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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약중강약 - 본격의약협업토크
황세진 글, 정혜진 글.그림 / 알마 / 2017년 4월
평점 :
5년 전, 의대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 초청된 적이 있다.
대기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한 여자분이 들어와 내게 인사를 한다.
그땐 내가 방송으로 잘나가던 때라 팬이겠거니 생각하며 사인용 네임펜을 꺼내려는데,
그의 자기소개에 하던 행동을 멈췄다.
“제닥 정혜진이라고 해요.”
처음에 난 ‘제닥’을 ‘제다이’로 들었다. 제다이? 스타워즈에 나오는 그 제다이?
알고보니 제닥은 ‘제너럴 닥터’의 약자였다.
제너럴 닥터는 환자 1인당 3분진료로 대표되는 비인간적 진료에 염증을 느낀 의사 두 명이
“그래도 환자 1명당 30분씩은 하자” “꼭 아프지 않아도 누구나 건강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만든 병원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낮은 의료수가로는 병원운영이 힘들 테니,
밥도 파는 카페를 같이 운영함으로써 적자를 최소화하자는 게 그들의 계획이었다.
땅값이 오르면 상인들이 임대료를 못내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한다.
돈을 못버는 제너럴닥터는 당연히 그 현상의 희생자가 됐다.
처음 홍대앞에 있던 그 병원은 두 번의 이사를 거쳐 지금 연남동에 있다.
하지만 네이버 사옥 안에 제닥 2호점이 들어선 걸로 보아,
만든 이의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이 더 있는 것 같다.
그 병원의 성공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의사가 있다는 것 자체가 반가운 일이다.
이건 내가 정혜진 선생과 헤어지고 난 뒤 알게 된 일이고,
그 당시엔 자신이 제닥이라는 그녀의 말에 “그, 그렇군요”라며 넘어가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가 된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의사후배에게 ‘대단한 일을 하는구나’ 같은 격려의 말 한마디 못했던 게 말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게 우리네 인생,
그 뒤 정혜진 선생을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출판사에서 그가 쓴 책에 추천사를 부탁해 온 것이다.
약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상식들을 의사인 정혜진과 약사 황세진이 유쾌한 대화로 풀어낸 이 책이었다.
이런 책이 꼭 있었으면 했는데 잘됐다 싶었기에,
난 흔쾌히 추천사를 썼다.
[약을 왜 식후 30분에 먹어야 할까? 먹고 남은 감기약을 감기에 걸린 다른 이에게 주는 건 괜찮을까? 해외에 약을 가지고 가도 될까? 아무리 몸에 좋은 약이라 해도 모르고 먹으면 효과가 없어진다. 범상치 않은 의사와 범상치 않은 약사가 약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대화로 풀어낸 이 책이야말로 요즘 같은 약 홍수시대에 꼭 필요한 건강지침서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완성본을 보다가 내가 쓴 추천사를 다시 읽었다.
우리나라에 몇 없는 독특한 의사에게 너무 판에 박은 추천사를 쓴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이왕 미안한 김에 몇 년 전 강연장에서 미처 알아보지 못한 것까지 미안해졌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빔으로써 미안함을 해소하고자 한다.
정혜진 선생의 뜻이 척박한 우리나라 의료계를 변화시킬 수 있기를,
그리고 이 책이 많이 팔려 더 이상 병원을 옮겨다니지 않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