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1. 신들의 봉우리  

<음양사>로 널리 알려진 유메마쿠라 바쿠의 산악소설이다. 에베레스트 최대의 미스터리인 맬러리의 등정여부를 파헤친 미스터리로 20여 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완성한 대가의 역작을 만나보고 싶다. 등로주의와 원정주의, 히말라야의 신들의 봉우리를 둘러싼 소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만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2. 대지의 기둥  

기다리지 못해 원서를 읽어버린 열독자들도 많은 것으로 안다. 올해 방영되었던 8부작의 드라마가 호평이었던만큼 <대지의 기둥>을 기다려왔던 팬들에게 크나큰 선물처럼 느껴진다. 정교하고 방대한 중세를 배경으로한 전설적인 시리즈를 만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3. 깨어 있는 자들의 나라 

소설의 구성은 <장미의 이름>과도 흡사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추적하는 수도사가 철학자로 바뀌었다는 인상이지만 직접 확인해보면 어떨런지. 이슬람 지배하의 스페인을 무대로 펼쳐지는 이국적인 미스터리가 그 자체로 개성적이며 압도적인 스토리텔링을 펼쳐주었으면 한다.

    

 

 

 

4. 검정도 색깔이다  

매춘부였던 저자의 자전적 소설로 '혁명적 매춘'을 주장한 문제적 소설이 불러일으킨 파장이 얼마나 컷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사후 문학적 성과를 인정받아 왕립묘지에 안장되었다는 이력마저도 흥미롭다.

 

 

 

  

5. 말테의 수기

릴케의 파리 체류시절, 로댕의 영향권 아래서 완성된 <말테의 수기>, 얼마전 다른 세계문학전집의 완역본으로 접했는데 새로운 완역이 또 나왔다. 파리에서의 고독한 생활 속에서 릴케가 적어나간 사랑과 죽음의 성찰이 잘 드러나있는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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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샤베트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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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빛 사진그림책이 나온다한들 『구름빵』의 아성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터이다. 한 권의 그림책이 불러온 찬사, 환호, 장르의 진화는 여전히 가속 중에 있으며, 기존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 아닌 새로운 빛 그림책의 도래를 간곡히 바라마지 않게 하기도 했다. 그러다 한 여름날의 꿈처럼 우리 곁에 온 『달 샤베트』는 명성의 연장선상이기 보다는 상냥한 작가세계의 구축처럼 다가왔다. 개성만점의 빛 그림책의 세계 안에 넘쳐흐르는 정감들은 그저 활자로만 적기엔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숨이 턱 막히는 열대야. 고층아파트의 창문은 전부 굳게 닫혀 있다, 에어콘, 선풍기가 쌩쌩 돌아가고 있기에. 어디선가 똑똑 뭔가가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웬걸, 이 무더운 밤에 달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썰미 좋고 알뜰하고 바지런한 반장 할머니의 기지로 달 녹은 물은 온전히 고무대야에 담기는데, 할머니는 이걸 샤베트로 만들어 나누어준다. 다 녹아버린 달 때문에 세상은 깜깜해져버렸지만, 달샤베트를 나누어 먹으니 창문을 활짝 열고 시원한 여름밤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니, 이 정도면 제목에 충실한 상냥한 이야기 맞는 거 아닌가?

맛나게 샤베트를 나누어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달이 다 녹아버려서 졸지에 노숙자 신세가 된 옥토끼 두 마리의 출현에 박장대소가 나온다. 집도, 절도 아니, 달도 잃어버린 옥토끼들에게는 실례지만, 외로운 자음을 남발하고 싶은 순간이다, 참으로. 상냥하고 손이 큰 데다 오지랖마저 넓은 반장 할머니가 이 문제는 과연 어떻게 해결할지, 직접 확인해보시라. 길고 길었던, 덥고 또 더웠던 여름이 어느새 끝나고, 시원하기보다는 매서운 가을이 찾아왔지만 이 책을 처음 만난 여름날의 청량함은 내 안에서 아주 예쁜 풍광으로 남았다. 주변의 사랑스러운 꼬마들에게 선물하기도 하면서, 달샤베트를 나누어먹는 대리만족을 느꼈달까.

