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샤베트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떤 빛 사진그림책이 나온다한들 『구름빵』의 아성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터이다. 한 권의 그림책이 불러온 찬사, 환호, 장르의 진화는 여전히 가속 중에 있으며, 기존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 아닌 새로운 빛 그림책의 도래를 간곡히 바라마지 않게 하기도 했다. 그러다 한 여름날의 꿈처럼 우리 곁에 온 『달 샤베트』는 명성의 연장선상이기 보다는 상냥한 작가세계의 구축처럼 다가왔다. 개성만점의 빛 그림책의 세계 안에 넘쳐흐르는 정감들은 그저 활자로만 적기엔 너무도 부족하다는 것을 미리 말해두고 싶다.

숨이 턱 막히는 열대야. 고층아파트의 창문은 전부 굳게 닫혀 있다, 에어콘, 선풍기가 쌩쌩 돌아가고 있기에. 어디선가 똑똑 뭔가가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리고 웬걸, 이 무더운 밤에 달이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눈썰미 좋고 알뜰하고 바지런한 반장 할머니의 기지로 달 녹은 물은 온전히 고무대야에 담기는데, 할머니는 이걸 샤베트로 만들어 나누어준다. 다 녹아버린 달 때문에 세상은 깜깜해져버렸지만, 달샤베트를 나누어 먹으니 창문을 활짝 열고 시원한 여름밤 꿈을 꿀 수 있게 되었다니, 이 정도면 제목에 충실한 상냥한 이야기 맞는 거 아닌가?

맛나게 샤베트를 나누어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달이 다 녹아버려서 졸지에 노숙자 신세가 된 옥토끼 두 마리의 출현에 박장대소가 나온다. 집도, 절도 아니, 달도 잃어버린 옥토끼들에게는 실례지만, 외로운 자음을 남발하고 싶은 순간이다, 참으로. 상냥하고 손이 큰 데다 오지랖마저 넓은 반장 할머니가 이 문제는 과연 어떻게 해결할지, 직접 확인해보시라. 길고 길었던, 덥고 또 더웠던 여름이 어느새 끝나고, 시원하기보다는 매서운 가을이 찾아왔지만 이 책을 처음 만난 여름날의 청량함은 내 안에서 아주 예쁜 풍광으로 남았다. 주변의 사랑스러운 꼬마들에게 선물하기도 하면서, 달샤베트를 나누어먹는 대리만족을 느꼈달까.

둥실둥실 구름빵을 출근길 만원버스 속 아빠에게 전해주려는 고양이형제들처럼 백희나의 새로운 캐릭터들은 여전히 동물들이다. 오리고, 자르고, 덧대어 창조해낸 빛 그림 속의 세계는 아기자기하면서도 정교하기 이를 데 없으며, 메시지는 무겁지 않으면서도 명료하다. 달마저 먹여버릴 기세의 열대야를 만들어내는 도심 속의 군상들은 달이 사라지고 나서야 어두워진 것을 인식하고, 녹은 달마저 이웃과 나누는 반장할머니만이 유일하게 베란다 창문을 열고, 부채를 들고 있는 캐릭터이다. 시끄럽지 않지만 분명하게, 웃음을 자아내지만 잊어버리지 않도록 메시지를 전달하는 솜씨가 일품이다.

분명 납작납작한 캐릭터와 조형의 세계인데도 요란스러운 3D의 역습보다 더욱 효과적이다. ‘이 책은 지구의 내일을 위해 콩기름 인쇄를 했고, 비닐 코팅을 하지 않았습니다’라는 뒷부분의 문구에 이르면 구석구석 꼼꼼히 신경 쓴 저자의 마음이 읽히는 것도 같다. 소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지구를 향한, 그리고 이웃을 향해 열린 상냥한 배려를 책을 덮고서도 한동안 느낄 수 있게 될 것이다. 반장 할머니의 달샤베트 대신 이제는 서늘하게 식어버린 가을 달을 떠올리며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비추는 달빛만큼이나 행복한 시간을 그림책으로 누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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