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미뤄왔던 밀린 술일기를 몰아서 쓴다.


62번째: xx야 미안하다

일시: 6월 10일(금)

모임명: 천안지역 한성고 동문회

마신 양: 엄청남


약속시간은 오후 7시였지만, 난 다섯시도 되기 전에 근처에 가 있었다. 한적해 보이는 카페에 들어가 맥주를 마셨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일곱병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 약속 장소로 갔다. 선배에게 인사를 하니까 선배가 이런다.

선배: 술 좀 마신 것 같은데?

나: 아, 네... 조금요.

선배: 많이 마신 것처럼 보이는데?


앉은 자리에서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한시간 쯤 지났을 때 난 이미 취해 버렸다. 위기에서 발휘되는 귀소본능을 쫓아 돌연히 모임을 빠져나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집에 누워 있었다.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63번째: 니 걱정이나 하지...

일시: 6월 11일(토)

누구와: 내 친구 둘과

마신 양: 그럭저럭 기본은...


원래 전날 난 내 친구,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 친구와 술을 마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안되게 된 것이, 친구 아버님의 간에 생긴 10센티 크기의 종괴가 암으로 판명났기 때문. 전에 다른 분한테 그랬던 것처럼, 난 “그렇게 크기까지 증상이 하나도 없다는 건 암이 아닐 수 있다”고 친구한테 말했었지만, 웬걸 그건 간암, 그것도 예후가 안좋은 간세포암이었다. 아버님이 몇 달 전부터 소화가 안되었다고 하니, 그때라도 검사를 받아보셨다면 좋을 걸 그랬다. 수술을 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암덩어리로 가는 혈관을 인위적으로 막는 색전술과 항암요법, 그리고 방사선 요법 정도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문제는 그렇게 해봤자 얼마나 더 사실 수 있느냐는 거겠지만, 그래도 해보는 데까지 해봐야지 않겠는가.


안그래도 먼 곳까지 출퇴근을 하는데다 아버님까지 돌봐야 하는 내 친구, 난 니 걱정이나 하라고 친구를 말렸지만, 그 친구는 상심한 나랑 꼭 술을 같이 마셔야 한다고 박박 우겼다. 고마운 그 친구와 소주를 마셨고, 뒤늦게 온 또다른 친구와 감자탕집에서 2차를 했다. 술을 마심으로써 아픈 기억까지 잊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술은 당장의 슬픔을 유예시킬 뿐, 친구와 헤어져 집에 오자마자 난 하염없이 울어야 했다. 그래도 이 말은 해야겠다.

“친구야,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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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5-06-2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저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친구 어머님이 한약 먹은 후, 간수치가 1000까지 올라 갔다는 거예요 아는 것도 없으면서 괜히, 한약 먹어서 일시적인 거라고 했는데 (비슷한 경우를 당한 적이 있어서) 결국 담도암 말기로 판명난 거 있죠 어찌나 죄송하고 미안스럽던지... 지금은 서울대 병원에서 항암치료 받는다는데 친구 말로는 아무 의미없이 그냥 하는 거라네요 에구, 우울...

파란여우 2005-06-29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일이 있은 후.....

클리오 2005-06-29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나나님이나 마태님이나 그건 좋은 쪽으로 위로해주신건데 미안할 것 까지는 없지요. 그렇다고 그걸, 암이야! 그렇게 예언하는 것도 영 재수없는 일이잖아요.. 마태님 주변에 좋은 친구가 많으시군요.. 좋은 분이시니까... ^^

싸이런스 2005-06-2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슬퍼라.....그래도 울고 싶을 때 울 수 있는 것도 말라 비틀어진 가슴보단 좋은 거 같아요. 아...울고 싶다..그냥.

줄리 2005-06-30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우글우글거리나봐요.^^ 부러워요.

마태우스 2005-06-30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줄리님/우글거릴 것까진 없지만.... 줄리님도 그 중 하나잖습니까!
싸이런스님/제 가슴이 비틀어지긴 했죠. 너무 썰렁하죠? 아, 이러면 안되는데...
클리오님/그래도... 그쪽에선 절 믿고 상담을 의뢰했는데, 틀려버리니 신용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 친구가 믿는 의사는 저밖에 없다네요...
여우님/님의 이미지, 볼수록 예쁩니다. 님의 마음처럼요

마태우스 2005-06-30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앗 혹시 의료계 종사하시나요? 한약 먹어서 그럴 수도 있지요...그래도 1000이면 좀 심한 거죠... 혹시 황달도 있지 않았나요? 빌리루빈 수치가 20 넘어가는 건 암일 확률이 높다네요...

마태우스 2005-06-30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나님/우리 그때의 실수를 거울삼아, 앞으로는 제대로 된 진단을 내리도록 노력해 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