둥실둥실 구름빵을 출근길 만원버스 속 아빠에게 전해주려는 고양이형제들처럼 백희나의 새로운 캐릭터들은 여전히 동물들이다. 오리고, 자르고, 덧대어 창조해낸 빛 그림 속의 세계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정교하기 이를 데 없으며, 메시지는 무겁지 않으면서도 명료하다. 달마저 먹여버릴 기세의 열대야를 만들어내는 도심 속의 군상들은 달이 사라지고 나서야 어두워진 것을 인식하고, 녹은 달마저 이웃과 나누는 반장할머니만이 유일하게 베란다 창문을 열고, 부채를 들고 있는 캐릭터이다. 시끄럽지 않지만 분명하게, 웃음을 자아내지만 잊어버리지 않도록 메시지를 전달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분명 납작납작한 캐릭터와 조형의 세계인데도 요란스러운 3D의 역습보다 더욱 효과적이다. ‘이 책은 지구의 내일을 위해 콩기름 인쇄를 했고, 비닐 코팅을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뒷부분의 문구에 이르면 구석구석 꼼꼼히 신경 쓴 저자의 마음이 읽히는 것도 같다. 소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지구를 향한, 그리고 이웃을 향해 열린 상냥한 배려를 책을 덮고서도 한동안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반장 할머니의 달샤베트 대신 이제는 서늘하게 식어버린 가을 달을 떠올리며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비추는 달빛만큼이나 행복한 시간을 그림책으로 누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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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3 - 10月-12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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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과 이졸데,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시라노와 록산느, 로미오와 줄리엣, 이몽룡과 성춘향 등등. 어느 시공에 담겨 있어도, 어떤 결말이 있을지라도 절대적인 사랑으로 각인되어 있는 불멸의 연인들은 사실 흥행의 법칙이 만들어낸 사후전설은 아닌가하고 냉소를 보내던 때도 있었다. 너무도 방대한 계보와 미디어믹스로 인해 원전을 기억하는 이들보다는 불멸의 로맨스를 짜깁기하여 블록버스터화한 시리즈가 더욱 친숙한 세대들이 늘고 있음을 누가 부인할까? 압도적인 노출과 이슈로 불멸의 연인의 명예의 전당에 속속 입성하는 그 자리에 아오마메와 덴고를 떠올린 적이 있음을 고백하면서, 100%의 사랑에 대한 하루키의 거대한 소설 속으로 들어선다.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형식에 따라 가장 완벽한 형태로 완성된 두 편의 『1Q84』는 그 자체로 완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치 ‘쥐 3부작’과 『댄스 댄스 댄스』의 관계처럼, 그것은 4부작으로 묶을 수도 있고,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별개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마치 통증과도 같았던 지난한 기다림을 생각하면 3권의 도래는 예정되어 있는 수순 같으면서도 축복이나 다름없었다고 살포시 인정하련다. 아오마메와 덴고, 후카에리와 리틀 피틀, 선구와 의심하는 1984년의 이야기는,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를 여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우리네에게 그렇게 닫아버리기엔 너무도 가혹하기 그지없는 일 아니겠는가.


아오마메와 덴고가 교차하고, 1984와 1Q84가 아슬아슬한 균형과 탈주를 지속하던 팽팽한 긴장감을 간신히 내려놓은, 아니 내려놓은 것처럼 여겨졌던 지난 시간이 거짓말 같다. 그 자체로 두어 극히 정교했던 완결의 봉인을 푸는 것은 후카에리의 몫이라고 치부해버렸던 생각이 얼마나 얄팍했던 것인지를 우시카와의 존재감을 극명하게 표출하는 표지에서부터 확인한다. 유년의 트라우마로 인해 스스로를 최종병기처럼 단련한 강인한 히로인 아오마메, 후카에리와 함께「공기 번데기」를 써 내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를 불러왔던 덴고의 존재감에 비해 땅딸막하고 거대한 머리통을 가진 추한 중년 남자 우시카와가 서장을 여는 3권이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듯하다. 아직도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어, 존재 그 너머의 울림을 외면하는 것인가?


