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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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반추하고 전복하는 장르의 묘미를 극대화하는데 미스터리만큼 재미난 것도 없다. 하늘 아래 더는 새로울 게 없다는 시한부 선고마저 재료 삼아 미스터리를 요리하는 솜씨로 명성이 높은 우타노 쇼고의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밀실 트릭'을 이용한 3편의 단편을 모아 놓았다. '클로즈드 서클(폐쇄공간)'이라는 미스터리 트릭의 '클리셰 오브 클리셰'정도 되는 구태스러운 소재로 밋밋한 미스터리를 어레인지하겠다는 포부가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마주하기 시작한다.

일찍이 크리스티 여사가 무던히도 튼튼히 구축해놓으신 클로즈드 서클의 특성상 외부인은 절대로 범인이 될 수 없는 공식대로 범죄의 관계자가 한 곳에 모여 서로를 의심하다 자멸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귀결이다. 긴장의 밀도를 높이고, 피해자와 피의자가 순식간에 바뀌며, 가끔은 시체가 되살아나기도 하는 이 특수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추리의 향연을 망치는 것 또한 '반전을 위한 반전'에 치중하는 작법 때문이기도 하니, 클로즈드 서클의 효용과 한계는 양날의 검이라 할 만하다.

첫 번째 단편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는 '프로페셔널'한 탐정의 비애를 자조 섞인 분위기로 전하고 있다. 세간에는 명탐정으로 칭송받지만 사건의 전말을 책으로 펴내면 손해배상 청구나 당하고, 쥐꼬리만 한 수입이 고작인 탐정 일에 정작 애정도 없는 자칭 명탐정은 초대받은 온천장에서 밀실 살인이 발생하자 범인과의 교섭으로 한 몫을 챙기려 들다 탐정소설 매니아인 조수의 공분을 사 살해당한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새롭게 태어나게 된 명탐정. 생활 감각이 넘쳐 속물로 진화한 탐정의 후예들을 희화화하면서도 세상에서 탐정으로 사는 ‘밥벌이의 지겨움’에 대한 공감을 넘치게 획득하지 않았나 싶다. 노다메가 말한 것처럼 “동정을 하려면 차라리 돈을 줘!”, 어, 이게 아닌데??

두 번째 단편 <생존자, 1명>은 클로즈드 서클의 교과서적인 설정인 무인도에 벌어지는 다섯 남녀가 연이어 발생하는 사고에 서로를 의심하고 의심하다가 정말로 단 한 명의 생존자만 남게 되는 이야기이다. 사이비종교의 종말론을 신봉하다 지하철폭탄테러를 저지르고 무인도로 은신한 이들은 외부와의 완벽한 차단 속에서 배신과 분열에 휩쓸리는 당연한 수순을 밟게 되는데, 이들의 상황을 짐작 가능케 하는 교차 편집된 신문기사들로 인해 때로는 잘못된 믿음이 생존으로 직결되기도 하는 밀폐된 상황을 연출해 보인다. 다섯 명의 남녀가 체류했던 무인도에 최후의 생존자 1인과 사망자 5명이라는 최후의 상황이 암시하는 결말은 충격적이라기보다는 모성이 결부된 상황에서의 치열한 생존욕구를 숙고하게 만든다. 진실보다 절실한 생존의 파급력에 대해.

세 번째 단편 <관館이라는 이름의 낙원에서>는 유서 깊은 서양식 저택인 ‘관’에서 벌어지는 과거 미스터리 동호회였던 중년의 친구들이 모여 ‘관’을 무대로 펼치는 살인사건의 재현이라 할 수 있다. 평생을 꿈꾸던 서양식 관을 건축하고 과거의 친구들을 불러 모아 밀실살인의 역할극을 실행에 옮긴 관의 주인은 생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꿈을 이룬 사람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투덜거리면서도 주인의 괴벽에 맞춰 살인극을 연기하던 친구들이 진짜로 마주하게 된 관의 참극이 정말로 서양식 관의 미스터리를 완성했을 때 느껴지는 진한 연민은 살인과 음모로 뒤덮인 미스터리에의 주체인 인간에 대한 인도적인 시선을 극대화시킨다. 트릭을 위해 소모적으로 희생당할 뿐인 캐릭터가 아니라, 괴로운 인간사를 일평생 짊어진 이의 마지막 소망을 이루는 장소로서의 ‘관’의 궁극적 역할에 대해, 트릭을 위한 트릭을 기대한 독자들에게 그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도록 만든다.

