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노후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
박형서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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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곱등이를 처리하고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 장길도는 혼잣말을 한다. 실은 속으로 생각하려던 것이었는데 말이 되어 터져 나왔다. 


"수련 씨, 대체 왜 그랬어요."

혼잣말을 하려던 것이었는데, 입을 여는 순간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내가 국민연금 들지 말라고 했잖아요, 왜 내 말을 안 들었어요. 왜요……."

(박형서, 『당신의 노후』中에서)


  박형서의 소설 『당신의 노후』의 한 장면이다. 제목만 놓고 봤을 때는 고령화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그리고 있는 줄 알았다. 읽어보면 더 어둡고 암담하고 끔찍하다. 출산율은 낮고 노인 인구 비율은 높아지는 사회의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다. 고령화 사회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소설이란 그런 것이다.


  장밋빛 미래를 설계하는 것보다 처절하고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반성하게 한다. 어제보다 오늘이, 내일 보다 오늘이 중요하다.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 지나간 것과 다가올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젊음에 미련을 두기 보다 늙음에 불안해하기 보다 지금 당신의 삶에 연민을 느껴야 한다. 『당신의 노후』는 초고령화 사회를 살아갈 한국의 시민들에게 그렇게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국민연금공단의 외곽 공무원으로 40년 근무를 마치고 퇴직한 공무원 장길도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펼쳐진다. 그의 아내는 폐 질환으로 요양원에 누워 있다. 장길도 보다 아홉 살 많은 아내 앞으로 장미꽃 한 다발이 배달되었다. 장미꽃 안에는 '한수련, 노령연금 100% 수급을 축하한다'라는 말이 적힌 카드가 있었다. 언제 아내가 국민연금에 가입했을까.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는데. 아내는 환하게 웃으며 국민연금이 수령액이 모인 통장을 보여주며 집을 팔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아내가 연금 수령자라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장길도는 바빠진다. 청년 세 명이 노인 일곱 명을 부양하는 사회에서 해결책이란 국민연금공단의 특별 임무 밖에 없다. 연금 100% 수령자를 찾아가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게 하는 임무. 장길도는 오랜 시간 동안 국민연금공단의 다른 업무를 맡아왔다. 과다 수급자를 찾아가 사고사, 자살로 위장하는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은 수급자를 사찰, 감시, 미행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소설은 노인들의 인생사를 한 챕터씩 들려준다. 그들이 태어나고 살고 죽기까지의 간단한 신상을 들려준다. 죽음은 소설 안에서 장길도와 그가 속한 국민연금공단, 즉 국가에 의한 일임이 드러난다. 아흔 살 노인이 택시 운전을 하고 백세를 사는 것이 흔하게 된 세상에서 국가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공권력을 사용하여 은밀한 죽음을 실행한다. 장길도 역시 국가의 명령으로 그 일을 해 냈다. 능숙하게 했다. 사고 없이 정년을 맞이해 이제 아내의 간병을 하며 지낼 요량이었다.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이 적색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걸 알면서 장길도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한다. 아내를 외곽 공무원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임무가 그 자신으로부터 떨어졌다. 젊음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늙음이란 제거되어야 하는 대상이라는 무시무시한 착상에서 출발한 『당신의 노후』는 실패의 소설이다. 젊음과 늙음 그리고 사랑의 실패. 


  65세 이후를 대비하느라 먹고 싶은 것 참는 당신의 오늘도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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