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 창비시선 420
박철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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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랫줄

-박철


건너 아파트에 불빛이 하나 남아 있다

하늘도 잠시 쉬는 시간,

예서 제로 마음의 빨랫줄 늘이니

누구든 날아와

쉬었다 가라


건너에는 초등학교가 있습니다. 건너라는 말에서 나의 마음은 그곳으로 날아갑니다. 건너 건너 당도할 마음은 아이들이 밥을 먹고 뛰어다니는 풍경을 보기만 해도 평온합니다. 아이들이 돌아가고 적요한 학교에서 나오는 불빛, 건너 아파트에서 흘러 나오는 온기. 지친 몸은 불빛과 온기로 뜨거워집니다. 



끝 간 데

-박철


누구나 사랑을 한다

그건 집에 문이 있는 것과 같이

사랑이라는 말에는 

누구나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누구나에는 어디든이 자리하고

어디든은 언제나의 제 모습이다

제 모습에 

왜냐고는 없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그건 사랑이라는 말에 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일 뿐이라

너와 나의 송두리라

왜인가 묻지 말고 차라리

죽음이라 불러다오

누구나

사랑을 한다

노을도 사랑을 한다

그러나 누구나에는 그러나가 있다

내 송두리 당신 앞에 선

아이처럼

아이 앞에 선

작은 문처럼


손을 잡아 길 안 쪽으로 안내해주고 깻잎 김치를 떼기 좋게 잡아주고 라면 물이 적을까 염려하는 마음. 사랑의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누구나 사랑을 합니다. 누구나의 사랑속에 당연시되는 마음을 부러 모른 척 하기도 합니다. 나의 사랑은 끝 간 데 없고 앞으로의 시간에서 내일과 모레도 함께 할 것이라는 다짐을 합니다. 



화학반응

-박철


딱히 말할 곳이 없어서

그래도 꼭 한 마디 하고 싶어서,

지나가는 아이 반짝이는 뒤통수에다

사랑해-속으로 말했다 그러자

아이가 쓱쓱 자라며 골목 끝으로 사라진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신발 주머니를 끌고 가는 아이를 볼 때마다 너도 사는 게 지치지 속으로 물어보곤 합니다. 밥을 많이 먹어도 용돈을 두둑히 받은 날에도 집으로 향하는 아이의 뒷모습은 외로워 보입니다. 아이의 시간을 건너 어른의 세계에 도착해도 여전히 세계는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옵니다. 하늘은 어둡고 맑을 날을 기대해도 구름 낀 시간에서 아이의 키는 자라고 마음을 부풀어 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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