우타노 쇼고의 일본 미스터리 계의 입지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국내에 소개된 작품이 너무 적다.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로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와 『해피엔드에 안녕을』을 비롯해 그가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하반기의 일인데 정통 미스터리이든, 자기 장르에 대한 재구축이든 더 많은 작품으로 우타노 쇼고의 백면상 같은 면모를 파악하고 싶을 따름이다. 미스터리에 대한 충만한 애정과 매너리즘을 타파하려는 저돌적인 스토리텔링이 결합해 탄생한 것 같은 그의 소설들과 대면할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싶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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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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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미답의 수직빙벽에 매달린 형제에게서 느껴지던 생사의 비감, 금기와 사투하며 생을 지난하게 만들어도 결코 놓을 수 없는 지도 장이의 절대 고독, 소녀를 탐한 죄로 오욕을 뒤집어쓸지언정 시와 사랑은 무죄로 선고했던 지독한 애증. 『촐라체』, 『고산자 』, 『은교』, 갈망의 3부작으로 명명된 전작의 광풍 이후로 박범신의 소설과는 조금 거리를 두고 싶었다. 감정의 내핵을 지독스럽게도 파고들어, 불편하고 생경한 감각을 일깨운 후, 생사를 초월한 갈망의 근원에 대해 끝도 없이 고뇌하라는 선고는 그만 듣고 싶었을 런지도 모르겠다. 잠시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지만, 외면하는 것은 더 힘들다는 것이 박범신의 신작을 마주하기 전에 내린 결론이었다.

『비즈니스』의 ‘ㅁ’시는 서해안 방조제 사업으로 인해 급속하게 팽창한 신시가지와 구시가지가 대치하고 있는 형국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정권의 몇 대를 거쳐 온 새만금사업이 그 모델인 것은 자명한 일이고, 신시가와 구시가가 강남과 강북을 고스란히 재현하는 모양새까지, 어쩌면 2010년의 묵직한 족적이었던 황석영의 『강남몽』이나 조정래의 『허수아비춤』과 일맥상통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통렬한 고발일 수도 있겠다는 짐작은 조금씩 엇갈려가기 시작했다. 강남의 형성사나 재벌 비리에 대한 또 한 편의 소설이겠거니 생각했던 인상이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소설 속의 인물들의 ‘비즈니스’가 자본주의의 가장 저급한 곳에서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해안의 중국교역의 최전방이 되어 비정상적인 속도로 양적팽창을 이룬 ‘ㅁ’시의 성공신화는 소설의 중요한 배경이기도 하지만, 성공신화를 조명이 아닌 이면의 삶을 ‘비즈니스’로 포장해서 버텨내야하는 인물군상에 대한 자조가 씁쓸하게 담겨있다. 서해안의 강남으로 우뚝 선 신시가가 급부상할수록 쓰레기와 실패한 삶만이 남게 된 구시가의 비루함은 날로 퇴색되어간다. 신시가의 행태에 욕설을 퍼부으면서도 당장의 생명줄을 보장받고, 그곳으로의 탈출을 꿈꾸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불협화음은 정통적인 사회파소설이라기보다는 멜로드라마처럼 섬세하게 표출되고 있기도 한데, 갈망의 3부작과는 달리 ‘비즈니스’를 강요받은 여성의 복잡 미묘한 심리가 극적으로 펼쳐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0회도 넘는 사시실패로 모든 욕구를 거세당하고 노쇠함만 남은 남편과 ㅁ시로 낙향해, 아들을 신시가로 전학시키고 고액과외비를 대기 위해 몸을 파는 비즈니스를 시작한 나는 수직적인 도시의 생존경쟁에서 도태되는 것보다 정결을 버리는 것이 낫다는 신시가적 꿈을 아들에게 쏟아 붓기 시작한다. 그 무렵 출몰하는 신시가의 도시가스관을 타고 부유층만을 터는 ‘타잔’이라는 도둑의 일이 이슈가 되고, 나는 그 도둑과 ‘비즈니스’로 마주치게 된다. 매춘을 비즈니스로 삼은 중년여인과 강도를 비즈니스로 삼은 구시가의 전형적인 실패한 인생인 정준하의 만남은 파멸이 예고되어 있지만, 그네들이 비즈니스에 골몰할수록 가족과 유리되는 현실을 사는 반동으로 한층 더 깊은 유대감을 나누게 된다.