아오마메는 자신의 존재를 지우는 대신 덴고와의 해후에 모든 것은 건 채 은둔하고, 덴고는 회복 불가능한 아버지와의 관계를 여전히 유예시키고 있으며, 이들을 맹렬히 좆는 우시카와는 선구의 리더가 자발적으로 살해된 이후의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의 맹렬한 추적자이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창출해낸 독보적인 캐릭터, 포와로는 보잘 것 없는 외모와 허영기 다분한 스타일로 상대의 눈을 교란시킨 후, 안락의자 탐정기행의 정점을 구축한다. 우시카와는 추한 외모 안에 감춰진 남다른 재능으로 직관과 끈기의 소산으로, 아오마메와 덴고 사이의 접점과 두 개의 달의 비밀에까지 근접한다. 선구의 리더와 리틀 피플 등이 전편을 통해 형성했던 ‘어둠의 저편’은, 우시카와의 암약으로 광신적 종교단체의 이면이라는 모호한 영역에서 진일보해, 두 개의 달 세계에 현실적 실체를 부여하기에 이른다.


우시카와가 두 개의 달 세계의 미묘한 간극을 재구성해나가는 사이, 강인한 육체와 정신이 조화된 액션히로인의 면모를 분출하던 아오마메는 선구의 리더를 암살하던 밤에 덴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안전가옥에서 프루스트를 읽으며 덴고와 조우하기를 강하게 염원하는 아오마메는 일견 정적인 캐릭터로 전환되어버린 것처럼 보이지만,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 안에서의 자신의 존재가치를 강하게 자각하고, 우연찮게 흘러들어온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이 기묘한 세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신념을 구체화하는 화신이다. 철저하게 외톨이면서도 고독하지 않을 수 있는 희망을 놓지 않는 아오마메의 눈부신 성장은 『1Q84』3권의 가장 핵심적인 진화라고 단언한다.


두 개의 달이 뜨는 이 세계는 덴고에게 ‘고양이 마을’로도 불리는데, 자신이 정말 있어야할 장소를 찾기 위한 그의 여정은 아오마메의 손을 잡은 순간 완성된다. 10살 무렵 나누었던 악수 하나로 사랑을 키워왔던 덴고와 아오마메의 순애보가 당황스럽기보다는 너무나 하루키답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서로에게 ‘100%의 소년’이자 ‘100%의 소녀’였기 때문이며, 명실상부한 ‘100%의 연인’인 까닭이다. 하루키의 단편 ‘4월의 어느 해맑은 아침, 100%의 여자아이를 만나는 일에 관하여’를 장편 극화하여 소년소녀에게 이름을 부여하면 우리는 덴고와 아오마메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리더의 후계자이자 선구의 새로운 ‘목소리’가 되어줄 아오마메가 잉태한 새로운 생명은 4권의 암시일 것이다. 하루키 문학에서 한때는 ‘양’이라고도 불렸으며, 『1Q84』의 세계에서는 ‘리틀 피플’이 획책하는 거대 시스템 속에서의 고독하면서도 무기력한 인간들을 조정하려는 음습한 기운은 여전히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중이다, ‘호우호우’라는 그들의 구호와 함께. 그것은 100%의 운명적 사랑을 완성한 아오마메와 덴고가 다음 권에서 부닥뜨려야하는, ‘우리’가 되어 마주해야하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예정된 세계로의 소환을 의미할 수도 있다. 죽은 자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변형시켜서 언제든지 그들을 방문하는 것 또한 하루키 문학의 자연스러운 흐름이기에 3권은 끝이면서도 끝이 아닌, 순애보의 완성이면서 또 다른 사투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아오마메와 덴고를 문학사에 빛나는 불멸의 커플 명예의 전당에 오르도록 하는 것은 지나치게 ‘최근’의 성과가 아니냐는 성토가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하루키의 소설이 일본문학의 경향과 반하여 고작 세 편(『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토니 다키타니』, 『상실의 시대』)만이 영화화 된 것이 시사하듯, 하루키 월드를 벗어나면 경계의 확장보다는 매력의 상실로 이어지는 미묘한 특질을 헤아려볼 때,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 속에서 머물고, 저항하고, 극복해가는 시공에 담겨있을 때에야말로 100%의 그네가 되어줄 것도 같다. 더 이상 고스트라이터가 아닌 덴고의 새로운 소설이 펼쳐질 이후의 이야기의 향방은 감히 알 수 없지만, 그 세계에는 여전히 ‘신포니에타’가 흐르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도 하고.


