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 나이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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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다는 것은 이제 더는 만날 수 없다는 것. 

꿈에서 만나 그 기척을 느낄 수 있어도, 그건 위로밖에 되지 않는다.

이제는 없는, 그런 매일을 살기 위해 떨쳐 버리는 것.

(요시모토 바나나, 서커스 나이트 中에서)


  모든 사람은 죽는다.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다. 공평한 일이다. 누구도 두 번 태어나지 않고 두 번 죽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죽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도 몸은 두 번 죽을 수 없다. 사후 세계를 경험하고 믿는 사람에게는 무리일 수 있는 말이지만 다들 한 번씩 살고 죽는다. 이제 겨우 한 번 살고 있다. 죽음을 옆에서 바라본 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함께 말이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 『서커스 나이트』의 인물들은 죽음을 지켜보고 생의 빛을 향해 걸어간다. 어두운 곳에서 빛으로 뚜벅뚜벅. 누구의 손에 등 떠밀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한 걸음을 내딛는다. 고요하고 가만한 빛의 소설 『서커스 나이트』는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주문 같은 소설이다. 


  어렸을 적 비행기 사고로 부모님을 잃은 사야카. 쌍둥이 형의 죽음을 자라는 내내 간직해야 했던 이치로. 진행성 위암으로 곧 죽어갈 운명에 처한 사토루. 아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마쓰자키 부인. 아버지 사토루의 죽음과 함께한 어린 미치루. 인물들은 죽음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서로를 미워하지도 죽어간 이를 과장되게 그리워하지 않는다.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고 이어서 분침 조금 있으면 시침이 움직이는 것처럼 각자의 삶의 바퀴를 굴린다. 


  사야카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사물을 만지면 기억과 느낌을 알 수 있다. 사이코메트리. 완벽하지는 않고 틀릴 때도 많지만 사건 수사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딸 미치루는 엄마의 그런 능력을 좋아한다. 신기해하거나 불쾌해 하지 않는다. 미치루뿐만 아니라 소설의 인물들은 사야카의 능력을 존중해준다. 


  소설을 흐르는 분위기는 조용하고 차분하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본 그들은 상대에게 책임을 묻거나 마음에 상처를 내지 않는다. 우연히 날아온 편지 한 장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불안하고 어두웠던 사야카의 내면을 빛으로 인도한다. 스무 살의 사야카는 사랑을 했다. 부모님을 잃고 발리에서 살아가던 그녀는 세계 일주를 하고 머물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자였다. 


  이치로의 가족이 운영하는 신사에 머물게 되면서 현명하고 타인을 배려하면서 자신만의 신념으로 살아가는 이치로에 반해 연애를 한다. 이치로의 가족 모두 사야카를 한마음으로 보듬어 주었다. 부모님을 동시에 잃는다는 것에서 치유되지 않은 사야카는 가족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겨우 빛으로 걸어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엄지손가락의 마비를 겪고 밤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밤 속을 헤매다 오랜 친구로 지낸 사토루의 느닷없는 고백과 제안을 받아든다. 사야카는 사토루와 결혼을 하고 미치루를 낳는다. 사토루는 어린 미치루를 힘껏 좋아해 주고 천국으로 간다. 소설은 남아 있는 자들이 삶과 함께 부르는 위로의 노래로 가득하다. 죽어간 자들이 그곳에서 지상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앞날을 축복해준다. 죽음은 무섭고 슬퍼지는 감정 속에서 살아가는 게 아닌 자주 기쁘고 고요함으로 버티어 나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다. 


  남아 있다, 아직 여기에. 산소포화도가 0으로 떨어지고 심정지를 알리는 그래프가 평행선을 그리는 장면에서. 하늘에서 만난 그들이 있어 남아 있는 우리는 위로 비슷한 감정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다. 이상한 이름의 가족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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