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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시대
장윈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평점 :
80년대의 대륙을 작가는 ‘길 위의 시대’라고 명명한다. 지구상의 어떤 곳보다 자본주의가 만개한 90년대 이후의 중국이 아닌 유랑하는 시인들을 길 위에서 보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났던 순수와 이상을 좇는 청년들의 시대를 반추하는 일은 결국 고통과 절망을 배가시키기도 하는 일이지만, 대륙의 전역에 시가 넘쳐났던 최후의 시간과의 조우는 아련한 황톳빛 노스탤지어가 되어 날아들었다. 작가 장윈과의 첫 만남은 시를 잃어버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대륙의 이야기만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길 위의 시대』는 한 시인과 운명적 사랑을 나눈 두 명의 여인의 삶의 궤적을 펼쳐놓는다. 천샹은 보잘 것 없는 자신의 도시를 찾아온 시인 망허와의 하룻밤을 통해 시인의 아이를 임신한 채 선량하기 그지없는 저우징옌과 결혼한다. 자신이 잉태한 것이 시의 정수이며, 망허와의 추억을 고스란히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평생을 헌신하고자 하는 이 여인은 모든 등장인물을 통틀어 삶을 우위에 선 시를 향한 애정을 갈구하고, 추구한다. 엄청난 배신과 추문으로 다가오는 미래가 멀지 않았다는 잔혹함마저 시의 이면일수도 있으니, 천샹은 시를 사랑했기에 파멸하고 만다.
안정적 생활을 보장하는 학술원의 끝자락을 가까스로 내치고 길 위에 선 젊은 시인 망허는 ‘저우시커우’로 석사논문을 쓰기 위해 오지를 답사하는 대학원생 예러우와 벼락같은 사랑에 빠진다. 명대부터 근대까지 고향을 등지고 초원으로 이주한 이들을 가리키는 ‘저우시커우’의 유량을 좇는 예러우는 길 위의 여정에서 마주치는 촌로들이 들려주는 인생들을 그네들보다 귀하게 여기는 여인이다. 시인과는 영속된 정을 주고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망허를 거부하던 그녀를 평생으로 묶고 싶어 하는 것은 오히려 망허가 되어버릴 정도로 그녀는 길 위에서 태고의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예러우의 요절은 망허에게 있어 시와의 단절을 부르고, 유랑 길에서 산화한 젊음의 끝에는 가파른 인생의 질곡이 예정되어 있다.
아들 샤오촨의 생부가 시인 망허를 사칭한 남자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천샹 안에서는 모든 인생의 빛이 꺼져버리는데, 어미로서 아들에 대한 근원적 애정보다 시성을 잉태하고 길러내었다는 순수를 더럽혔다는 충격 앞에서 철저하게 붕괴되어 간다. 한편 망허가 시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맞이하는 것은 또 다른 유량의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곧 자본과의 유착을 공고이하는 돈을 좇는 길 위의 삶이다. 시인으로서의 망허를 지우고, 사업가 자오밍산으로 다시 태어난 그가, 천샹의 과거사를 듣게 되는 운명의 엮임은 다분히 작위적인 설정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자본의 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시의 종언을 선고한다기보다 더 애틋하게 살아남게 되는 불멸로 가는 변태의 여정이라고 말하고 싶다.
두 여인의 삶에 향방을 완전히 뒤바꿔놓는 시인 망허는 마치 낭만주의 시대의 종결 즈음에 태어난 경계에 선 남자와도 같다. 유럽의 전장을 상처받은 순수와 함께 누비던 바이런의 주인공 같기도 하고, 낭만주의 소설의 그림자로 화해버린 실체를 잃은 예브게니 오네긴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그는 두 여인을 통해 나타난 굴절된 사랑 속에서는 이상적 시인의 모습으로 등장하지만, 시인으로서의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자각을 뒤늦게 서야 깨닫는다. 소설에서 시인으로서의 망허를 가장 순수하게 형상화하는 부분은 천샹이 아들 샤오촨에게 생부의 존재를 절절하게 묘사해놓은 편지부분에서이다. 예러우를 잃고, 시와 결별한 자오밍산이 다시 망허로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것도 그 편지 덕분이기도 하다.
“언젠가 단풍이 지는 계절에 들판의 큰길을 걷다가 금방 세수를 마친 듯 청신한 하늘 아해 황금빛 수양버들이 한들거리고, 샛노란 은행잎이 팔락이며 네 발등으로 내려와 앉는다면, 넌 그 순진무구하고 눈부신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되겠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왜 평생토록 그런 순수한 길만 걷고 싶어 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바로 네 생부처럼 말이지.”(p.83)
과거의 망허이자 자본가 자오밍샨이 정신적 붕괴를 딛고 일어서 교육의 현장에서 봉사하는 천샹과의 의미심장한 해후를 하는 장면은 얽긴 인연의 실타래를 푸는 회환의 장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인연은 침묵 속으로 침잠하고, 시는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라 다만 그네들의 상처받은 내면에 봉인되었다가 애틋하게 풀려 나오게 되었으니. 길 위의 시대를 유랑하던 젊은이들은 자본의 시대에 안착하기에는 지나치게 여린 영혼들이었을지도 모른다. 과거와 결별하고 정신없이 황금을 좇는 시간을 의심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이만이 생존하는 수직적인 삶의 행태에 뼛속까지 익숙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길 위의 시대는 지워진 듯, 흐려진 듯 가려져 있었을 뿐, 되돌아본 적이 없어 그렇게 놓치고 있었음을 시리게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