서로에의 끌림으로 외톨이지만 고독하지 않을 수 있었던 아오마메와 덴고, 그리고 그들이 지켜낼 새로운 생명이 담기게 될 새로운 『1Q84』를 나는 의심하지 않으려고 한다. 염원하면, 진심으로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두 개의 달이 뜨는 세계의 감춰진 출구에 섰던 아오마메가 말하지 않았던가. 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우리 시대의 독보적인 문학적 파장의 핵 속에서 기다림은 고통스러울지언정, 완전무결한 종결이 아니라는 것에서 희망을 본다. 전편을 읽고 남겼던 글을 한 토막 불러오자면 '당신과 동시대에 태어나 같은 달을 바라보는 행운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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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링 짐 매드 픽션 클럽
크리스티안 뫼르크 지음, 유향란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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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게이블즈의 앤』의 사랑스러운 다이애나는 "난 악당과 결혼해서 그를 착한 사람으로 만들거야!"라고 했다, 로맨스를 꿈꾸던 소녀시절에. 여자들이 '나쁜 남자'에게 갖는 환상은 자신에게만은 다정한 사람이 되어 정착하리라는 희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환상이 깨지고 나면 나머지 인생을 한탄으로 보내버리게 되는 일들은 무수히 많은 이야기 속에서 마주하게 된다. 드라마, 영화, 소설, 그보다 더 많은 현실에서. 바람처럼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남자가 그의 발치에 몸을 던지는 무수한 여자들을 팽개치고 나에게만 충실하리라는 여자들의 심리를 이 소설 『달링 짐』에서 때로는 매혹적으로, 환상이 거치고 나면 고약스럽게 확인해 볼 수 있다.
 

'달링 짐'이라고 불리는 그는 아일랜드의 선술집을 떠돌며 옛 이야기로 청중을 사로잡는다. 낯선 이의 방문이 하루의 이슈가 되어버리곤 하는 시골 마을에서 그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여자들의 암투는 실로 노골적이다. 여자들의 망상을 극대화해서 만들어진 것 같은 섹스심벌이 지나는 자리에 미심쩍은 살해, 강도 사건이 뒤따르는 것조차 또 다른 희생자가 될 게 분명할 여자들을 막을 수가 없다. 피오나, 아오이페, 로이진이라는 세 자매와 이모 모이라를 둘러싼 한 가족의 파멸로 치닫는 통속극으로 치부하지 않도록 세심히 신경 쓴 트릭이 정교하게 얽혀 치정극에 신비함을 부여하는 솜씨는, 궁극적인 이야기꾼이 바로 저자임을 되새기게 만든다.
 

짐은 악당이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매력을 너무도 많이 지니고 있는 비현실적인 인물이지만 그를 간파하고 경계하는 것은 여론을 거스르는 일도 치부된다. 범죄의 은폐를 위해 아오이페를 성폭행하고 이모와의 결혼을 계획하는 짐에게 세 자매는 복수를 감행하지만 그들은 곧 이모가 만든 덫에 걸려 희생양이 된다. 이것은 피오나와 로이진의 비망록이라는 형태로 해고된 우체국 직원 니알에게 전해지고, 짐이 청중을 홀리던 전설과 교차되면서 마술적인 울림마저 갖게 된다. 요컨대 이 치정극을 통속성에만 머물게 하지 않기 위해 동원된 기교는 기기묘묘한 옛 이야기와 마법의 세계와 결합해 신비로움을 획득하고자 애쓴다.
 

