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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인간 - 전2권 세트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5년 8월
평점 :
품절
어느 책에서 읽은 얘기다. 빚에 몰려 다 죽게 된 남자가 마지막으로 이외수를 찾았단다.
“선생님, 저 좀 살려 주십시오”
남자의 눈빛이 진실해 보였기에 이외수는 쓰다가 망친 원고 더미들을 그와 함께 뒤졌다. 그래서 나온 책이 <말더듬이의 겨울수첩>이라고 한다. 그 책이 그 남자를 다시 살려준 것은 물론이다.
버려진 원고로 낸 책도 잘팔릴만큼 이외수는 대단한 작가다. 외모와 눈빛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의 소설은 무척이나 재미있고, 잘 읽힌다. 다 읽고 나면 남는 것도 있으니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인터라겐님으로부터 선물받은 <장외인간> 역시 수작이었다. 대작가의 책을 잘 읽고나서 딴지를 거는 게 미안하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저자에 대해 느껴온 바를 간략하게 써본다.
첫 번째 의문, 옛날은 좋기만 한 걸까?
<장외인간>은 달을 잃어버린 세상에서 달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사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주인공의 입을 통해 저자는 황금만능이 되어버린 이 세상을 개탄해 마지않는다.
“지금은 삼강오륜도 사라져버리고 사서삼경도 사라져버린 시대다(1권 156쪽)”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교가 지배하던 과거가 지금보다 나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외침을 당하고, 탐관오리로부터 수탈을 당하느라 당시 민중들이 겪어야 했던 고생이 그 얼마며, 어른들의 권위에 의해 젊은이들의 창의성이 실종된 것이 침체된 조선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젊은이들은 ...동방무례지국이라는 티셔츠를 걸쳐 입었다. 어떤 젊은이들은 숫제 끈팬티만 걸치고...(1권, 116쪽)”
그래서 난 요즘 젊은이들이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걸 나쁘게 보지 않는다. 노출이 심한 패션 역시 그런 자신감의 표출이라 생각하고, 솔직히 말하면 고마울 때가 많다. 저자는 초딩에 의한 인터넷의 오염을 비판하지만, 그런 것도 인터넷의 한 속성이며,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인간답게 살면 문전걸식이 기다리고 있고 짐승같이 살면 부귀영화가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어떤 미친놈들이 세상의 흐름을 이렇게 뒤집어놓았을까(2권 174쪽)”
지식이 짧아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 역사를 아무리 되돌아봐도 민중들의 삶이 안락했던 때는 없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이 달을 보며 놀았던 이유는 질펀하게 즐기던 양반들과 달리 가난한 서민들에겐 놀만한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며, 그런 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긴 해도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똑같이 <삼순이>를 보며 웃을 수 있는 요즘이 옛날보다는 훨씬 진보된 사회가 아닐까 싶다. 그런 맥락을 무시한 채 무조건 “과거가 좋았다”라고 우기는 것에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다.
두 번째, 책을 읽다보니 저자가 여성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명품 좋아하고 성형에 환장한 여자애를 주인공 중 하나로 설정한 것도 그렇고, 가끔씩 내뱉는 장광설에는 여성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다.
“영혼이 소멸된 여대생들의 명품 중독” “자녀들에게 외국어를 가르치지 못해 환장을 하는 엄마들” “퇴폐업소에서 영계라는 이름으로 발견되는 여중생들” “가정형편이 어렵지도 않은데 명품 중독 때문에 몸을 파는 여대생들”
심지어 여주인공을 향해 이런 말도 한다. “테르툴리아누스가 왜 여자는 지옥으로 가는 문이다,라고 단정했는지를 쉽사리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1권 232쪽)”
물론 저자의 비판이 여성에게만 향해 있는 건 아니다. 흑백논리에 빠진 종교나 불친절한 경찰에 대해서도 저자는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이상해서 그런지 저자의 비판이 유독 여성에게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여대생들이 명품에 중독되어 있으며, 명품을 위해 몸을 팔까? 지나친 교육열은 비판받을 소지가 있지만,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밥벌이조차 힘든 우리 사회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엄마들만 비난하는 게 과연 옳은 태도일까? 대작가에게 이런 얘기를 하는 게 결례겠지만, 재미있긴 해도 이런저런 씁쓸함을 내게 던져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