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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의사회 - 인도주의의 꽃
엘리어트 레이턴 지음, 박은영 옮김, 그렉 로크 사진 / 우물이있는집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국경없는 의사회(MSF: Medicins Sans Frontieres)’라는 단체가 있다. 재앙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며, 정치적 입장을 떠나서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자 노력하는 훌륭한 분들의 모임이다. 1999년 노벨평화상도 그분들의 훌륭함에 비하면 너무 적은 보상이라고 생각될 정도.
하지만 그들이 MSF에 가입한 동기는 내 생각과 전혀 다르다. “취직이 안돼서, 틀에 박힌 생활에 대한 저항으로, 모험에 대한 갈망으로 뛰어든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벨기에 의사 카르멘의 말, “벨기에에서는 의사들도 일자리를 찾기 힘들 때가 있어요.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특히 외과의사는 정말로 할 일이 많습니다.”
큰돈을 만지는 사업가였던 찰스는 어느날 아버지가 “넌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부추기는 바람에 아버지를 감동시키기 위해 MSF에 참여했단다. 이게 다 거짓말은 아니겠지만, 그런 상황이 된다고 누구나 MSF 같은 곳에 지원하는 건 아니다. 그들이 가는 곳이 어딘가. “...(MSF를) 자신들의 행위를 지켜본 위험한 목격자로 간주해 결사대의 표적으로 삼는 일이 늘어나고 있”는 곳이 아닌가. 아무리 그들이 자신을 영웅시하는 시선을 못마땅해 할지라도, 내게 있어서 그들은 영웅이다. 나 같은 이는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곳에 지원할 수 없다는 걸 잘 아니까.
책의 후반부에도 나오는 얘기지만, MSF의 활동에는 회의적인 면이 많다. 르완다의 예를 들어 설명하면, 후투족이 집권하면 투치족을 다 죽이고, 투치족이 득세하면 후투족을 몰살시킨다. 국민들의 생명을 빼앗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정치고, 그 해결책 역시 정치에서 나와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한두명의 생명을 더 구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지 회의가 들지 않는가? 오히려 그들의 존재가 집권자인 무뢰한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으니 말이다. 문제는 또 있다. 콜레라 예방을 위해 MSF는 물을 끓여먹으라고 주민들에게 말하지만, 물을 끓이느라 장작을 모으는 시간은 곡식을 경작하는 데 쓰여야 할 시간을 희생시켜야 한다. 아이들을 교육시켜야 한다는 말 역시 그들이 들에서 일하는 시간을 빼앗는다. 더 근본적인 문제. MSF는 지속적으로 주둔하는 단체가 아니며, 난리가 진정되면 다른 곳으로 떠난다. 그들이 떠난 후 남는 것은 ‘새롭고도 뿌리깊은 좌절감’ 뿐이다. 물론 이런 문제들이 MSF의 훌륭함을 손상시키지는 못한다. 정치가 어떻든지 간에 죽어가는 생명은 당장의 구원을 필요로 하고, 그 구원은 오직 MSF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