ㅁ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건실한 윤리도, 사회적 책임도 아닌 자본의 흐름을 놓치지 않고, 차근차근 인맥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일탈하지 않는 것이다. 스폰서와 돈 많은 남편으로 자본을 쟁취한 친구 주리가 자신이 스폰서가 되어 젊은 예술가와의 결합을 사랑이라 부르며 자초하는 과정은 자본의 본질을 망각하고 편의적으로 왜곡하려했던 결과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들의 고액과비를 벌기 위해 비즈니스를 해나가는 동안 남편과의 사이는 더욱 정물적으로 변하고, 도둑이면서도 누구보다 선량하고 정의로운 정준하는 가까이할 수록 애정이 아닌 ‘공범’으로 묶이게 되는 위험천만한 관계를 조성할 뿐이다.


타잔의 정체가 발각되고, 그 여파로 비즈니스의 정체가 폭로되어버린 내가 신시가의 꿈에서 떨려나와 주리의 어머니처럼 돼지기름 냄새를 달고 살게 되는 수순은 자본주의의 행태에 있어서는 물론 이루 말할 수 없는 몰락이라 해야 한다. 그렇지만 남편과 아들과 헤어진 채 , 타잔이 남긴 자폐아와 반지하방에 남은 나는 비로소 인생을 ‘흐뭇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성공을 위해, 신시가적 삶을 위해 자본주의의 질서에 순응하고 부도덕한 비즈니스를 벗지 못했던 과거의 안락함이 아니라, 저잣거리의 누릿한 돼지기름 냄새 속에서 인간성의 회복을 꾀하는 나의 모습은 실패이기도 하지만, 비로소 고약하기 그지없는 비즈니스를 벗게 된 의지의 화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의 성공의 상징이 도심의 마천루인 것은 분명하다. 그 매끈하고 까마득한 성공한 이들을 위한 랜드마크의 최상층에 입주하기 위해서는 쓰레기만 남은 실패와 좌절로 가득한 구시가적 삶으로 전락하기 앞서, 이유와 도덕을 불문하고 성공의 행로라고 명명된 순차적인 질서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지배적인 현실을 산다. ‘정치인의 거짓말’이 ㅁ시의 경우처럼 거대한 신 강남의 구축으로 이어진다면 질타의 목소리는 얼마든지 묵살할 수도 있는 허기진 시절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비즈니스』에서 본다. 부를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도심의 심장부의 스위트룸에 진입한 이들과 인성과 도덕의 마비에서 가까스로 헤어 나온 여인의 모습 중 무엇이 진정한 성공일지, 자본주의의 시대에서 고뇌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박범신의 물음은 언제나 우직하고, 깊은 울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는 순간, 각자의 해답을 위해 진짜 비즈니스를 행하도록 해야 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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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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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의 대륙을 작가는 ‘길 위의 시대’라고 명명한다. 지구상의 어떤 곳보다 자본주의가 만개한 90년대 이후의 중국이 아닌 유랑하는 시인들을 길 위에서 보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던 순수와 이상을 좇는 청년들의 시대를 반추하는 일은 결국 고통과 절망을 배가시키기도 하는 일이지만, 대륙의 전역에 시가 넘쳐났던 최후의 시간과의 조우는 아련한 황톳빛 노스탤지어가 되어 날아들었다. 작가 장윈과의 첫 만남은 시를 잃어버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대륙의 이야기만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길 위의 시대』는 한 시인과 운명적 사랑을 나눈 두 명의 여인의 삶의 궤적을 펼쳐놓는다. 천샹은 보잘 것 없는 자신의 도시를 찾아온 시인 망허와의 하룻밤을 통해 시인의 아이를 임신한 채 선량하기 그지없는 저우징옌과 결혼한다. 자신이 잉태한 것이 시의 정수이며, 망허와의 추억을 고스란히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자 하는 이 여인은 모든 등장인물을 통틀어 삶을 우위에 선 시를 향한 애정을 갈구하고, 추구한다. 엄청난 배신과 추문으로 다가오는 미래가 멀지 않았다는 잔혹함마저 시의 이면일수도 있으니, 천샹은 시를 사랑했기에 파멸하고 만다.

