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슬럼버 - 영화 <골든슬럼버> 원작 소설 Isaka Kotaro Collection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영종도에 있는 하늘도서관에서 강의가 있었다.


천안에서 인천공항까지 KTX를 타면 대충 1시간 반이 걸리니,

왕복 세시간 동안 마음껏 책을 읽자며 집어든 책이 이사카 코타로의 <골든슬럼버>,

“온 세상이 추격하는 한 남자”라는 홍보카피만으로도 내용이 대충 짐작이 갔다.

누명을 쓰고 국가권력으로부터 쫓기는 주인공이란 설정은

영화에서 수없이 변주된 소재였지만 책으로 읽는 것은 거의 처음인 것 같은데,

아무튼 재미 면에서는 내 기대를 100% 충족시켜줬다.

 

 

강의는 두시부터였지만 도서관에 도착한 건 1시 경이었다.

40분 정도 책을 읽다가 들어가서 인사를 해야지, 라며 야외 벤치에 앉았다.

날은 더웠지만 책이 재미있다보니 그 더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픈 충동을 느꼈다.

할 수 없이 도서관 안에 있는 화장실로 가는데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가 난다.

“혹시 교수님 아니세요?”

뒤를 돌아보니 강의 때문에 내게 연락해주신 담당자였다.

책 내용이 궁금해 “저 아닌데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밥만 먹으면 화장실에 가야 하는 증상을 '위대장반사'라고 하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간단하게나마 점심을 먹은 게 화장실에 가야 했던 원인,

 

좋은 반사도 많으련만 하필이면 그런 반사를 가지고 있다는 게 무지 아쉬웠다.

 


 

집으로 가는 내내 책만 읽었고,

날 기다리던 개들과 놀아준 뒤 다시금 책을 읽었다.

 

이런 장르의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개연성이라고 생각한다.

안정효가 글쓰기만보에서 잘 설명했듯이

개연성이 있다는 건 한 가지 거짓말을 하기 위해 다른 부분은 다 사실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는 걸 뜻한다.

아무리 좋은 스웨터라도 한 군데 구멍이 나면 그것만 보게 되는 것처럼,

개연성이 떨어지면 작품 자체의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 책에서 안정효는 <하얀 전쟁>에 나오는 권총 얘기를 예로 든다.

우리나라는 권총이 합법화된 나라가 아니므로

권총을, 그리고 총알을 구하는 방법이 설득력 있게 제시돼야 하며,

안정효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군인이 총을 하나 훔치는 설정을 한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좀비가 설치고 다닌다는 설정은 엄연한 허구지만,

그 좀비를 둘러싼 반응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아야 한다.

내가 <부산행>을 보고 실망한 이유도 바로 개연성의 부족인데,

<골든 슬럼버>는 그 아쉬움을 달래줬을 뿐 아니라

멀다면 먼 영종도 여행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해줬다.

여러모로 고마운 책이다.

 

 

* 소설을 읽으면서 기시감이 들었다.

내용 말고 구성이 그랬는데,

이 소설은 과거와 현재가 오가면서 그 상황이 연속되는 부분이 꽤 나온다.

예컨대 204쪽에서 주인공 아오야기는 검은 양복의 사내들을 피해 화장실 창문으로 도망간다.

‘대체 안전한 장소는 어디란 말인가, 하고 자문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 다음, 배경이 과거로 바뀌면서 다음 문장이 이어진다.


[“안전한 장소란 게 법률에 정확하게 쓰여 있지가 않아, 이게.”


예의바른 초등학생처럼 무릎을 꿇고 앉은 아오야기 일당 앞에서 도도로키가 말했다.]

이런 식의 구성을 난 스티븐 킹의 <It>라는 소설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소설에선 현재의 주인공이 정신을 잃으면, 그 다음 장면에선 과거의 주인공이

정신을 잃었다 깨어난다.

이걸 보면서 ‘와 신기하다’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구성을 또 보다니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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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6-07-24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산행을 보고난 뒤 ˝몰입도는 작풍성하곤 전혀 별개˝란 걸 다시 일깨워줬어요~골든 슬럼버 영화를 언젠가는 봐야지 벼러왔는데
마태우스님의 좋은 평을 보니 조만간 들이대봐야겠네요

마태우스 2016-07-25 10:3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골든슬럼버 영화와 책은 그 분위기가 다르더군요. 영화 쪽이 더 밝은 듯해요. 소설에서 무거운 부분은 다 덜어내고 핵심만 잘 추린 듯요. 게다가 하이라이트인 공원 장면에선 원작과 달라서 더 몰입감이 있었어요. 들이대보셔도 될 듯요

책한엄마 2016-07-25 0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 영화란 허구는 참 머리를 많이 써야해요.
즐겁자고 읽지만 창작자는 참 고통스러운..그런 작업일 듯합니다.

마태우스 2016-07-25 10:36   좋아요 0 | URL
그렇죠 기생충 관련 책은 있는 걸 그대로 쓰면 되니까 쉬운데, 소설은 새로운 세계를 창작해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죠...! 전 그쪽 세계는 안가려고요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