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요즘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너무 치밀해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수작과
‘이건 뭐지?’라는 의아함을 갖게 만드는 범작을 왔다 갔다 한다.
최근작 <위험한 비너스>는 아쉽게도 후자에 속한다.
물론 그가 기본은 하는 작가라 범작이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재미는 제공하지만,
사건이 해결되고 난 뒤에 느껴야 할 카타르시스가 영 부족하다.
그래서일까.
<위험한 비너스>에서 저자는 여성의 미모로 스토리의 부족함을 메우려 한다.
저자의 다른 책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지만, 이 책은 대놓고 미모로 때운다.
책의 도입부에서 한 여성이 하쿠로라는 이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에 온다.
그녀에 대한 소개를 보자.
“상당한 미인이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6쪽)
그런데 하쿠로의 조수도 만만치 않다.
“나이 서른 살의 이 여성조수도 싸늘한 기품을 풍기는 미인”이다. (같은 쪽)
하쿠로가 이 조수를 채용한 이유가 뭘까?
“처음 보자마자 하쿠로는 채용을 결정했다. 물론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생판 아마추어일 테지만, 일은 어떻게든 가르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142쪽)
조수는 갑자기 등장해 하쿠로를 귀찮게 하는 미녀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다음은 그 조수와 하쿠로가 나누는 대화다.
조수: 오늘도 데이트예요?
하쿠로: 데이트라니. 그냥 친척 집에 데려다주는 것뿐입니다.
조수: 가슴이...꽤 크던데요? (113쪽)
다행스럽게도 이름이 가에데라는 그 미녀는 하쿠로의 제수씨였다.
하쿠로와 연락을 안하고 지내는 남동생과 미국서 결혼했다나.
그런데 그 남동생이 실종돼 찾는 걸 도와달라고 부탁하러 온 것이었다.
동생과 관계가 아무리 소원해도 이쯤되면 그 미녀에 대한 마음을 접어야 하건만,
하쿠로는 가에데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하고 길고 긴 모험에 나선다.
그 와중에도 시시때때로 그 미녀에게 시선을 준다.
“V자형의 옷깃 사이로 언뜻 가슴골이 보였다...하쿠로는 내심 당황하며...” (101쪽)
“오렌지색 원피스는 길이가 유리카 (친척 여자애)의 스커트보다 20센티는 더 짧았다. 나는 역시 청초한 것보다 이쪽이 더 좋구나, 라고 생각하며 하쿠로는 문을 열었다.” (328쪽)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하쿠로는 가에데에게 접근하는 다른 남자를 미친 듯이 질투하고,
심지어 그녀에게 고백까지 하려 했으니,
이런 부도덕한 인간이 주인공이 돼야 할까.
책의 마무리 또한 미모 타령이었다.
사건이 해결된 뒤 가에데가 병원에 찾아오는데, 거기에 대한 묘사다.
“선명한 노란색 블라우스에 가죽 스커트를 매치한 차림이었다. 블라우스 버튼을 두 개쯤 풀어서 가슴골이 내보였다. 그리고 스커트 길이는 지금까지 본 중에서 가장 짧았다.” (481쪽)
하쿠로: 어허, 속옷 보이겠네.
가에데: 안 보여요. 정확히 계산했거든요.
맨 마지막 대목은 점입가경이다.
“가에데는 긴 속눈썹으로 윙크를 날리더니 육감적인 다리를 척 꼬았다. 아닌 게 아니라 속옷은 보이지 않았다.” (481쪽)
물론 나도 남자고, 아무리 소설이라도 미녀가 나오면 감저이입이 더 잘된다.
그래도 이건 좀 너무했다 싶다.
내가 그에게 기대하는 건 미녀 타령이 아닌, 치밀한 사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