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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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리뷰대회에 응모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라딘 대주주라는, 스스로 낸 소문 때문에 혹시 내가 1등이라도 하면 “짜고 친다”는 오해라도 받을까 두려웠던 탓이었다. 하지만 방송출연 수입이 끊겨 주말마다 라면을 먹는 현실을 타계할 생각에 리뷰대회를 떠올렸고, 대상도서를 검색하다 고른 것이 <여자 없는 남자들>이었다. 


한 남배우가 운전기사를 뽑는다. 차를 고치러 맡긴 수리업체는 여성을 추천해 준다. 그 얘기를 들은 배우는 “그다지 달가운 표정을 지을 수 없었다.” (11쪽) 하지만 그 여자가 운전 하나만큼은 잘 한다는 말에 한번 시험해 보기로 한다. 이럴 때 “눈이 휘둥그레지는 미녀”가 올 것 같았지만, 막상 온 여자는 “어느 모로 보나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17쪽). 하지만 자동차는 사방이 꽉 막힌 방 비슷한 공간이라 같이 있다 보면 친밀감이 싹트기 마련이다. 미녀도 아니고 말수도 적은 이 여자와 나란히 있다보니 그 배우는 자기보다 스무살 가량 어린 그 운전기사와 친해지며, 죽은 아내에 대한 얘기를 비롯한 내밀한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제부터 둘이서 뭔가 이루어지나 하는 기대감에 다음 장을 넘겼더니 갑자기 이런 문장이 나온다. 

“내가 아는 한 비틀즈의 <에스터데이>에 일본어로 가사를 붙인 인간은 기타루 한 사람밖에 없다.” (63쪽)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기타루’는 제1 장에는 나오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 내용도 이상해서, 차 얘기가 아예 없었다. 성큼성큼 책을 넘기다가 비로소 깨달았다. 이 책은, 단편소설집이었다!


단편을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집중할만하면 이야기가 끝나 버려, 밤을 새면서 읽어나갈 동력을 잃는다. 이 책이 단편인 걸 알고 실망했지만, 하루키의 글솜씨 덕분에 어느 정도 그 실망감을 만회할 수 있었다. 자신의 처지가 한심해서, 자기 친구한테 미녀인 자기 애인과 데이트를 해달라고 부탁하는 기타루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했다. 갑자기 끝나는 이야기에 실망하면 또 다음 얘기가 나를 기다렸다. 이 책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단편은 <기노>였다.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지만, 책 중간중간에 내 로망이 들어 있어서였다. 로망을 얘기하기 전에 소설 얘기를 잠깐 한다. 주인공인 기노는 운동화 세일즈맨으로, 출장이 잦다. 출장에서 하루 먼저 돌아온 날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걸 목격한 기노는 그 길로 집을 나와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이모에게 전화를 건다. 찻집을 하는 이모가 나이가 들어 가게를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었으니까. 결국 기노는 월세로 그 가게를 빌렸고, 저금한 돈의 반을 들여 찻집을 ‘바’로 개조한다. 2층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퇴직금도 남아 있었다. 거기다 집을 판 돈을 아내와 나눴기에 “한동안은 먹고살 수 있을 터였다.” (226쪽) 처음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기노는 “손님이 전혀 오지 않는 가게에서 기노는 오랜만에 마음껏 음악을 듣고, 읽고 싶던 책을 읽었다.” (227쪽) 


한때 나이가 좀 들면 책방을 할 생각을 했었다. 음료수를 파는 곳도 있으니 북카페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동네서점이니 사람도 많지 않아 임대료와 직원의 월급을 빼면 남는 건 별로 없지만, 거의 하루 종일 책만 읽을 수 있는 그런 곳이 내가 꿈꾼 책방이었다. 한 몇 년 그런 생각을 하다가 아내와 결혼하면서 꿈을 접었는데, ‘기노’를 읽으면서 그때를 다시금 떠올렸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서 행복했던 그때를 말이다. 이런 말을 아내한테 하니까 아내가 이런다. “그럼 내가 바람을 피워야 하는 거야?” 하지만 기노와 나는 몇 가지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첫째, 난 저금한 돈이 없다. 둘째, 기노와 달리 난 음식 만드는 데는 잼병이다. 셋째, 결혼해서 알게 된 건데 난 책만 읽는 것보단 아내와 강아지들과 더불어 사는 걸 훨씬 더 좋아한다. 그러니 여보, 바람 피우지 마. 내가 더 잘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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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1-25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 글은 언제나 유쾌해요.

마태우스 2015-01-28 00:54   좋아요 0 | URL
앗 그런가요? 리뷰대회의 강자 블랑카님, 이번에도 좋은 소식 기다릴게요

페크pek0501 2015-01-27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수가 많으면 리뷰대회에서 뽑히는 건가요?
글 재밌게 읽고 보태고 갑니다. ^^

마태우스 2015-01-28 00:54   좋아요 0 | URL
그럴 리가요. 사실 제 스타일의 글은 리뷰대회에 적합하지 않죠. 리뷰를 못쓰니까 유머코드로 만회하는 거라...^^ 암튼 님의 마음은 감사히 받을게요

paviana 2015-01-28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더러가 떨어져 살짝 결승까지 별 무리없이 가겠구나 안도했었는데....
어엉 베르디히한테 질 줄이야..ㅠㅠㅠ
근데 변가보다 마태님이 더 형 아니신가요? 글케 보이던데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