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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거짓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월
평점 :
책날개에 의하면 지금까지 은희경이 쓴 작품은 7개, 그 중 난 6개를 읽었다. 이쯤 되면 은희경의 작품세계를 어느 정도 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 작가의 데뷔작인 <새의 선물>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작가를 알려면 데뷔작을 읽어야 한다고 스스로 믿으며, 주위 사람들이 “재미있다. 한번 읽어보라.”고 권유하는데도 안읽고 버티는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비밀과 거짓말>은 내가 읽은 은희경의 7번째 작품이다. 내가 믿고 따르는 분의 리뷰를 보니 그다지 인상적인 작품이 아닌 것 같아 사놓은 지 일년이 넘도록 방치해 놨었다. 갑자기 이 책을 집은 건 학교 일 때문에 머리가 너무 아파서, 소설을 읽으면서 현실을 잊고 싶어서였다. 지나치게 진지해 보이는 초반부는 집중하기가 영 쉽지 않았지만, 100페이지를 넘기고 나서부터는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어갔다. 하나둘씩 밝혀지는 집안의 비밀이야 그리 놀랄 게 없어도, 너무도 다른 길을 걸어온 영준과 영우 형제의 이야기가 흥미롭기 그지없었다. 집안의 기대를 받으며 자기 잘난 맛에 살아온 영준은 동생을 무시하기 바쁜데, 그게 더 가슴깊이 와 닿았던 이유는 나 역시 영준과 같은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걸 후회하고, 이제라도 동생에게 잘하고 싶지만, 사이가 좋지 않게 지낸 기간이 너무 길어서 그게 잘 안 된다. 그래도 난 부모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받은 걸 동생한테 미안해 하지만, 영준은 나이가 들어서도 그렇지가 않으며, 여전히 동생을 무시한다.
아버님 산소에서 둘의 대화 장면.
영우: 아버지한테는 형만 아들이잖아!
영준: (영우는 말썽꾼이었다)그래서 아버지가 그렇게 평생 네 뒤를 쫓아다니며 뒷감당을 해준 거냐?
영우: 그래, 형이 장남이고 똑똑하니까 뭐든지 다 당연히 자기가 가져야 한다 그거지?..형은 사람들이 마음 써줄 때는 고마워하지도 않다고 조금만 관심을 안가지면 혼자만 소외된 사람처럼 인상 쓰고 괴로워하는 이기주의자야. 진짜 외롭고 힘든 게 뭔지 알기나 해?
영준: 폼 잡는 건 바로 너야. 제멋대로 돌아다니고 하고 싶은대로 다 하면서 무슨 사연 있는 반항아라도 되는 것처럼 폼 잡았잖아.
‘자신은 아버지가 시키는대로 끌려다니며 살았다.’며 피해자연하는 영준의 말이 전혀 일리가 없는 건 아니겠지만, 기대를 받지 못한 자로서 영우가 느껴야 했던 소외와 서러움에 비하면 그런 말은 사치인 듯하다. 이런 류의 대화가 오간 후 화해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둘은 결국 주먹질까지 나눈다. 친함과는 거리가 먼 둘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는데, 영준과 달리 참회하는 난 리뷰를 통해 뒤늦게나마 남동생에게 미안함을 표한다. 동생이 이 리뷰를 볼 확률은 전혀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