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6월 8일(목)
마신 양: 주량의 50%
어제, 내가 가끔씩 글을 기고하는 곳에서 모임이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분들을 직접 보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초면이고, 다들 내공이 높은 분들이라 혼자 마시고 취하면 민망할 것 같았다. 그래서 1차에서 소주를, 2차에서 생맥주를 정말 기본만 하고 집으로 오는데, 갑자기 학장님이 전에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이제부터 학장님이 해준 이야기다.
중국에 우리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대학이 있는데, 거기서 학장님을 초청했다. 일정을 마치고 저녁 연회 자리에 갔더니 좌석마다 잔이 아홉잔씩 놓여 있고, 거기다 독한 술 세종류를 세잔씩 따라 주더란다. 이게 뭔가 싶어 초청자를 봤더니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일단 이걸로 목을 좀 축이고 나서 본격적인 술자리를 가져 봅시다.”
40도가 넘는 독한 술 아홉잔을 마시면 그걸로도 어지러울 텐데, 목을 축이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는가. 학장님은 다행히 술을 못드시는 편이 아니라 아홉잔을 다 마셨고, 그 이후에도 주는 술을 다 받아마셨다. 다음날 아침, 무슨 일이 있었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지만, 거울을 보니 얼굴에 긁힌 자국이 있더란다. 중국 사람들을 만나니 “술이 좀 약하시네요.”라면서, 더 이상 술을 권하지 않았다고 했다.
귀국한 뒤 오기가 발동한 학장님, 우리 학교의 에이스를 중국으로 보냈다. 적당한 키에 적당한 체격을 가진 우리 에이스는 기대대로 학장님을 보내버린 중국 사람들을 박살내고 왔단다. 에이스가 귀국한 뒤 다시 중국으로부터 연락이 왔는데, ‘정말 좋은 분을 보내줘서 배운 게 많다.’며 ‘정성껏 연회를 준비해 놓을 테니 그분을 다시 한번 보내달라.’고 했다는 거다. 에이스는 가겠다고 했지만, 학장님은 가면 큰일난다고 결사반대, 그 대결은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얘기가 생각난 것은 요즘 너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자각 때문이다. 그전의 나는 술을 마시면 언제나 주량껏 마셨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도망을 나오거나 엎어져 자버리곤 했다. 그런 모습이 좋은 건 아니지만, 주량의 절반만 겨우 채우고 나오는 요즘 상황은 영 부끄럽다. 그렇게 마시고 어찌 술을 한번 마셨다고 카운트를 할 수가 있을까. 중국이 무섭게 성장하고, 미국마저 중국 견제에 여념이 없는 이유의 절반쯤은 그 주량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독한 술 아홉잔으로 목을 축이고, 한번 패하고 나서 다시 한 번 붙자고 말하는 그 패기가 바로 중국의 저력이 아닐까.
난 에이스가 아니며, 노력한다 한들 그렇게 될 수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주 한병에 맥주 두잔을 마시고 집에 오는 일이 잦아서야 어찌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주량이 적다면 적은대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야말로 인간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일 것이다. 목만 축이고 온 오늘을 반성하면서 이렇게 다짐해 본다.
“내일은 정말 오랜만에 한번 주량껏 마셔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