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
곽재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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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 책을 읽으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을 가지며 책을 읽지는 않는다. 『유혹하는 글쓰기』, 『문장 강화』든 읽고 나면 문장과 단락을 쓸 때 멋진 기술 하나를 얻지 않으려나 호기심이 생기는 정도이다. 대부분 실패. 시 창작과 소설 창작 책도 읽어 봤지만 시 한 줄 소설 한 문단을 제대로 쓰지 못하기 일쑤였다. 최근에 읽은 책은 김중혁의 『무엇이든 쓰게 된다』, 제목으로 독자에게 무엇이든 쓸 수 있을 것이라 희망을 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무엇이든 쓰게 된다, 된다, 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게으르고 얻고 싶은 것만 많은 사람이 글쓰기 책을 읽는다고 해서 바른 글쓰기 습관이 잡히지 않는다. 대게 글쓰기 책을 읽는 이유는 영업 노하우를 알고 싶어서이다. 좋아하는 작가는 하루 중 언제 글을 쓰나. 그가 앉아서 작업하는 책상의 형태는 어떠한가. 펜으로 쓴다면 어떤 펜을 쓰나. 글쓰기는 빼고 주변적인 걸 알고 싶어서 읽는다. 『무엇이든 쓰게 된다』를 읽고 블랙 윙 연필을 한 다스 샀다.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을 읽고 괜찮다,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난 건 아니고 계속 누워서 괜찮다, 잘 쓴다고 생각한 작가 곽재식의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를 읽었다. 글쓰기 책이라고 책상에 앉아서 꼼꼼하게 메모를 하면서 읽지는 않았다. 늘 그렇듯 옆으로 누워서 읽었다. 저자 소개에 '화학자 출신 소설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쓰며 6개월간 단편 4편을 완성하는 곽재식 속도 1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 


  속도 1을 유지하는 작가의 글쓰기 비법이라. 다음 장으로. 어렸을 때 비디오 대여점 마니아였다고 한다. 비디오 커버에 적힌 영화 소개 글을 읽고 영화를 골라야 하는데 어느 날부터는 고를 것도 없이 그냥 빌려봤단다. 그러면서 망한 영화에서도 소재를 찾을 수 있다는 글감 찾는 팁을 알려준다. 망한 영화라. 세상에는 망한 영화와 흥행 영화로 나누고 있구나. 이분법에 감탄한다. 영화를 보는 기준은 배우다. 혹은 한 감독을 따라서 본다. 조니 뎁이 나온 영화를 다 찾아보기도 하고 이창동이 그랬다. 영화는 그저 생각 없이 멍하게 보곤 했는데 그곳에서 글의 소재를 찾으라니, 이제부터 생각을 좀 하고 봐야겠다.


  나에게 도움이 됐던 부분은 두 번째와 네 번째 챕터였다. '경험과 변주-재미있게 이야기를 꾸리는 법과 생존-꾸준히 쓰는 힘을 기르는 법'.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서 작가가 가장 쓰고 싶은 부분을 먼저 쓰라고 말한다. 영감이 떠오르고 이 장면은 최고야 하는 부분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는 것. 인물 소개하고 배경 설명하는 지루한 시작을 할 것이 아니라 쓰고 싶은 부분을 첫 부분으로 하면 작가가 신나서 재미있게 쓸 수 있다. 우리에겐 워드프로세서가 있기 때문에 쓰고 싶은 장면 먼저 쓰고 자르고 붙이고 이어서 쓸 수 있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좋은 글을 쓰려고 하지 말고 개떡같이 써놓고 나중에 고치자', '마무리 짓기 쉽도록 일단 짧은 글로 시작하자.' ~자로 끝나는 청유형 문장에서 당신도 할 수 있어가 아닌 같이 해보자는 응원이 느껴진다. '일단 쓰자'라는 보기에 무책임한 표현도 있지만 써야 고치고 완성하고 공모전이든 낼 것이 아닌가. 가장 중요한 비법이 있다. '백업을 잘하자'


  여러 글쓰기 책을 읽었지만 이런 중요한 노하우를 알려주는 책은 없었다. 백업. 딱 한 번 있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것인지 글이 나를 쓰고 있는 것인지 모를 순간을 경험한 적이. 저장하기를 누른 순간 화면이 까맣게 변하면서 컴퓨터가 재부팅 되었다. 알고 있는 욕은 다 했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김첨지의 심정으로 다시 글을 써 보았지만 멍청한 기억력의 소유자라 복원할 수 없었다. 이메일이든 외장하드든 백업을 해놓자. 수시로 저장하기를 눌러야 한다. 


  글쓰기만으로 생존을 할 수 없다고 사실 그대로 일러주기도 한다. 생계를 유지할 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책 백날 읽어봐야 도움이 되겠어라는 부정적인 생각도 들겠지만 좋아하는 작가는 어떤 방법으로 글을 쓰나 들여다보는 재미가 암울함을 이긴다. 다음 책은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로 첫 페이지를 읽었는데 『항상 앞부분만 쓰다가 그만두는 당신을 위한 어떻게든 글쓰기』대로 중요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어떻게든 글쓰기는 어떻게든 읽기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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