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는 외계인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67
이상권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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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당신 곁에 누가 있나요?

  사우는 혼자 살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고모 집에서 살았지요. 사촌 동생들이 날마다 방에 혼자 있는 오빠가 무섭다고 할 때마다 고모에게 혼자 살게 해달라고 했어요. 무화과 나무가 마당에 있는 그 집에 들어가자 고요가 밀려왔습니다. 이층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창 안으로 가득 들이치는 햇살이 눈부셔 책을 찢어 붙였습니다. 혼자인 채로 어둡게 지내고 싶었거든요. 고모는 커튼을 해주면 밤낮 구별 없이 살 것이라며 해주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종이 상자에 담긴 책을 찢어 붙일 수 밖에요.

  잠이 오지 않아 마당으로 내려갔습니다. 집 앞은 대형 교회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바람에 무화과나무가 흔들렸습니다. 조용한 틈새로 말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우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였습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니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고양이가 말을 하는 것도 사우에 대해 아는 것도 놀랍지 않았습니다. 고양이는 자신과 말이 통한다는 건 특별한 인간이기에 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사우를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말하는 고양이가 나를 이해해준다니 사우는 이사 온 첫날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주인집 아주머니는 조금 특별한 사람입니다. 나이가 오십이 넘었는데도 동안을 자랑합니다. 외고에 다니는 딸과 함께 있으면 나이가 몇 살 많은 언니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창문에 종이로 도배를 해 놓은 사우를 또라이라고 여기는 딸 미미와는 달리 사우에게 관심을 가져줍니다. 음식이 있으면 들고 올라오기도 하지요. 어느 날 사우에게 아주머니가 찾아옵니다. 

  아주머니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써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사우는 어리둥절합니다. 직접 쓰면 될 것을 잘 알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부탁을 하다니요. 아주머니는 조심스럽게 비밀을 이야기합니다. 글을 모른다고요. 글을 몰라 자신만의 언어로 일상을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오세지라는 아주머니의 이름은 찔레꽃으로 표현하고 별은 미미의 생일, 은행알은 적금 들어가는 날, 토끼는 남편의 생일로 자신만의 글자를 만들어 썼다고 했습니다. 사우는 그 말을 듣고 아주머니라는 호칭 대신 찔레꽃 씨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찔레꽃 씨를 도우겠다고도 말했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고생을 하면서 무화과나무가 있는 이 집을 겨우 장만했습니다. 교회가 건물을 올린다고 할 때 사람들이 와서 집을 팔라고 했지만 무화과나무가 있는 집을 팔 수 없었습니다. 공사가 시작되고 집이 갈라졌습니다.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찔레꽃 씨를 폭행 혐의로 교회 사람들이 고소를 했습니다. 글씨도 모르는 찔레꽃 씨는 지지 않기 위해 재판을 했습니다. 사우는 찔레꽃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이 겪었던 과거를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고통스러워 외면했던 기억들을요. 몸이 좋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누구보다도 이해해 주었던 엄마가 죽은 일, 초등학교 때 당했던 나쁜 일을 떠올리면서 더 이상 어두운 방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고양이와 글을 모르는 찔레꽃 씨를 친구로 사귀면서 사우의 과거가 하나씩 빛 속으로 던져집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지요. 과거는 빛 속에서 사우를 세상 밖으로 돌려세웁니다.

  사우는 자신을 지구로 잘못 날아온 외계인이라고 말합니다. 관계를 맺는 것에 서툴고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고통을 당했던 일들 때문이지요. 엄마는 돌아가셨습니다. 아빠는 지방에서 일을 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있는 그 집으로 이사를 오지 않았더라면 사우는 정말로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버려진 외계인이라고 믿으며 혼자 겨우 살아갔을 것입니다. 세상은 사우를 혼자 두지 않았습니다. 술만 마시면 욕을 해대는 찔레꽃 씨의 남편이 사우를 도와주기도 하고 미미는 사우에게 고맙다는 말을 해줍니다. 

  우리는 어쩌면 지구별에 잠시 머물다 돌아가야 할 외계인일지도 모릅니다. 지구인인 척 살아가고 있지만 사실은 우주선이 돌아와 데리고 갈 날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는 존재입니다. 오해하고 싸우고 상처를 주는 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건 지구별에서 힘겹게 적응하기 위해서입니다. 살고 있는 집에서 나가라고 서류를 들이밀며 협박을 회유를 하는 그들은 완벽하게 지구에 적응한 외계인입니다. 걱정하지 말아요. 그들을 데리고 갈 우주선이 도착해 있으니까요. 

  사우와 찔레꽃 씨, 미미 그리고 돈키호테 아저씨가 함께 살아갈 무화과나무가 있는 집으로 한 걸음 들어가 봐요. 속일 수 없어요. 우리는 모두 외계인입니다. 잘못 날아와 지구라는 별에 도착했어요. 어색하고 서툴고 당황하는 건 모두 그 이유 때문이랍니다. 뿌연 하늘을 보면서 우리를 찾으러 오지 않을까 우주선을 기다려 보지만 오늘도 아무런 소식도 없어요. 무거워졌기 때문일까요. 잊히고 있기 때문일까요. 그 별에서는 우리를 찾으러 오지 않아 오늘도 지구별에서 책을 읽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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