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JOB 다多 한 컷 - 고생했어, 일하는 우리
양경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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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곤합니다. 말을 많이 했거든요. 웃기도 했지만 화도 내면서 인상을 썼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사람들 앞에서 웃으며 입을 크게 벌렸고 화장실에 앉아 화를 냈습니다. 입을 삐죽 내밀었고 한숨을 크게 쉬었습니다. 표정 관리가 안 될 땐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음의 표정을 고릅니다. 화장실이 없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아찔하네요.  


  말실수를 하진 않았을까, 웃자고 한 농담인데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았을까. 온갖 고민을 안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아직 월급날은 일주일 남았습니다. 뿌연 하늘을 바라보며 곧 들어올 월급님을 생각합니다. 통장에 잠깐 스치우는 그분을 떠올리면 오늘의 피곤도 내일의 파이팅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우편함에 관리비 고지서가 꽂혀 있네요. 출근길이 꽃길일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늦게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지요. 그냥 잘래요. 먹고 소화하고 잠이 들면 늦게 일어나니까요.


  택배가 온답니다. 아싸. 알람은 싫지만 택배 전화로 잠을 깨는 것은 즐겁습니다. 무얼 시켰나. 잠시 고민하다가 쌀을 주문했구나 떠올립니다. 중요한 물건이지요. 한국인은 밥심이니까요. 『잡다한 컷』을 그린 양경수 작가는 전작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에서 직장인들의 애환을 재치 있는 그림으로 다루었습니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습니다. 야근, 야근으로 이어지는 삶.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연결되는 이상한 달력을 가진 우리들의 일상을 보여주었지요. 이번에는 다양한 직업군을 다룬 그림 에세이입니다. 잡(JOB)은 다(多) 양 하다는 센스 있는 작명으로 돌아온 양경수 작가의 책에서 마음의 위안을 얻습니다.  


  무거운 쌀을 문 앞까지 배달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택배 산타 님은 하루 150~200개의 물건을 배달해야 합니다. 오전 7시에 시작한 상하차 작업을 합니다. 컨테이너 하나당 나오는 물품은 2000개입니다. 각자의 구역으로 물건을 옮겨 싣고 바코드를 찍어야 합니다. 물품이 많은 날은 시간이 오후로 넘어갑니다. 택배가 오전에 오지 않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200개의 물건을 배달하려면 하나당 3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사람이 나오는 기척이 들리면 물건을 놓고 뛰어갑니다. 쌩하니 가버리는 택배 산타 님을 미워하지 마세요.


  시간이 없어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합니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먹지를 못합니다. 설렁탕을 사 왔는데 먹지를 못하니라고 울부짖던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의 심정이 이럴까요. 최근 차 없는 아파트에서 일어난 택배 대란을 아시나요. 탑차가 지하로 들어가야 하는데 높이가 맞지 않아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카트를 끌고 아파트를 걸어 집집마다 배달해야 합니다. 건설사의 잘못은 빠져 있고 입주민과 택배 기사 간의 대립만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림왕 양치기로 불리는 양경수 작가의 『잡다한 컷』에서 다루고 있는 직업은 회사원부터 택배 기사, 사회복지사, 간호사, 소방관, 은행원, 스튜어디스, 미용사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에 꼭 필요한 직업입니다. 월급날을 기다리며 야근탑에 기도를 하는 회사원. 어르신들을 위해 쌀을 들고 계단을 오르는 사회복지사. 3교대를 하느라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하는 간호사. 화마 속에서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 4시 업무 종료는 업무 시작인 은행원. 꽉 조이는 옷을 입고 구두를 신고 비행을 하는 스튜어디스. 염색 약과 중화제 때문에 손이 갈라지는 미용사.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그들의 일을 들여다보는 『잡다한 컷』의 시선은 따뜻합니다. 슬프기도 하지요. 눈치를 보고 꾸중을 듣기도 합니다. 일을 배우느라 싫은 소리도 들어야 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고마워요, 수고하시네요 라는 말 한마디에 울컥하기도 합니다. 은행에 가서 번호표를 들고 애타는 얼굴로 번호가 바뀌기를 기다린 적이 있어요. 왜 빨리 안 해주나 하는 심술궂은 얼굴로요. 그럴 때 은행원은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있다는 그림을 보고 느긋한 마음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볼게요. 그들은 우리들이고 우리 딸, 우리 아들, 우리 남편, 우리 아내라고요. 오늘은 어느 항공의 전무가 광고 회사 직원에게 음료수 병을 던지고 물을 뿌렸던 기사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는데요. 그분에게 양경수 작가의 『잡다한 컷』을 추천합니다. 그분의 언니에게도요. 『잡다한 컷』을 읽고 나면 후회를 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이 바뀔 수 있었습니다. 직업에 귀천은 없습니다. 직업에 귀함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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