 안정적 생활을 보장하는 학술원의 끝자락을 가까스로 내치고 길 위에 선 젊은 시인 망허는 ‘저우시커우’로 석사논문을 쓰기 위해 오지를 답사하는 대학원생 예러우와 벼락같은 사랑에 빠진다. 명대부터 근대까지 고향을 등지고 초원으로 이주한 이들을 가리키는 ‘저우시커우’의 유량을 좇는 예러우는 길 위의 여정에서 마주치는 촌로들이 들려주는 인생들을 그네들보다 귀하게 여기는 여인이다. 시인과는 영속된 정을 주고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망허를 거부하던 그녀를 평생으로 묶고 싶어 하는 것은 오히려 망허가 되어버릴 정도로 그녀는 길 위에서 태고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예러우의 요절은 망허에게 있어 시와의 단절을 부르고, 유랑 길에서 산화한 젊음의 끝에는 가파른 인생의 질곡이 예정되어 있다.

아들 샤오촨의 생부가 시인 망허를 사칭한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천샹 안에서는 모든 인생의 빛이 꺼져버리는데, 어미로서 아들에 대한 근원적 애정보다 시성을 잉태하고 길러내었다는 순수를 더럽혔다는 충격 앞에서 철저하게 붕괴되어 간다. 한편 망허가 시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맞이하는 것은 또 다른 유량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곧 자본과의 유착을 공고이하는 돈을 좇는 길 위의 삶이다. 시인으로서의 망허를 지우고, 사업가 자오밍산으로 다시 태어난 그가, 천샹의 과거사를 듣게 되는 운명의 엮임은 다분히 작위적인 설정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자본의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시의 종언을 선고한다기보다 더 애틋하게 살아남게 되는 불멸로 가는 변태의 여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두 여인의 삶에 향방을 완전히 뒤바꿔놓는 시인 망허는 마치 낭만주의 시대의 종결 즈음에 태어난 경계에 선 남자와도 같다. 유럽의 전장을 상처받은 순수와 함께 누비던 바이런의 주인공 같기도 하고, 낭만주의 소설의 그림자로 화해버린 실체를 잃은 예브게니 오네긴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그는 두 여인을 통해 나타난 굴절된 사랑 속에서는 이상적 시인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시인으로서의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자각을 뒤늦게 서야 깨닫는다. 소설에서 시인으로서의 망허를 가장 순수하게 형상화하는 부분은 천샹이 아들 샤오촨에게 생부의 존재를 절절하게 묘사해놓은 편지부분에서이다. 예러우를 잃고, 시와 결별한 자오밍산이 다시 망허로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 편지 덕분이기도 하다.

