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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오래전의 일이긴 하지만 문예잡지의 연재소설이나 신문소설을 열심히 따라 읽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전자는 아빠의 취향에 따른 혜택이었고, 후자는 『새의 선물』의 작가가 당시 구독했던 신문에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를 연재했었기 때문이다. 꽤나 어렸던 내가 언니의 책장에서 『새의 선물』을 읽고 받았던 충격이란. 지금 생각해도 파격적이고 적나라한 묘사가 가득했던 그의 소설을 신문지상에서 날마다 엿보는 것은 매우 자극적인 일이었기에, 후에 단행본으로 만났을 때의 감흥은 오히려 그 시절만큼의 동요를 부르진 않았다. 내가 끝까지 완독한 신문연재소설은 은희경의 작품이 유일했고, 그의 소설집과 여러 대표작들에 받았던 인상은 여전히 파격과 원숙의 경계를 넘나들었기에 어찌 보면 은희경에 대한 유년의 기억은 쉽사리 변형되지 않곤 했다.
신문연재 같은 예스럽고 정통적인 연재방식이 온라인으로 옮겨 온지도 어언, 은희경의 신작 또한 네이버의 문학동네 카페에서 일일 연재 되었던 것은 시대적 변화의 소산이겠지만, 신문소설을 열심히 따라 읽었던 그 시절을 떠올린다면 격세지감을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다고나 할까. 흐릿하고 구김이 많은 신문 지면보다 온라인 일일연재를 따라 읽는 것이 여전히 서툰 나는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평을 들을지라도 종이책에 대한 격심한 애정 탓으로 치부하며, 클릭의 순간을 억누르게 위해 사투를 벌이며 단행본으로 묶이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을 기다린 셈이다. 『소년을 위로해줘』와 만나기까지.
열일곱의 연우가 자신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관조적이기까지 하다. 연우의 소년기를 수식하는 단어에는 반항이나 방랑 같은 고전적인 클리셰 대신 고요한 자기혁명의 힙합 래핑이 깃들어있다. 이토록 차분히 자신의 소년기를 반추할 수 있는 열일곱이 세상에 존재할까하는 의문은, 소설 전체에 흐르는 키비를 비롯한 힙합 뮤지션들의 읇조림으로 대변되는 서정적인 자기언어와 교차되면서 세상의 모든 소년들의 개별성을 혁명하기에 이른다. 남자다움을 강요받고, 평범함의 틀을 벗어나는 순간 마주쳐야하는 극단적인 경계의 시선들과의 끊임없는 사투가 방대한 페이지 내내 계속되는 것은 결코 편치만은 않다. 소년을 이야기하는 은희경의 화법은 힙합의 라임 안에서도 순종하는 법이 없으니.
옷 칼럼니스트인 엄마와 단둘이 사는 연우는 이사 온 첫 날, 자신의 방을 올려다보는 소녀에게 눈을 빼앗기는데 그 방의 전 주인이었던 소녀의 선배는 두 사람의 관계에 큰 변수가 된다. 법정까지 가야했던 사고로 귀국한 독고태수와 친구가 된 연우는, 그 소녀 채영과 친밀한 사이로 발전한다. 태수가 권해준 고등학생 힙합 뮤지션 'G-그리핀'의 노래들은 연우가 표출하지 못했던 세상에 대한 확고한 자기의식을 대변해주는 창구가 되고, 그의 언어들은 채영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면의 교감이 되어준다. 첫 눈을 함께 보는 사이로 발전한 연우와 채영의 사이에, 'G-그리핀'의 정체가 이사간 전 주인이자, 채영의 선배였던 민기훈으로 밝혀진 후 연우는 채영과의 사이에서 단절감을 떨칠 수가 없게 된다.
남자답지 못하고 눈 밖에 나는 일을 극도로 싫어하는 연우, 지진아라고 치부되었던 과거를 가진 세상과 섞일 수 없는 채영, 사건사고를 부르는 자력을 가지고 있는 위태로운 태수로 대변되는 공식적인 나이의 소년들과 더불어, 여전히 소년을 벗지 못한 어른들에 대한 조명이 비등하게 진행되는 것을 느낀다. 친절과 배려로 자신을 무장하지만 무거운 관계를 견디지 못하고 늘 도망치는 연우의 엄마 신민아 씨, 힙합 칼럼을 연재하는 엄마의 연하 애인 재욱 형, 권위적이고 독선적이지만 자신과 맞지 않는 그 옷을 벗어버리지 못하는 채영의 아버지, 태수와 마리 남매의 모든 것을 컨트롤하려고 하지만 행복하지 못한 태수의 엄마 등. 한때 소년이었던 이들이 각기 미완의 성장으로 불완전한 삶을 틀에 맞추어, 또는 틀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모습은 소년들의 자기혁명에 때로는 상처, 격려, 연민이 되어 나타난다.
"내가 남하고 다르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 그거 몹시 힘든 일이야. 모든 게 다 자기 책임이 되거든. 안전한 집단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여야 하고, 정해진 가치에 따르지 않으려면 하나하나 자기가 만들어가야 해. 또 무리에서 떨어져나가면 끊임없이 자기에 대해 설명해야 해. 경쟁을 피하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라 남과 다른 방식을 적극적으로 선택하는 일이라면 말야. 어쨌거나 나는 네 선택이 마음에 들어. 우리, 재미없는데도 꾹 참으면서 남들한테 맞춰 살지는 말자. 혼자면 재미없다는 것, 그것도 다 사람을 몇 무더기로 묶은 다음 이름표ㅕ를 붙이고 마음대로 끌고 다니려는, 잘못된 세상이 만들어낸 헛소문 같은 거야. 혼자라는 게 싫으면 그때부터는 문제가 되지만 혼자라는 자체가 문제는 아니거든." (p.171)
신민아씨, 엄마의 인생론은 연우의 미숙함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닥쳐오는 현실의 벽을 그려내 주기도 하지만, '소년'을 상실하지 않는 대가는 비우호적인 시선들에 자신을 고스란히 노출시켜야하는 고독을 가져오기도 한다. 화목하게 지내야만 좋은 가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행복이 가정을 결속시키기도 한다는 이야기 또한 연우와 채영과 태수네 사정을 짐작가능하게 하지만, 소년과 소년이었던 이들의 간극은 화합보다는 참사를 부르는 몰이해로 치닫기가 쉽다. 소년을, 한때 소년이었던 이들을 위한 위로가 이다지도 절실한 이유는, 소년다움과의 이별을 자의든 타의든 간에 강요받는 시절을 살아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리핀의 날개를 달고, 자신의 잃어버린 조각을 지닌 상대를 찾아야하는 지상의 과제를 망각하기 일쑤인 미숙한 소년들을 위한 친절하지는 않지만, 결코 눈을 속이는 일은 없는 안내서를 만난 격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