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가키야 미우 지음, 고성미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남편이 죽었다. 슬프지 않다. 15년을 함께 살았다. 시집 식구들은 그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다행히 고모는 울지 않는 '나'를 걱정해 준다. 차라리 우는 사람은 걱정이 덜 된다는 것이다. 망연자실한 채 있는 사람이 가장 위험한 법이라고. 어렸을 때 엄마는 '나'를 주산 학원에 보냈다. 남들처럼 피아노나 바이올린 학원이 아닌 단순히 가게 단골손님이 주산 학원 원장이라는 이유로. 그 덕분인지 암산이 빠르다. 


  자식이 없는 남편이 남긴 소액 보험금. 남편의 사망으로 갚지 않게 될 주택 융자금. 지방지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동안 벌 수 있는 월급. 장례식장에 앉아 돈 계산을 빠르게 하고 있다. 여전히 울음은 나오지 않는다. 함께 사는 동안 남편은 외근과 야근으로 함께 저녁을 먹는 횟수가 드물었다. 기념일은 넘어갔고 서로에 대해 불만 사항이 있어도 말하지 않았다. 


  남편이 죽은 날도 도쿄로 출장을 갔다고 믿었다. 회사 직원이 알려온 장소는 살고 있는 도시의 호텔이었다. 충격. 장례식을 가까스로 치르고 시댁에 불려 갔다. 시어머니는 남편의 불단을 최고급으로 주문해 놓았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나'의 집에 들여놓겠다고 한다. 짐이 적은 곳이고 언제든 찾아가 들여다보고 싶다는 이유였다. 할 수 없이 다다미 방에 크고 무거운 불단을 들여놓았다. 


  가키야 미우의 소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나'의 이름은 다카세 가요코. 결혼과 동시에 이토우라는 성 대신 남편의 성을 따랐다. 직장에서도 피트니스센터에서도 다카세 씨라고 불리는 게 어색하지 않다. 가요코는 남편의 죽음과 동시에 비밀을 떠안게 됐다. 죽은 남편은 호텔에서 급사했다. 남편의 동료가 사실을 알려왔다. 도쿄 출장지가 아니었다. 왜 호텔에 간 것일까. 


  남편의 분향을 이유로 사오리라는 청순한 여자가 찾아와 오래 기도를 한다. 왜, 왜 저러는 것일까. 기도가 끝나고서 한다는 말이 남편의 유품으로 잠옷을 달라고 한다. 기막히다. 순간 거짓말을 한다. 잠옷은 내가 입고 자서 안 된다고. 불길한 예감은 적중한다. 남편의 유품 상자에서 꾸준히 사오리에게 송금한 내역이 담긴 통장을 발견한다. 도대체 무슨 사이였길래 적지 않은 돈을 보냈단 말인가. 


  생각 하나마나 그들은 부인인 나 몰래 바람을 피웠던 것일게다. 남편의 죽음 이후 시어머니는 가요코가 살고 있는 집에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린다. 불단에 분향을 한다는 이유로. 불도 켜지 않고 남편의 서재에서 남편 옷을 끌어안고 울고 있어 깜짝 놀랐다. 치매가 분명한 시아버지, 히키코모리 시누이, 집안의 명예를 중시하는 시어머니에게서 가요코는 며느리 역할을 졸업하기로 한다. 


  남편이 죽은 후에 배후자의 친족과 인연을 끊고 같은 묘에 묻히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인척관계종료신고서'를 제출하기로 결심한다. 가요코는 결혼 전의 성으로 돌아가기 위한 '구성회복신청서'도 함께 낸다. 아침 드라마 같은 구성으로 한 번 읽으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읽을 수밖에 없는 소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은 생활 밀착형 소설이다. 


  가요코가 걱정하는 일상이나 고민이 낯설지 않다. 부유한 가문의 일원으로서 살아온 시부모님은 가요코의 파트타임 일을 가볍게 여긴다. 성탄절을 함께 보내자고 하고 일하는 곳에 이야기해서 이탈리아 여행에 가주기를 바란다. 시아버지의 코골이가 심해 각방을 쓸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남들 눈에 이상해 보이지 않느냐는 이유다. 며느리와 함께 자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시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가요코는 산소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이 올까. 시월드에서 현명하게 바다가 보이는 빨간 예쁜 집으로 완전하게 돌아올 수 있을까. 남편의 비밀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악당도 완벽한 착한 사람도 나오지 않는 소설에서 독자는 공포와 스릴을 느낀다. 일상이 이토록 무시무시한 비밀로 이루어진 것이었나. 


  담백하고 쉬운 문체로 우리의 오늘을 그리는 작가 가키야 미우의 소설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을 통해 그럼에도 당신의 내일에 박수를 보낸다는 따뜻한 응원을 받는다. 책을 덮고나서야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중간에 읽다가 고구마 열 개를 먹은 듯 답답해질 때가 있다. 사이다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키고 읽다 보면 소심하게나마 파이팅이라고 가요코 씨에게 말해줄 수 있다. 


  소설은 며느리, 부인, 딸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기만을 바라는 사회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이름을 가진 '나'를 찾아가는 고군분투기를 그리고 있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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