“언젠가 단풍이 지는 계절에 들판의 큰길을 걷다가 금방 세수를 마친 듯 청신한 하늘 아해 황금빛 수양버들이 한들거리고, 샛노란 은행잎이 팔락이며 네 발등으로 내려와 앉는다면, 넌 그 순진무구하고 눈부신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되겠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왜 평생토록 그런 순수한 길만 걷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바로 네 생부처럼 말이지.”(p.83)


과거의 망허이자 자본가 자오밍샨이 정신적 붕괴를 딛고 일어서 교육의 현장에서 봉사하는 천샹과의 의미심장한 해후를 하는 장면은 얽긴 인연의 실타래를 푸는 회환의 장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인연은 침묵 속으로 침잠하고, 시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네들의 상처받은 내면에 봉인되었다가 애틋하게 풀려 나오게 되었으니. 길 위의 시대를 유랑하던 젊은이들은 자본의 시대에 안착하기에는 지나치게 여린 영혼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와 결별하고 정신없이 황금을 좇는 시간을 의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이만이 생존하는 수직적인 삶의 행태에 뼛속까지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길 위의 시대는 지워진 듯, 흐려진 듯 가려져 있었을 뿐, 되돌아본 적이 없어 그렇게 놓치고 있었음을 시리게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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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과의 전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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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로 대표되는 카렐 차페크의 이미지가 얼마나 지엽적인 것인지 부터 타파하는 것이 『도롱뇽과의 전쟁』을 읽는 내내 선결되어야할 과제였을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이 체코 출신의 세계적인 문호와의 뒤늦은 만남에서 무언가에 영향 받는 일조차 없이 이렇게 폭풍처럼 휘말리다 소름이 돋고, 그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 축복으로 다가오기도 했으니, 내 무지에 경배를……까지는 아니라 해도, 어험! 공상과학이라는 용어조차 확립되기 전, '로봇'의 아버지 가운데 한 사람(다른 한 사람은 차페크의 형이다)이기도 한 체코의 거장은 올해 가장 마지막으로 만났지만 가장 커다란 족적을 아로새겼음을 선언하는 바이다!


데블베이라는 의심쩍은 지명이 말해주는 것처럼 원주민들이 극히 꺼려하는 태평양의 심해에는 형용하기 힘든 생물체가 출현한다. 진주 잡이 배의 선장인 반 토흐만이 이 괴생물체의 존재가치를 '악마'가 아닌 것으로 접근하는데, 바다 밑에 득실거리는 진주를 건져다주는 착한 도롱뇽으로써 인간사회에 소개하게 된다. 두 다리로 걷고, 인간의 언어를 따라할 수 있으며,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이 해양 도롱뇽들은 진화에 역행하는 이단적인 존재이지만, 성실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자기방어조차 하지 않는 순박한 생물이었기에 반 토흐 선장 사후 그 쓰임새는 인류 문명 전반에 걸쳐 새로운 전환점이 된다.


데블베이의 악마가 아니라 전 세계 해안으로 실어 날아진 도롱뇽들은 새로운 해안선을 구축하며 인간의 활동영역을 심해로 확장시키는데 선봉이 된다. 인간이 제공하는 곡물과 다이너마이트, 상어총 등과 교환된 도롱뇽의 노동력은 해양건설의 영역이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도 각광받는데, 각국의 비공식적인 예비 군비가 되어 인류 역사상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게 한다. 도롱뇽의 권익을 어디까지 보호해야하는지, 도롱뇽의 무장을 과연 허용해야하는지, 도롱뇽과 인간 사회의 유착은 과연 이대로 안전할 것인지에 대한 각계의 논의보다 앞서는 것은 물론 도롱뇽이 창출하는 극대화된 이문으로, 도롱뇽의 극단적인 양적 팽창이 가져오는 불안함을 감지하는 일각의 우려는 도롱뇽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특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된다.