『달링 짐』은 질시와 암투, 복수와 또 복수의 이야기로만 머물지 않고, 이야기가 지닌 마력의 심장부를 건드린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는, 이어지는 내용이 궁금해서 이야기꾼을 조르게 되는, 현실보다 더 믿음직스럽고 궁극적으로는 그렇게 믿어버리게 되는, 끊이지 않고 전해지는 속에서 불멸을 획득하는 그런 거대한 기운에 대한 홀림이, 강렬한 구심점을 잃지 않는 것이 이 아름답지 못한 복수극을 특별하게 기억되도록 한다. 짐 스스로가 전설의 일부가 되고, 세 자매의 말로는 진실의 퍼즐을 맞추고 온전히 기억하려는 이에 의해 세간에 전해진다. 모든 것은 이야기의 일부이며, 그보다 더 강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추문도, 애정도, 파멸도, 응징도 이야기의 마력을 능가할 수 없다.
 

무료한 일상과 안온하지 그지없을 내일에 질식해버릴 것 같은 여자들에게 일생일대의 로맨스를 연출하는 짐과 같은 남자들의 존재는 일생을 멋진 모험 속에서 살게 하는 설렘을 약속할 수도 있다. 풍부한 울림을 지닌 목소리와 불온해보이지만 나무랄 데 없는 외모로 로맨스의 화신인양 다가오는 나쁜 남자는, 환상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여자들의 깊디깊은 욕망 속에서 숨 쉬고, 더욱 거대한 힘을 발휘한다. 그 나쁜 남자가 개심하여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남자로 화하는 결말 또한 환상의 일부이지만, 결코 실현가능하지 않는 희소성 때문에 인생을 건 도박을 하는 여자들을 우리는 여전히 이야기 속에서 만난다. 깨어진 환상만큼 씁쓸하고 치명적인 것은 없다는 진리의 확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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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1
김은국 지음, 도정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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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유박해를 떠올린다. 정약용과 그 형제들이 살았던 그 시절, 신유박해의 순교자와 배교자들을 떠올린다. 신을 지키며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던 신도들은 한국천주교사의 순교자로 올라있고, 가혹한 고문에 못 이겨 온 마음을 다해 섬기던 신을 최후의 순간 부정하고, 신에 헌신하는 마지막 기도 대신 고문자들의 바람대로 밀고자로 전락해버린 이들은 배교자라고 불린다. 그리고 어떤 배교자들은 그의 전 생애에 걸친 학문적 위업과 추종을 바탕으로 배교자로서의 추적 대신 명성을 얻기도 한다. 이 환난과 박해의 이야기는 팩션의 고전적인 소재이기도 하면서 순교와 배교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극명히 보여주는 상징으로 다가온다.

1964년 발표작이며,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오른 적이 있는, 유현목 감독이 1965년 영화화한 이력이 있는…… 소설을 수식하는 기나긴 이력들을 지우고 김은국의, 아니 리처드 E. 김의 『순교자』를 만나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세계문학의 고전의 반열에 올라 여러 차례의 절판을 거쳐 다시금 한국의 독자와 만나는 『순교자』는 한국전쟁을 다루고 있는 전쟁문학이 아니라, 전쟁 속에서 펼쳐지는 종교소설이자, 한국전쟁이 아니라 세계의 어느 전쟁의 한 가운데다 가져다두어도 어색할 게 없을 만큼 탈 한국적인 소설이기도 하다.

중공군의 개입이 감지되는 즈음의 전선에서 평양에 본부를 둔 국군 파견대의 이 대위는 정치정보국장 장 대령의 지시로, 평양함락 전 공산당에게 끌려가 희생당한 열네 명의 목사들 사건의 진상조사를 맡는다. 열두 명이 순교하고 두 명의 목사가 생존했다는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라는 명령은 ‘진실’의 중심축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양상을 달리하는데, 이때부터 시작되는 순교와 배교의 진실공방은 점차 향방을 예측하기 어렵게 흘러간다. 생존자 신 목사와 한 목사는 과연 죽음의 위협 앞에서 신을 부정하고 살아남은 것인지, 그들은 무엇 때문에 희생자들의 순교를 증언하기를 거부하는 것인지, 과연 진실이 밝혀지면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세상이기는 한지.

