사물들 곁에서 느리지만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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