도롱뇽이 어떻게 인간 사회와 유착되는지를 다룬 1부 '안드리아스 스케우크제리', 그들이 문명에 끼치고 있는 다각적인 영향을 다룬 2부 '문명의 사다리를 오르다'에 이어 3부 '도롱뇽과의 전쟁'은 전 세계의 바다를 장악한 도롱뇽의 인류 문명에 대한 역공을 다루고 있는데, 이미 예고된 불안이었다고 해도 그 충격과 경악의 강도는 결코 희석시킬 수가 없다. 도롱뇽이 인간을 위해 건설하던 새로운 영토가 아니라, 도롱뇽에게 새로운 해안선과 모래톱을 제공하기 위해 '구 대륙'들을 심해로 가라앉히는 모습을 목도해야하는 심정은 실로 편치가 않다. 도롱뇽의 극단적인 팽창을 재산과 군비의 확충으로 인식해오던 인간들이 도롱뇽의 생존을 위해 도태되어야하는 종으로 전락하는 과정이 어찌나 자연스럽게 전개되는지, 그것이 또 다른 충격의 일환으로 다가오는 것은 물론이다.


차페크가 오랫동안 노벨상 후보에 머무르다 번번이 수상을 실패한 이유로 한림원이 제기한 '문학이 아닌 저널리즘이다' 또는 '정치색이 너무 강하다'는 견해를 코웃음으로 받아칠 수 있었던 장르의 경계를 초탈해버린 차페크의 문학적 깊이는 이 한 권으로 따라잡을 수 없는 마의 영역이기는 하나, 가늠해볼 수 있는 무척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다. 소설 안의 학술적, 미학적, 분석적인 주석 하나하나를 모조리 창조해내는 무한한 능력에 잠식되지 않을 수 있는 최대의 무기는 단연 위트의 힘이다. 인간의 문명을 답습해서 도롱뇽의 문명을 창출하는 역습의 과정 내내 인간들이 보여주는 현실인식의 한계와 작태에서 빚어지는 해프닝 속에서 들여다보이는 촌철살인이 도롱뇽의 번식력 이상으로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구에게 있어서 인류는 진화의 선봉에 선 최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살아남아야할 종이기보다는 자신들의 터전을 스스로 파괴하는 생태계 교란의 전범일 것이다. 전쟁을 위한 전쟁에 힘쓰는 파시즘의 노예들을 한 순간도 주저 없이 꾸짖었던 양심적 언론인이기도 했던 차페크의 현실인식은 인간에 대한 탄식과 사형선고에만 힘을 쏟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롱뇽에게 잠식당한 인류의 적은 도롱뇽이 아니라 인간이면서, 인간의 멸종을 앞두고 그것을 반성하는 것도 인간이다. 반 토흐 선장과 도롱뇽 산업을 연결해준 커넥션의 중심에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부호의 문지기 포본드라 씨에 대한 작가의 살가운 시선은 경악할만한 반전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 인류 문명의 총화는 어디까지나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을 때에만 재한다는 지극히 인간미 넘치는 시대를 초월한 경고가 각인되어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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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랩소디>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토마토 랩소디
애덤 셸 지음, 문영혜 옮김 / 문예중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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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벅터벅 나귀의 느린 걸음에 실려 지나치기만 해도 취기가 올라올 것 같은 포도가 주렁주렁 매달린 토스카나 지방의 건강한 태양빛 아래, 과실과 채소가 영글고, 로맨스와 음모 또한 무르익어간다. 중세 이탈리아 토스카나를 배경으로 삼아 로맨스에 양념을 더해줄 역경은 종교와 민족적인 대치 속에는, 유대교 청년과 가톨릭 처녀의 고난을 잠식시켜줄 맛깔난 레시피들이 즐비한 탓인지, 동정을 보내기 이전에 군침이 도는 것도 어쩔 수 없다. 포도밭, 올리브 나무 사이로 보이는 금기의 열매였던 '사랑의 사과' 토마토의 농익은 매력은 어쩌면 금기의 사랑만큼이나 특별한 입지를 자랑하는 탓에 이 책의 주인공은 선남선녀이자 비옥한 토스카나 지방의 농작물이기도 하니, 읽다보면 허기가 지는 단점만 제한다면 입맛을 돋우는 참신한 이야기가 되어줄 것을 확신하다. 『토마토 랩소디』안의 복작복작한 토스카나 주민들의 삶의 레시피 속으로 들어가기로 하자 단, 당신이 공복상태가 아니라면.


