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걸어도 나 혼자
데라치 하루나 지음, 이소담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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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다. 그리고 생각했다. 부부든 친구든 같이 있다고 '둘'이라는 새로운 무언가가 되지 않는다. 그저 외톨이와 외톨이일 뿐이다.

(『같이 걸어도 나 혼자』中에서, 데라치 하루나)


  도리스 레싱의 단편 「19실로 가다」의 주인공 수전은 쌍둥이가 학교에 들어가는 날만을 기다린다. 그래야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밖에서 보낼 수 있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가정이 아닌 자기만의 삶을 꾸려나가고 싶었다.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임신을 했다. 아이들이 클 때까지 그녀는 단 한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셔츠나 원피스를 다림질하고 케이크를 만들어 먹는 자신의 모습을 창가에 앉아 들여다보는 동안 외로운 여인이 있다는 걸 실감했다. 집안 곳곳에 적이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편에게 말해보았지만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돌아왔다.


  쌍둥이들의 방학 동안 그녀는 화를 내고 소리를 질렀다. 방학이 끝나고 좋아졌지만 두 달의 방학이 다시 찾아오자 그녀는 불안해져서 욕조에 앉아 심호흡을 해야 했다. 꼭대기방을 청소하고 그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혼자만의 방이라고 해도 그곳은 집이었다. 꼭대기방은 가족실로 변했다. 방이 필요했다. 집이 아닌 곳에서 혼자 쉴 수 있는 방. 수전은 작고 조용한 호텔을 발견했다. 낮에만 방을 빌리고 싶었다. 하룻밤 숙박료를 지불하고 방을 빌렸다. 그곳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혼자라는 느낌에 빠졌다. 


  소설의 결말을 이야기하지 않겠다. 중요한 건 우리는 각자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이니까. 19호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당신의 상상대로 과격하고 뻔하게 흘러갈까. 수전은 단지 방 하나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데라치 하루나의 소설 『같이 걸어도 나 혼자』는 두 여성의 삶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19호실 같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유미코는 서른아홉 살이다. 아이는 없고 남편과는 별거 중이고 계약직 사원이었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 일자리를 찾고 있다. 수예 교실에 다니면서 친해진 선생님의 아들을 소개받아 결혼을 했다. 한 번 결혼한 경력이 있다는 걸 들었을 때는 이미 그가 좋아진 뒤였다. 


  딸이 하나 있는데 전처가 데려갔다. 아이가 크자 이것저것 말썽을 피웠다. 친엄마가 아닌 유미코의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와 해결해 달라고 했다. 남편은 딸아이의 전화를 받으면 곧장 달려 나갔다.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고 이혼을 하기 전 별거를 권한 건 시어머니였다. 그 뒤로 유미코는 집에서 나와 이름만 예쁜 메종 드 리버 맨션에서 살아가고 있다. 


  유미코가 이사 올 때 옆집에 사는 카에데는 그녀가 궁금해서 계속 쳐다보았다. 단정하고 담백하게 생긴 여자였다. 음식을 자주 해먹는지 맛있는 냄새가 났다. 카레 냄새에 취해 맛있겠다고 혼잣말을 하고 있을 때 유미코가 같이 먹을래요라고 말해줘서 그때부터 친해졌다. 요코지 절임에서 오 년 넘게 일했다. 마흔한 살인 카에데는 혼인 신고는 하지 않은 채 남자와 살았었다. 결혼 예정인 남자가 전근하게 되면서 따라왔다. 당시 남자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 당분간 입적은 안된다고 해서 그대로 따랐다. 동거하는 동안 사이가 나빠졌다. 서로의 안 좋은 점만 보였다. 싸움의 횟수는 잦아졌고 이대로 헤어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로 연애 센서를 작동해가며 심각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보통이라고 부르는 삶이 아닌 채 살아가는 그녀들은 여행을 떠난다. 목적은 유미코의 행방불명된 남편을 찾아가기. 두 여성은 함께 여행을 떠나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꼬여 있는 삶의 타래를 풀어간다. 그 나이가 되도록 결혼하지 않느냐는 질문. 결혼했는데 아이는 왜 갖지 않느냐는 걱정을 가장한 의문. 기분 나쁜 물음표를 바로 펴서 느낌표로 만들어가는 여행에서 나는 그녀들과 하나가 된다. 성별과 종교, 인종과 빈부로 구분 짓는 인간 세계의 냉혹함에서 벗어난다.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 볼 수 있는 용기와 실천을 『같이 걸어도 나 혼자』를 읽는 동안 얻을 수 있었다.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 사랑이라고 했다. 유미코와 카에데가 바다를 바라보며 일상으로 돌아올 결심을 했듯이 나 역시 묵묵히 삶의 정면을 응시할 것이다.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게 아니다. 하나와 하나가 만나 둘이 된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둘에게는 각각의 19호실이 필요하다. 그래야 같은 곳을 보며 걸어갈 수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보통이라는 틀에 묶이지 않은 그녀들이 살아가는 '메종 드 리버'로 초대한다. 그곳에는 튀긴 것을 좋아하고 혼자 산책하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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