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몸담은 써클은 여름마다 강원도로 진료봉사를 갔다. ‘여름진료’로 불려지는 그것은 우리 써클의 행사로, 졸업한 선배를 포함, 60-80명의 인원이 그곳에 간다. 지금이야 디카가 있고, 디카로 찍은 걸 해당 사이트에 올리면 그만이지만, 20년 전만 해도 사진을 찍으면 사람 수대로 뽑아서 나누어 줘야 했다. 그게 귀찮아서 사람들은 카메라를 잘 가져오지 않았는데, 86년 여름, 써클 진료에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간 거였다.
난 틈틈이 사진을 찍었고, 마지막날 왕창 찍었다. 진료 마지막날 짐을 다 꾸려놓고 진료 때 맡은 부서별로 이렇게 저렇게 모여 사진을 찍는 게 관례였다. 예컨대 약을 싼 사람끼리 모이고, 농촌활동 갔다온 사람끼리, 밥 집었던 사람끼리... 한 사람의 역할이 매일 바뀌므로 60명이면 실로 방대한 조합이 이루어졌는데, 모여서 포즈를 취하고 있으면 내가 달려가 사진을 찍었다. 포즈를 취한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지 않으려고 하다보니 마음이 급해졌고, 너무나 서둘렀다. 자동카메라니 초점 맞출 시간이 필요했음에도, 난 달려가자마자 셔터를 눌렀다. 나중에 현상된 사진들은 초점이 안맞거나 빛이 들어간 게 대부분이라,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난 사람 수대로 사진을 현상해 나누어 주었는데, 필름이 7통이었으니 적잖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됐다. 사진을 받은 이들 중 돈을 안낸 이도 있었고, 500원, 1,000원씩 받아봤자 돈이 모일 턱이 없었다. 게다가 사진도 흐렸으니 제 값을 받기도 미안했다. 10만원이 넘는 현상비용은 당시 내 용돈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고, 결국 난 어머님께 손을 벌려 문제를 해결했다. 그때 크게 데어서인지 난 그 이후 여럿인 놀러갈 때 카메라를 가져가본 기억이 없다. 내가 디카를 안사는 것도 그때의 영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