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알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권의식은 지극히 낮다. 인권이란 게 상시로 무시되던 군사독재를 오랜 기간 겪었으니 인권을 학습할 만한 시간이 어디 있었겠는가. 하지만 가끔 보면, 이 나라가 인권의 선진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일이 가끔 있다.
3년쯤 전, 사람들이 오가는 길거리에서 자위를 하는 40대 남자의 동영상이 기자에 의해 인터넷신문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모자이크 처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기자-여자였다-에게 싸이버 테러 수준의 욕설을 퍼부었는데, 말을 거르고 걸러 그 논지를 파악해보면 대충 다음과 같았다.
“나도 그놈이 나쁜 놈인 거 안다. 내 아내 앞에서 그랬다면 당장 두들겨 팼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인권이 있으니 동영상을 올린 건 더 큰 잘못이다. 그의 가족들이 이 동영상을 본다면 얼마나 부끄럽겠는가”
다른 이의 인권을 걱정해주면서 엄청난 욕설로 기자의 인권을 짓밟는 게 모순되어 보였지만, 가해자의 인권이 보호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이렇게 많다면 우리나라도 더 이상 인권 후진국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잠시나마 했다.
하지만 몇주 뒤, 수능에서 다른 사람에게 답안지를 넘겨줬다는 고백을 했던 한의대생의 인터뷰가 같은 신문에 실렸을 때, 사람들은-얼마 전 격분했던 사람들과 동일할 것으로 추정되며, 앞으로는 ‘그들’로 지칭함-입을 모아 그를 욕했고, 모자이크 처리한 주민등록번호를 추적해서 그의 이름과 다니는 학교 등을 인터넷에 유포했다. ‘인권’을 빌미로 그 학생을 변호한-예컨대 그의 가족들이 알면 얼마나 놀라겠냐는-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올해 발생한 개똥녀 사건 역시, 그들은 그녀를 파렴치범으로 몰아붙였고, 그 과정에서 그녀에 관한 온갖 정보가 인터넷에 나돌았다. 이것 역시 심각한 인권침해인데도 이걸 문제시하는 사람은 진보적인 논객을 제외하곤 거의 없었다.
미성년자 성매매를 한 사람을 인터넷에 게시했을 때, ‘그들’은 또다시 ‘인권’을 들먹이며 인터넷 게시에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유아성범죄는 당연히 논외로 친다면, 소위 ‘원조교제’에서 걸린 사람은 최소한 10회 이상 그짓을 한 사람이건만, 그들은 ‘한번 실수로 평생 낙인이 찍혀서야 되겠냐’면서 성 범죄자들을 옹호했다.
이와는 반대로 강남에 CCTV가 설치되었을 때 시민들의 80% 이상이 적극적인 찬성을 했고, 다른 지역에도 설치해달라는 데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심지어 범죄자의 DNA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것에도 적극적인 찬성을 표했는데, 이런 것들이 심각하게 인권을 침해하며,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나오는 빅브라더의 시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은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들’의 인권의식이 이렇듯 들쭉날쭉한 까닭은 무엇일까. 한겨레 칼럼에 실렸던 내용이 그 답이 될 수 있을 듯하다. 그 칼럼은 강남 집값을 잡으려는 정부의 부동산 시책에 대해서 강남의 교수들은 반대를 했고, 강북의 교수는 찬성을 했다면서 자신의 처지가 찬반을 표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을 해보면, 그들의 인권의식이 그토록 오락가락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자신들이 언제든 성범죄의 가해자-예컨대 원조교제-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이 그들로 하여금 인권을 빌미로 성범죄자들을 옹호하게 만들었고, 자신들이 다른 범죄자가 될 확률은 지극히 낮기 때문에 CCTV에는 찬성한 것이 아닐까. 자신의 편의를 빌미로 주장되는 인권, 그런 나라는 영원한 인권 후진국일 수밖에 없다.
* 이 글에는 두가지 오류가 있습니다. 첫째, ‘그들’을 남자로 규정한 것, 둘째, 동영상을 욕한 사람들과 개똥녀를 비난한 이들, 그리고 CCTV에 찬성한 사람이 모두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그 밖에도 오류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반론 주시면 깊이 성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