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수가 만나 자손을 낳는) 유성생식에는 몇가지 불편한 점이 있다. 우선 파트너를 찾고 구혼하는 데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며, 짝짓기 과정에서 무방비 상태로 적의 공격을 받거나 질병에 걸릴 수도 있다]


<유전자의 변신 이야기>의 한 구절이다. 할 때 공격받는 사람이 극히 드문 걸로 보아 뒷부분은 다른 동물에게만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앞부분, 파트너를 찾고 구혼하는 데 사람만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종은 지구상에 없다. 중매장이라는 직업이 있고, 결혼정보회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는다. 결혼의 목적을 종족의 번식에만 국한시킨다면, 번식을 위해 배우자를 고르고 또 고르는 행위는 지극히 낭비적인 일, 길지 않은 인생의 많은 세월을 그런 행위에 소비하는 인류가 만물의 영장으로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건 신기한 일이다.


[조류나 포유류의 경우 대부분 수컷이 암컷보다 성선택의 압력을 강하게 받으며, 이에 따라 더 멋진 성적 장식들을 보여준다. 공작의 화려한 꼬리나 검은 털이 무성한 엘크의 목덜미가 그 예다]

물론 암컷이 성선택의 압력을 더 강하게 받는 경우는 그 반대가 된다. 실고기의 암컷이 수컷에 비해 줄무늬 숫자가 더 많은 것도 그 증거란다.


어느 종보다 배우자 선택이 까다로운 인류에서 미용산업이 팽창하는 건 그러므로 놀랄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조류나 포유류와 달리, 그 미용산업의 타겟은 여성이며, 여성들은 수컷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막대한 시간과 돈을 쏟아붓는다. 천만원을 호가하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턱을 깎는 건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는 행위다. 가슴에 식염수를 넣는 것도 아프기 그지없고, 코에 실리콘을 넣는 것도 많은 불편이 따른다. 이 모든 것들을 우리 여성들은 묵묵히 해낸다. 남자들 중 멋을 내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인류에게 있어서 성선택의 압력은 주로 여성에게 가해진다고 할 수 있다. 남성의 성적 욕망이 여성보다 강하다는 통념이 맞다면 다른 동물들처럼 남성이 멋지게 보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건만, 실상은 그 반대인 셈이다.


종의 다양성을 높임으로써 환경의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개체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유성생식의 장점은 십분 이해하지만, 변변한 애인이 없어서 자웅동체인 고사리가 부럽다고 말했던 내 친구처럼, 나도 가끔은-아주 가끔-인간이 왜 유성생식이란 힘든 길을 택했는지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인간이 자웅동체거나 몸의 일부가 떨어져 새 사람을 만드는 무성생식을 한다면, 나도 여자를 찾느라 방황하지 않았을 게 아닌가. 갑자기 이런 어이없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오늘 아침 어머님이 선을 보라고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건내주셨기 때문이다. 요즘 좀 시니컬해진 나머지 애인을 사귀고픈 마음도 아예 없어진 마당에, 누군가를 만나서 “취미가 뭐예요?” “어떤 냉면 좋아하세요? 전 물냉면이 좋아요” 같은 얘기를 하면서 두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게 시간낭비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는 왜 아직도 날 포기하지 않는 걸까. 이게 다 유성생식 때문이 아니겠는가.


나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간혹 있을 터, 그들과 함께 ‘무성생식을 지지하는 모임’이라도 만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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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6-29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라....
그냥 '사람 구경'만 즐겁게 하시길 바람다. '무성생식'이란 발랄한 아이디어가 모두 마태님의 스트레스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니...흑흑.

비로그인 2005-06-29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지한다고 뭐가 됩니까요....마태님, 타고난 종의 정체성(씩이나...)에 충실하시라요. 케케켁....후다닥=3=3=3

싸이런스 2005-06-2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쉬 잼나다. 난 마태님이 쓸데없는? 데 시간, 에너지 뺏기지 말고 영원한 솔로로 남기를 바람다...만인에게 재미를! 너무 잔인한가? 사십 넘으면 부모님이 포기하는 줄 만 알았던 나....마흔 넷 솔로 선배가 추석 때 집에 안가길래...왜냐고 묻자...아직도 꿈꾸고 있는 집안 식구들에게 일일이 답하기 싫어서라던데....거...'무지모' 만들면 그 선배랑 나랑 가입할 용의 충분히 있슴다.

줄리 2005-06-29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예전에 생각했던걸 마태님은 이제야 생각하시나보네요.ㅎㅎ 근데 전 이제 짝 찾아서 그런지 예전 생각이 우스워요^^

클리오 2005-06-29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런 생각한 적 있는데.. 정말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시나봐요. 반가워요. 저도 남자와 여자가 빚어내는, 혹은 빚어낼 수 있는 여러가지가 스트레스 받아서 '나도 자웅동체'가 되고프다고 소리쳤었지요. 저도 지지해서 될 수 있다면 지지해보렵니다... ^^; (이거 마태님의 아침 푸념에 너무 진지하게 반응하는거 아닌지... )

숨은아이 2005-06-29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요, 자웅동체 동물은 혼자 생식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서로의 정자를 주고받는 거라면서요? 달팽이도 그렇고 기, 기생충도... ^^ 그럼 자웅동체 동물도 상대를 찾아야 하네요 뭐.

oldhand 2005-06-29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 거의 모든 분야에서 "뷰티 프리미엄"이 인정 받는 지금, 미용에 쏟아 붓는 인간의 열정은 이제 "생식"보다 "생존"때문인것 같습니다.

검둥개 2005-06-29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물냉면이 좋아요 ㅎㅎㅎ ^^;;; 이왕 보시는 선, 소재 개발에 좀더 주력을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산사춘 2005-06-30 0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식'이 빠지면 유무성이 상관없지 않을까요? (딴소리중)

마태우스 2005-06-30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사춘님/그,그런가요? 글쎄요, 꼭 해야 제대로 사귀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무슨 말을 하는지...
검정개님/저...말이 그렇다는 거지, 저 저런 멘트 지금은 안합니다. 요즘은 좀 더 유치한 컨셉으로 나가고 있는데요, 반응이 아주 좋답니다^^
올드핸드님/생식에서 생존으로... 공감가는 분석이십니다 역쉬 올드핸드님...
숨은아이님/자웅동체는 다른 게 있으면 걔랑 하지만, 없을 땐 혼자서도 가능하답니다. 저 자웅동체 할래요!
클리오님/님은 언제나 제 편! 호호, 반갑습니다.
줄리님/아, 님은 예전에 생각하셨군요... 글쿠나... 그래도 우리가 같은 생각을 했다는 게 어딥니까. 네? 지금은 그런 생각 안하신다구요?
싸이런스님/돌연 나타나서 저를 즐겁게 해주시는 싸이런스님, 저 님 말씀대로 할 테니, 심심하면 놀아주셔야 합니다^^
별사탕님/정체성이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거라고 주윤발이 그랬어요. 제 정체성은 자웅동체예요!
마냐님/그러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한번 만나고 자르려니, 마음이 아프더이다.

싸이런스 2005-06-30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도 잘 듣고 예뻐요! 근데 심심하실 때도 있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