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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포스트, 1663 1 - 네 개의 우상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외국소설이고 두권짜리며 다섯글자로 된 책이 뭐냐고 묻는다면 십중팔구는 ‘핑거포스트’라고 말할 것이다. 같은 조건이라면 ‘나이트 워치’도 있고, ‘장미의 이름’도 있을진대 왜 핑거포스트가 다섯글자의 상징이 되었을까. 그건 그 책이 워낙 구성도 신선하고 재미도 있을뿐더러 읽고 난 후에도 오래도록 진한 여운을 남겨주기 때문이리라.
같은 시기에 일어난 일을 네사람이 기술하는 방식으로 구성된 이 책의 첫 번째 수기를 읽을 때만 해도 “이게 뭐냐?”고 의아할 뿐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나온 잭 프레스콧의 수기를 읽으면서 비로소 이 책의 진가를 알아차렸고, 흠뻑 책에 빠져버렸다. 이 책을 내게 추천해주신 분은 “2권이 더 재미있다.”고 하셨는데, 예상치 못한 결말로 끝나는 2권은 과연 한층 더 재미있었다.
내가 이 책을 읽는 걸 본 어떤 분은 “이거 재미 하나도 없더라.”고 했다. 그때가 읽은 지 얼마 안된 시점이라 김이 샜는데, 다 읽고 난 뒤 그분은 왜 이 책이 재미없다고 했을까를 잠깐 생각해 봤다.
1) 두껍다: 1권이 600페이지, 2권이 500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책이라, 그 자체가 읽는 이를 질리게 만들 수 있다.
2) 명민한 기억을 필요로 한다: 등장인물도 많고, 한 사건을 보는 여러 명의 얘기가 나오기 때문에 기억력이 웬만해서는 읽기가 힘들 것 같다. 중년에 접어든 나 역시 “얘가 누구더라?”는 의문에 빠져 앞장을 뒤적인 게 한두번이 아니다. 이해가 안가는 건 외우면 되지만, 기억이 안되는 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가 없는 법, 내가 이걸 읽는 데 열흘 이상 소모한 것은 다 거기서 비롯되었다.
물론 위의 두가지는 내게도 해당되는 얘기, 하지만 내가 끝끝내 재미있다고 우기는 이유는 내가 그분보다 교양에 더 굶주려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배고플 때 먹는 밥은 뭐든지 맛있는 것처럼, 머리가 허점투성이인 나로서는 읽고난 뒤 남는 게 가득한 이 책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었다. ‘보일의 법칙’을 발견한 보일 씨, 그리고 위대한 철학자 로크를 비롯, 아는 사람들의 이름이 여럿 나온다는 것도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없었던 수혈법을 비롯해서 의학적인 얘기가 제법 나오는 것 역시 내게 흥미를 던져주는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 같다. 궁금한 것 한가지. 어느 정도 내공이 되면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