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별 볼일 없는 인생이다. 밤하늘을 보면서도 별 볼일 없는 인생이야라고 시시한 웃음을 지을 당신, 비프케 로렌츠의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를 권한다. 후회와 자책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애꿎은 이불을 허공으로 킥하는 당신,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절망하는 당신이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책이다. 우리 인생은 거창하게 말하지 않아도 별 볼일 없이 흘러간다. 알고 있다. 별은 낮에도 떠 있지만 강한 태양빛의 그늘에 가려 있다는 것. 늘 하늘 위에 떠 있어 우리가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데도 우리는 보이지 않다고 존재 자체로 부정해 버린다. 있다. 늘 별을 볼 수 있는 인생이.


  비프케 로렌츠의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음악이 없는 인생이란 진정 별 볼일 없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추억이나 기억을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이 있기에 당신과 나 자신의 삶도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소환할 수 있다. 부끄럽고 얼굴이 붉어지는 민망한 순간이어도 음악이 있다면 추억이라는 사진으로 찍혀 앨범 한편에 꽂아 넣을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음악이 있다면.


  찰리는 이제 서른 살. 유행가의 가사가 떠오른다면 당신은 낭만쟁이.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아련한 눈빛으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가수는 떠났지만 음악은 남았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납득이 되지 않을 이유를 갖다 대면서 시험을 보지 않아 대학은 중퇴했다. 부모님은 이 사실을 모른다. 술집 드링크스&모어에서 오후부터 새벽까지 일을 한다. 전직 컨설턴트라고 말하는 사장 팀 밑에서 일을 한다. 주거지가 불분명한 게오르크 아저씨에게 공짜로 커피를 줘도 된다고 말하는 인정 많은 사장이다. 


  일을 시작하는 찰리에게 팀은 편지 한 통을 건넨다. 동창 모임에 참석해 달라는 편지였다. 동창들은 다들 잘 나가는 직업에 종사해 있거나 종사할 예정으로 지금의 찰리와는 거리가 먼 세계에 살고 있다. 가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지만 이런 웬일, 첫사랑 모리츠가 드링크스&모어에 찾아온다. 찰리에게는 지우고 싶은 순간에 살았던 사람이다. 모리츠와의 사랑은 부끄럽고 민망한 장면들도 끝나버렸다. 좀 더 잘 될 수 있었는데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버렸다. 어떻게 된 거야라고 말할 수도 없이 순식간에 끝.


  신용이 불량한 찰리는 수표를 끊어 옷을 사러 간다. 동창회에 참석하기 위해. 실패한 첫사랑이지만 자신이 일하고 있는 곳에 찾아와 준 모리츠를 한 번 더 보기 위해. 동창회에서 보낸 시간은 찰리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순간 베스트 상위에 올라갈 정도로 끔찍한 순간으로 기억된다. 모리츠는 이자벨과의 밀당에 찰리를 끌어들인 것이다. 


  위로해주는 팀이 건넨 코트에서 발견한 명함 한 장이 찰리를 다른 인생으로 끌고 간다. 뉴라이프라는 회사의 명함에서 '당신의 인생을 바꿔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보고 찰리는 회사로 찾아간다. 직업을 구하는 것보다 돈 많은 남편을 만나는 게 빠를 것이라는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다. 사무실에서 나온 찰리는 엘리자라는 여성을 만난다. 엘리자와의 시간 이후로 찰리의 인생은 새롭게 펼쳐진다. 지우고 싶은 순간들을 기억해서 CD에 담는다.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나의 시간은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영향을 준다. 찰리는 민망하고 꼴불견으로 기억되는 자신의 인생의 순간들을 하나씩 지워간다.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공상 과학 소설이 아니다. 대학 중퇴. 술집 아르바이트. 살은 점점 찌고 있는 중. 애인 없음. 부모님은 다정한 분. 친한 친구와는 절교 중인 찰리가 과거를 지우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유쾌하고 신나는 음악을 배경으로 그려진다. 


  음악이 없다면 우리 인생의 순간들을 흐르는 음악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버스에 앉아 창문 밖을 쳐다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어도 음악이 흐른다면 신나는 출근길로 저장되어 우리 인생을 별 볼일 있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 바뀐 찰리의 인생에 찰리가 듣던 음악은 없었다. 찰리의 음악. 나의 음악. 음악을 찾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는 걸 비프케 로렌츠의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말하고 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당신 음악의 이야기.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과 늘 함께하는 찰리에게 오늘의 음악을 보냅니다. 한국 가수가 부른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같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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