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0월 21일(일)
마신 양: 소주 한병 반 --> 생맥주
써클 체육대회에 갔다. 내가 간 것은 기생충학 선생님이기도 한 써클 지도교수와의 의리 때문이었는데, 가보니 교수님과 놀만한 나이든 선배가 몇 없어 가기 잘했다 싶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난 엔터테이너로서 참 뛰어난 자질을 가진 것 같다. 다른 친구들은 20년 정도 차이가 나는 후배들과 앉아 있노라면 할 말이 없다는데, 난 맥주를 마시면서 줄곧 그들을 자지러지게 만들었으니까. 내 양 옆에 있는 후배들이 눈이 작은 데 착안, ‘눈작은 테이블’을 만들어 눈 큰 애들을 배척하면서 놀았는데, 그게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었다.
각자 눈이 작아 고생했던 경험담을 얘기할 때는 잠시 숙연해지기도 했다. 한 여학생의 회고담. 안과에 갔더니 선생이 이런다.
선생: 눈 좀 크게 떠봐요.
그: 크게 뜬 건데요.
그러자 선생은, 한숨을 푹 내쉰 뒤 이렇게 말했단다.
“간호사, 이 환자 눈꺼플 좀 땡겨 줘.”
우리 써클은 이대 의대랑 조인트 써클로, 한때는 비슷한 성격의 진료봉사 써클이 4개나 되었다. 그래서 내가 학생 때, 그리고 졸업 후 한동안 4개 써클 체육대회라는 게 벌어지곤 했다. 당시 내가 공을 몰고 갈 때면 “오빠!” 하는 응원 소리가 귀에 들려왔고, 승부에 집착하다 과열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머지 3개 써클이 다 와해되어, 우리 써클 애들끼리 편을 나누어 시합을 한다. 그러니 누가 이긴들 관심이나 있으랴. 예과와 본과가 축구를 해도, 발야구를 해도 다들 관심이 없고 심드렁한 표정이다. 한 선배가 말한다.
“역시 적이 있어야 해.”
맞다. 다른 써클과 대항전을 한다면 분위기가 그렇진 않았겠지. 그러고보니 소련의 해체 이후 심난해진 부시가 끊임없이 적을 만들려고 하는 게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우리 써클 애들이 적 앞에서 뭉친다고 큰일이 나는 게 없는 반면, 부시와 미국 애들이 즐겁고자 적을 만드는 건 수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가져온다는 게 문제다. 부시에게 한마디.
“정 심심하면 부시배 쟁탈 주 체육대회라도 하렴. 주가 50개가 넘으니 풀리그로 하다보면 일년 금방 가잖아?”
그날의 문제점은 역시 돈을 너무 많이 썼다는 것. 나보다 2년 선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분이 성형외과 개업의였음에도, 2차를 왜 내가 계산했을까? 어떤 미녀가 내게 “지갑을 열기 어려운 걸로 바꿔라”고 했는데, 그 말이 실감나는 순간. 더 안타까운 사실. 학생들 역시 술에 취해 있었던지라 내가 계산했단 사실조차 모르는 듯하다. 아, 계산하면서 폼이라도 잡을 걸, 왜 몰래 계산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