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덤에 묻힌 사람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마거릿 밀러 지음, 박현주 옮김 / 엘릭시르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찰리 채플린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이 문장을 가지고 마거릿 밀러의 소설 『내 무덤에 묻힌 사람』을 들여다보겠습니다. 화목하게 보이는 부부의 아침 풍경입니다. 카메라의 렌즈를 줌으로 잡아당겨 봅니다. 짐은 데이지에게 신문 기사를 읽어줍니다. 폭풍 전선이 형성됐으니 이곳에도 비가 내리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데이지의 반응이 이상합니다. 여느 아침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듯 몽롱합니다. 


  짐은 데이지의 심상찮은 기색을 살핍니다. 왜 기분이 좋지 않은지 묻습니다. 데이지는 망설이다 꿈 이야기를 합니다. 간밤에 꾼 꿈의 내용이란 자신이 묻힌 무덤에 가서 묘비를 봤다는 것입니다. 묘비에는 '데이지 필딩 하커, 1930년 11월 13일 출생. 1955년 12월 2일 사망'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녀는 4년 전에 죽은 사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짐은 그건 꿈속의 일이라며 지금은 살아 있지 않느냐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데이지는 가볍게 넘길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죽은 날짜에 비밀이 있다는 예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소설의 시작은 그들이 사는 집 주변의 풍경을 보여주고 생활의 소리를 들려줍니다. 멀리서 본다면 그들 부부의 일상은 기쁘고 찬란한 희극입니다.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고 배려하는 부부의 모습이지요. 짐은 토지 측량사로서 성공했습니다. 아내를 위해 집을 지어 이사도 왔습니다. 가벼운 뇌졸중을 앓은 장모를 위해 별채를 따로 두기까지 했습니다. 마을에서 짐의 평판은 상당히 좋습니다. 데이지 역시 그런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여성입니다. 조용하고 그런대로 굴러가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요.


  부부의 삶을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비극은 시작됩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들의 일상이 금이 가게 되는 건 데이지가 꾼 꿈 때문입니다. 데이지는 엄마와 남편의 만류에도 4년 전인 12월 2일의 기억을 모으는 작업을 합니다. 꿈속에서 자신이 죽었던 그날 현실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 하죠. 사실 데이지의 부모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따로 살기 시작했으며 아버지라는 사람은 가끔 편지를 보내와 돈을 요구합니다. 데이지는 순하고 착한 성격이라 아버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데이지가 사는 동네에 아버지가 찾아옵니다. 그는 술집에서 난동을 부려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보석금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데이지에게 전화를 걸어오지요. 데이지는 아버지의 보석금을 대신 내준 피나타라는 이름의 탐정을 만납니다. 그를 통해 잃어버린 그날의 기억을 찾습니다. 꿈속에서 죽었다고 기록된 그날 데이지의 하루는 대체 어떤 빛깔이었을까요.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가면서 드러나는 데이지의 비밀은 비극을 향해 달려갑니다. 평범하게 살고자 했던 데이지에게는 위선과 가식으로 둘러싼 견고한 울타리가 둘러 쳐져 있었던 거지요.


"그럼 이 허튼짓은 당장 그만둬라, 알겠니? 우리는 탐정을 고용하는 그런 사람들이 아냐. 뉘앙스가 무척 추잡하잖니."

"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람들인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어떤 사람인 척 가식을 떨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만."

"가식이라고? 세상에 점잖은 모습을 내보이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 거냐, 가식이라고? 글쎄, 난 아니구나. 나는 그걸 상식과 자존심이라고 부르지."


  데이지와 엄마가 나누는 대화입니다. 데이지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수록 강인해져갑니다. 가정이라는 역할극에서 맡았던 조신하고 말 잘 듣는 아내와 딸의 배역을 걷어차 버립니다. 가식이라는 가면을 벗어버리고 맨 얼굴을 당당히 드러낼 준비를 합니다. 그에 반해 데이지의 엄마는 가식의 다른 이름이 상식과 자존심이라고 생각하지요. 본모습을 드러내길 거부합니다. 


  로스 맥도널도와 일찍 결혼한 마거릿 밀러는 결혼 초기에 우울증을 앓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그녀에게 남편은 추리 소설을 잔뜩 가져다주지요. 그녀는 그 책들을 읽으며 소설을 쓸 결심을 합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고 집안일을 하면서 보람도 성취도 없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는 생각은 종종 우울로 발전합니다. 마거릿 밀러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병을 이겨냅니다. 작가의 실제 삶은 『내 무덤에 묻힌 사람』에 반영됩니다. 데이지의 각성은 소설가 마거릿 밀러의 각성입니다. 소설은 추리 형식을 빌려와 인간이 가진 욕심과 비겁함을 이야기합니다. 당시 사회에 만연된 인종 차별적인 요소도 꼬집습니다. 


  자신이 죽는 꿈으로 인해 데이지의 현실은 바뀝니다. 꿈에서 죽은 그녀는 현실에서는 살고자 노력합니다. 그녀 자신이 묻힌 무덤 속에서 보내온 호출에 응답한 데이지는 반전에 해당하는 비밀을 알아가는 것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상식과 틀을 깨뜨립니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까레리나』의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불행하다." 『내 무덤에 묻힌 사람』을 읽으며 불행한 가정의 저마다의 사정을 알아가보는 탐험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물론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과 평화가 넘치시길 바라는 것 잊지 않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