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네치를 위하여 - 제2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조남주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디아 코마네치. 체조 역사상 10점 만점을 받은 전무후무한 체조 선수. 점수 표시판에 10점을 표시할 수 없어 1점으로 나타낼 수밖에 없었던 기록적인 선수.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금메달 세 개와 은메달, 동메달 하나를 각각 따냈다. 


  자신이 코마네치의 환생이라고 믿는 소녀가 있다. 이름 고마니. 처음 들은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의심이 들어 몇 번씩 다시 묻는 이름 고마니. 멀쩡히 살아있는 코마네치를 죽은 것으로 착각해 친구들에게 고마네치로 다시 태어난 것이라 말하는 고마니. 


  조남주의 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를 읽다 보면 우습고 진지하고 우습고 진지해서 뻔한 성장소설이라는 클리셰가 사라진다. 소설은 서울에서도 가장 낙후된 동네에 살고 있는 고마니네 가족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민낯을 활짝 드러낸다. 재개발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살아가는 마니의 엄마는 조합원장이 오면 아버지의 인감을 팡팡 찍어준다. 마니는 그런 엄마를 도장 페티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좁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옆집 앞집 구분할 것 없이 모두 한 집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고마니는 서울 올림픽에서 굴렁쇠를 굴리던 소년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날 이후로 동네 친구들과 올림픽에 나가리라 다짐하며 체조 연습을 한다. 집 안의 사물들을 깨 먹고 급기야 마니는 친구의 발뒤꿈치에 맞아 코피가 난다. 그래도 체조 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어 학교 뒤뜰에서 모이기로 한다. 날은 추워지고 옷은 두껍게 입어 체조 연습이 쉽지 않아 친구들은 하나둘씩 떠나간다. 


  동네 체조 모임이 없어진 후에도 마니는 계속 체조를 배운다. 아버지 표현에 의하면 나사 하나가 살짝 풀린 엄마 덕분이다. 엄마는 수백 개의 나사 중 하나가 빠진 게 아니라 살짝 풀린 정도의 정신 상태를 가졌다. 그 엄마가 마니가 혼자 놀고 있으면서 한 짓을 오해하여 마니의 꿈에 대해 묻고 마니는 체조를 하고 싶다고 말한다. 열 살의 마니는 엄마 손에 이끌려 체조 학원에 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학원은 체조 학원이 아니라 에어로빅 학원이었다. 원생이 끊길까 두려운 원장이 코마네치의 영상을 보여주고 코마네치와 고마니의 이름의 연관성을 들려준다. 


  사실 고마니라는 이름은 외할아버지가 작명소에 가서 지어온 이름이었다. 엄마는 무슨 뜻인지 잊어버렸지만 아무튼 좋은 뜻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충남 공주에 '고마니 고개'가 있었다. 나당 연합군과 백제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자 아들 다섯 가진 집의 아들들이 전쟁에 차출되었다. 다섯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부모는 아들들이 넘어간 고개를 고마니 고개라고 불렀다. '넘어가면 고만이다'라는 뜻의.


  십 년간 일해온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고마니는. 미스 고에서 고대리로 직함이 바뀐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회사는 총무부의 고대리를 간단히 잘랐다. 과장으로 결혼으로 이름대로 넘어가는 게 쉽지 않은 마니는 엄마에게는 당분간 비밀로 하고 지하철 순례 여행을 떠난다. 그러다가 옛 추억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은 이제 막 아파트가 밀고 들어올 것처럼 생각하며 흥분한 엄마가 도장 찍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버지의 인감을 들고 증명서를 떼서 조합에 가져다준 엄마. 마니는 일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건다. 아버지는 떡볶이 저을 때 쓰는 큰 국자를 들고 재개발 사무실로 찾아가 서류를 다시 받아온다. 


  마니는 결국 체조를 끝까지 하지 못했다. 체조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그곳은 마니의 집이나 가게를 팔아서 등록금을 마련할 정도로 비싼 학교였다. 애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회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상태였다. 엉덩이에 붉은 하트라는 기상천외한 이미지만 남긴 채 마니는 전학을 간다. 그럭저럭 학교를 마치고 여러 일터를 짧게 짧게 전전한다. 


광고는 이런 내레이션으로 끝맺는다. "할 수 있다고 믿으면 할 수 있어.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 믿으라는 말은 교회나 절에 가서 하세요. 믿는 건 마음이고 하는 건 몸이라고요. 나는 이런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거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거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라거나, 뭐 그런 말들. 아무것도 손에 쥔 게 없는 나에게는 결국 네가 간절히 원하지 않았고, 노력이 부족했고, 의지가 없었다는 힐난으로 들렸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고마네치를 위하여 中에서, 조남주)


  올라가라는 아파트는 올라가지 않고 손에 쥔 게 없는 사람들만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세상이다. 가진 게 없고 아는 게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믿음을 배신당한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쳐도 들어주지 않으니 높은 곳으로 올라가 소리친다. 우리를 쫓아내지 말라. 말하는데도 망루 일층에 불을 놓았다. 아파트 칠층 높이에서 뛰어내리고 그러다가 사람이 죽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 삶은 넘어가면 고만인 세상이 아닌게 되어 버렸다. 집 하나 가지고 싶은 그들의 소망은 욕심으로 헛된 희망으로 남는다.


  코마네치의 뒤를 이을 체조선수를 꿈꾼 소녀 고마니는 서른여섯의 백수가 되었다. 엄마와 재개발 사무실을 따라다니고 무조건 1번 찍으라는 말에 생각없이 찍는다. 재개발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은근한 소문을 들은 아버지는 집을 팔고 이사 가자고 한다. 회사 다니며 땅을 사서 되팔며 차익을 얻는 파꽃을 보며 웃는 남자에게 집을 판다. 마니와 아버지는 갈등한다. 집 하나 얻자고 남을 속여도 되나. 재개발이 안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남자에게 말해야 하지 않겠나. 엄마는 부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한 마디 한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남을 속이며 살아가는 게 쉬어진 세상. 남을 속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잘 사는 세상. 어렸을 때 간직한 꿈을 하나씩 버리고 낡은 옷장과 서랍장을 가지고 떠날 수밖에 없는 오늘. 조남주의 소설 『고마네치를 위하여』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요소로 무한 긍정과 열정페이를 강요하는 헛소리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만가만히 위로하는 소설이다. 갈고리가 그려진 망치 가방을 살 수 없어 천 가방을 메고 다닌 마니에게 미래의 코마네치는 경쟁 브랜드의 시에프에서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해준다. 


  불가능이란 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지만 마니는 그 동영상을 다운 받아 열심히 본다. 체조 선수를 꿈꾼 그 시간을 부끄럽게만 기억하는 어른이 된 마니는 우리에게 욕심으로 꿈꿀 수 없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루 세 번 부모님과 밥을 먹을 수 있는 식탁, 매일 온수를 틀어 목욕할 수 있는 목욕탕, 좌식 책상을 들여놓고 소설책을 읽을 수 있는 방, 커튼 없이 달빛이 쏟아지는 거실. 소중한 기억으로 뭉친 가족이 모여 내일을 희망할 수 있는 공간 하나를 가지는 것조차 버거운 세계에서 『고마네치를 위하여』는 우습고 서글픈 기억의 조각들을 모아 오늘을 살아갈 사소한 행복을 보여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