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로니아공화국
김대현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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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로니아 공화국이 있다. '한반도 최남단 마라톤에서 남쪽으로 365킬로미터, 중국 저장성 저우산에서 동쪽으로 433킬로미터, 일본 가고시마현 구마게에서 서쪽으로 343킬로미터, 일본 오키나와현 이헤야에서 북서쪽으로 326킬로미터 지점에 건국'된 국가 아로니아. 한일공동개발구역, 흔히 7광구라고 불리는 곳에 세워진 나라이다. 김대현의 장편소설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의 배경인 아로니아는 허구의 공간이 아니다. 석유와 가스가 흑해 유전과 비슷한 72억 톤이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 추측되는 그곳은 10년 후인 2028년에 한일공동개발구역 협정이 만료된다. 


  소설은 아로니아 대통령 김강현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동구만화방에서 야구를 보다가 텔레비전을 깨 먹은 주인을 위해 삥을 듣는 김강현. 그와 동네 친구들의 아지트인 만화방의 주인이 실의에 빠져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컬러텔레비전을 마련해주고자 한 동네 친구들. 다들 말은 해 놓았지만 모금할 돈이 없었다. 김강현은 처음에는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적성을 찾은 듯 학교 애들을 상대로 돈을 뜯었다. 


  박민규라는 녀석이 김강현의 눈에 계속 보였다. 그러니 돈을 안 뺏고 베길 수 있나. 볼 때마다 돈을 받았다. 그날도 박민규를 때리고 있었다. 신나게 때리고 있는데 검은 정체가 다가왔다. 뒤이어 타격. 김강현은 정신을 잃었다. 아버지였다. 친구들 돈을 뺏고 있는 장면을 본 아버지는 김강현을 죽도록 팼다. 오죽했으면 맞고 있던 박민규가 김강현의 집으로 달려가 엄마를 불러왔을까. 김강현은 맞아서 퉁퉁 부은 얼굴로 그동안 삥을 뜯은 집에 돌아다니며 사과를 했다. 가슴에는 '나는 깡패 새끼입니다'라는 팻말을 달고서. 아버지와 엄마는 돈을 물어 주었다. 


  김강현의 청소년기는 삥과 합기도 그리고 성당의 세계였다. 아버지는 김강현을 합기도장으로 보냈다. 무술을 연마하고 호연지기를 기르라던 아버지의 뜻과는 다르게 기가 막히게 예쁜 누나 강수영을 만나면서 김강현의 인생은 오로지 한 여인의 마음을 얻기 위한 순애보로 가득하게 되었다. 그녀가 다니는 성당에 들어가 미카엘라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그녀가 공부를 잘한다는 소문을 듣고 공부를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서 재능을 발견했다. 암기왕. 


  뭐든지 한 번에 모든 외워졌다. 외우고 또 외워서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갔다. 강수영을 따라 정치학과에 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누나가 싫어할까 봐 법학과를 지원했다. 돈 많은 사람들을 변호해 주는 변호사는 싫고 판결문으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판사도 싫었다. 사건을 수사하고 범인과 싸우는 검사가 되기로 했다. 검사로 잘 나가던 김강현은 유럽 간첩단 사건을 무죄로 구형했다. 그날 김강현은 부장 검사실에서 싸웠다.


  검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살림의 재능을 다시 한 번 발견하고 있을 때 송성철이 찾아왔다. 그는 '큰 놈 하나 작은 놈 하나' 보고서를 들고 왔다. 그때부터 김강현은 한국이 아닌 새로운 국가 아로니아를 건설할 계획에 동참한다. 


  한국이 싫어서 국가를 만드는 거냐? 아니다. 김강현과 친구들은 재밌고 신나는 국가의 땅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이유로 뭉쳤다. 한일공동개발구역 협정으로 대륙붕 탐사 중 발견한 봉우리 2개와 평평한 해저면을 발견한 송성철과 라파엘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기로 한다. 나중에 그곳에 인공섬을 만들어 재밌고 신나게 놀자는 계획을 세운다. 결국 한국과 일본은 유전 개발에 손을 떼고 바닷속의 비밀은 그들만이 가져간다. 


  국가의 구성 요소는 국민, 주권, 영토. 소설은 한국, 중국, 일본의 분쟁 지역 동중국해인 수중 암초를 발견한 인물과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한 김강현을 만나게 하면서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제시한다. 영토를 완성하고 음료수 병을 보고 만든 이름인 아로니아를 건국하기까지 숨 가쁜 과정을 후반부에 보여준다. 부패하고 불법이 판을 치고 법보다 돈이 가까운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들쑤시는 것보다 의무만 잔뜩 진 국민이 아닌 의무와 권리가 조화롭게 부여받은 시민들이 살아갈 유토피아를 그린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떠들어 대지만 그 말을 믿는 국민은 없다. 『나의 아로니아 공화국』은 국가라는 이름 아래 국민으로 힘들고 의무만 강제된 채 살아가는 우리를 아름답고 평화로운 인공섬으로 초대한다. 


  과연 2028년 한국은 동중국해 대륙붕에 묻혀 있는 자원을 순조롭게 개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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