열두 명의 목사의 순교를 최대한 부각해 공산당의 폭거를 선전하고, 기독교세력과 연합해 공동전선을 펴려는 장 대령에게 신 목사가 가진 진실의 발현이 원형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순교한 목사들 우두머리인 박 목사의 절연한 아들이며 이 대위의 강단의 친구인 박 대위가 바라는 것은 한 번도 신을 의심해본 적 없는 아버지의 최후의 순간이 인간다웠을 지이다. 이 대위는 선전에 적합한 진실을 강요하려는 장 대령과 진실이 가진 파괴력을 감당한 신도들을 염려해 위악을 가장하려는 신 목사 사이에서 진실이 진실 그 자체여야 한다는 원칙을 견지한다. 희생자들은 순교자인가, 생존자들은 배교자인가? 무엇을 위한 순교여야하며, 배교자를 비난할 수 있는 자는 또 누구인가?

중공군이 밀려들자 변변한 전투도 없이 퇴각을 결정해버리는 그들의 행보는, 어느 때보다 가장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에게 닿지 않는 신이 부재한 시대의 참극과 일치한다. 신 목사가 폭로한 진실은 버림받은 자들을 위한 이 땅의 생존을 위한 마지막 희망을 부여하며, 상처받고 나락까지 떨어진 신의 백성들을 위한 계시가 된다. 정작 신 목사 자신은 무신론을 벗을 수 없는 굴레를 가졌으면서. 치욕의 순간, 신의 품으로 들어가는 최후의 순간, 대다수의 목사들은 신을 부정하고, 박 대위의 아버지인 박 목사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길 거부했다. 신 목사는 자신의 배교를 위장하는 것으로 희생자들의 순교를 지켜내지만 이 대위에게 있어서 이런 일련의 모든 행위들이 위선적으로 비춘다.

러시아 문학의 중요한 테마인 ‘바보 성자’의 모습처럼, 가장 낮은 모습으로 그리스도를 구현하는 신 목사의 행위는 원천적으로 신을 믿을 수 없는 자의 절망과의 사투이다. 이것이 신 목사가 짊어진 십자가이며, 순교자들의 진실을 원칙적으로 밝히고자 했던 이 대위의 구원 없는 시대를 감히 저버릴 수 없는 십자가이다. 십자가를 짐 진 모든 자들이 공유하는 은밀한 책무는 완벽하게 절망해버린 인간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희망이라는 볼모가 필요하다는 처참한 인식 때문이다.

장 대령은 기독교 밖에 선 자신들은 ‘국외자’라가 칭했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국외자이며 원칙론자인 이 대위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을 최후의 보루로 여긴다. 국외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순교자의 존재로 애초에 존재했을 지 의문인 구원을 약속받는 행위들은 너무나 무력하다. 그러나 저마다의 십자가 가운데 유독 흔들림이 덜한 이 대위의 가치 기준이 오히려 가장 ‘덜’ 인간적으로 비추는 것은 왜일까? 믿음은, 희망은, 생존은 그것을 회의하면서도 놓을 수 없어 더욱 격렬히 지켜내는 자의 몫이라고 생각에 잠겨드는 것도 국외자의 서른 결론일 뿐이다.

한국전쟁 속의 한국기독교의 존재했음직한 참상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김은국의 『순교자』는 ‘한국색’이 옅다. 신앙의 고전적인 딜레마를 한국전쟁이라는 소재 속에 잘 빚어내어 세계문학의 고전 속으로 성큼 들어서버린 소설과의 늦된 만남은 기이한 데자뷔 속에서 이루어졌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의 ‘대심문관’은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데 신은 필요치 않은 존재라고, 오히려 구원자를 ‘국외자’로 처형한다. 기만과 절망의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하는 자들을 위해 순교, 또는 배교의 십자가를 맨 이는 경계를 초월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스쳐 지난다. 스스로 십자가를 질 수 없는 이들을 위해 그는 경계를 초월해 더 큰 십자가를 맬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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