올리브 농장의 건실한 주인이었던 아버지의 의문사 이후, 재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뜨내기 부랑자와 결혼한 어머니는 반신불수이며, 새 아버지란 작자는 의붓딸의 노동력을 착취해 배를 불리며 지참금마저 아까워하는 위인이었으니, 우리의 처녀 마리에게는 포도주와 올리브 절임을 빚는 시간만이 위안이 되어줄 뿐이다. 시장에서 마주친 그 청년을 만나기 전까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의 '신대륙' 발견을 함께하기도 했으며 이사벨라 여왕의 재정담당관이었던 논노는, 종교재판의 광풍을 피해 은닉한 재산으로 토스카나에 정착해 손자 다비도와 토스카나에 유대 공동체를 정착시키고자 애쓴다. 유대인과 토마토는 둘 다 터부의 존재이기도 하니, 다비도가 재배하는 풍만한 토마토가 암시하는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기도 한다. 함께 농장을 꾸려갈 매력적인 발목을 가진 생기 넘치는 배우자를 꿈꾸는 다비도가 그 처녀, 마리를 발견한 것은 벼락같은 로맨스의 시작이기도 하며, 토마토 소스로 버물린 파스타와 피자의 기원이 되어주기도 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야밤의 공복 상태의 당신이라면 허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메디치 가문을 고스란히 카피한 '메두치 가'를 등장시켜 희비극의 요소를 충만히 하고, 탐욕과 아집에 물든 토스카나 주민들 사이사이에 아프리카에서 주술사에 의해 보랏빛 '가지' 피부를 갖게 된 선량한 신부 굿 파드레와 마리의 혐오스러운 의붓아버지 주세페, 주세페의 하수인이자 비루먹은 베니토 등의 인물군상은 끊임없는 방해공작과 의외의 도움을 엮어나가며 다비도와 마리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기도 하고, 작가가 컨트롤할 수 없는 정력적인 생명력 탓인지 이야기를 장황하게 만드는 비대해진 곁가지 노릇을 하기도 한다. 자로 잰 듯 정확하고, 촌각을 다투는 타이밍에, 거두절미하게 털어놓는 이탈리아 극이 있을 수 없듯, 토스카나의 광활한 옥토 속에서 펼쳐지는 촌극의 이면에는 돌발적인 변수가 너무도 많아 의외의 레시피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어주기도 한다.


다비도의 토마토는 마리의 포도주 비법과 만나 가마솥 안에서 나누는 육체적 사랑과 더불어 전설적인 토마토 소스의 신기원이 되고, 먹다 남은 빵에 발라 소스를 발라 적당히 구워내면 피자로 승화된다. 금기란 무섭고 병적인 요소가 아닌, 기존 질서 유지자들의 질시와 모함의 이면이 강한 것처럼 다비도와 마리의 결합은 토스카나 촌락을 울고, 웃게 만들며 더욱 건강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애정과 애증과 탐욕과 관용이 한데 어우러지며 한층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인생의 법칙으로 수렴되는 모습은 마치, 남아있는 재료를 이것저것 집어넣고 뚝딱 만들어낸 별미와도 같다. 로맨스와 음모가 양립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인생이 곧 밋밋해지고 마는 것처럼.


황토이랑 사이사이의 탐스럽게 익어가는 토마토의 붉은빛, 두 번 짜낸 올리브유의 황금빛, 이성을 마비시키는 독버섯으로 증류된 비밀스러운 포도주 빛, 굿 파드레의 불가해한 퍼짓듯한 가짓빛 피부 등등. 토스카나의 어지러운 태양 아래 발효되고 농축되어가는 삶을 힘겹게도, 향기롭게도 만드는 생명력 넘치는 에너지로 가득 채워진 진탕 먹고, 놀고, 울고, 웃는 이야기의 향연이 초래한 군침과 공복의 사투 속에서 더욱 더 인상 깊은 이야기가 무르익어 감을 허기와 함께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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