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E. W.
김사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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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는 썩었다. 부조리하고 불평등하다.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의 이면에는 불의가 도사리고 있다. 파괴된 세계에 남아 있는 건 서로를 미워하는 인간들이다. 바퀴벌레도 있다. 인간이 바퀴벌레가 된 건지 바퀴벌레가 인간의 탈을 쓰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인간과 바퀴벌레는 끝이라는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 공존한다. 절망을 숨기고 상대가 쥐고 있는 손에 희망이라도 남아 있을까 두려워하는 인간이 그리는 세계, 김사과의 장편 소설 『 N.E.W. 뉴』는 핏빛으로 물든 지독한 현실을 그리고 있다. 


  1991년생 정지용의 탄생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한 인간을 둘러싼 가능하지 않은 세계를 조망한다. 정지용의 아버지는 게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루머를 전해 들은 정지용의 엄마 은미라는 일찍 산통을 했다. 여자들 곁에서 태어난 정지용은 아무 부족함 없이 자랐다. 게이라는 소문도 불사하고 다시 회사를 살린 아버지 덕분이었다. 태어나기 전부터 설계된 인생대로 정지용은 교수를 부모로 둔 최영주와 결혼을 했다. 


  최영주 역시 부유한 집안의 자식이었다. 당당하고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들어본 일이 없는 여자였다. 완벽한 부부의 조합. 신혼여행을 다녀와 호텔에서 잠시 지내다 정지용의 아버지가 지은 집으로 들어간다. 일이 있다고 나가는 정지용은 사실 운동을 다니는 것이었고 무료함을 달래려 최영주는 백화점 쇼핑을 다닌다. 그들이 살아가는 주거 공간은 특이한 곳이었다. 5평짜리 원룸에서 200평에 달하는 펜트하우스까지. 입주민들의 동선과 생활 방식은 CCTV와 센서로 통제된다. 지나친 소음, 냄새, 공공장소에서의 소란을 기록한다. 경고가 누적되면 거주인 전용 웹사이트 사용이 제한된다. 이러한 조치는 75평 이하의 주거민들에게만 해당한다. 


  가난한 자와 부자는 섞여서도 안되지만 떨어져서도 안된다는 정지용의 아버지, 정대철의 신념이 담긴 주거 빌딩 안에서 유령이 탄생한다. 이하나는 고등학교 졸업 후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공부도 못하고 뚱뚱한 친구가 인터넷 방송을 하며 유명해졌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술김에 방송을 시작한 이하나는 자동수면녀라는 컨셉으로 대박을 쳤다. 한 달 수입은 2~3백만 원. 고시원을 탈출해 정대철이 설계하고 만든 메종드레브의 5평 원룸으로 들어간다. 


  서민과 부자가 어울려 산다는 기이한 메종드레브 안에서 예감했겠지만 정지용과 이하나는 만난다. 반경 5킬로미터 안에서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이며 허리를 펴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 정지용은 가정부 차림을 하며 돌아다니는 이하나를 호기심 있게 관찰한다. 뜬금없는 정지용의 고백으로 이하나는 그의 세컨드가 된다. 스물여덟의 정지용과 스물둘의 이하나가 보여주는 한 편의 로맨틱 코미디는 피와 구덩이가 등장하는 잔혹 복수 호러로 장르가 바뀐다. 

 

  김사과의 소설에 서사가 더해진 것이 반갑다. 그가 그리는 세계는 친절하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억지로 화해를 요구하거나 용서라는 위악을 떨지도 않는다. 욕망에 충실하고 욕심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천오백만 원짜리 팔찌를 사서 상자는 못생겨서 버렸다고 말하며 건네주는 인물에게서 연민을 느끼지 않아도 다행이다. 돈보다는 사랑이라고 권태에 찌든 채 이제 와 울고불고 매달리는 인간에게 통쾌함까지 느끼게 한다. 


  신경학 neurology, 전기 electricity, 제2차 세계대전 World War 2이 현대 세상을 결정했다는 정대철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볼까. 이에 덧붙여 본다. 소설 novel, 교육 education, 감시 watch가 미래의 판을 짠다. 이 세계는 더 이상 새롭지 않으며 진짜의 얼굴을 가장한 가짜가 난립한다. 발전, 혁신, 개혁을 말하는 자를 경계하라, 김사과의 소설은 합법적인 가짜의 얼굴로 말한다. 비뚤어진 청춘의 얼굴을 빛 속으로 끌어내는 『 N.E.W. 뉴』의 세계는 참담해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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