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사 얘기를 하자면 언제나 한숨이 나온다. 세상에 약자가 시간강사 뿐이겠냐만은, 시간강사가 유독 더 갑갑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많이 배웠기 때문이리라.  강의의 절반을 책임지면서 시간당 2만원의 수당을 받는 일용직, 이 대학 저 대학으로 강의를 다니는 보따리 장사, 방학 때는 그나마의 수입도 끊겨 잠정적 실업자가가 되는 사람들, 교수가 이사가면 이삿짐을 날라야 하는 현대판 노예... 그러니 시간강사가 자살만 했다하면, 실연당해서 죽는다는 유서가 있음에도 ‘생활고를 비관해서’라는 기사가 나가 버린다. 그래야 평소 시간강사에 무관심했다는 부채감을 털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영화 <플란더즈의 개>에 나오는 이성재는 학장에게 1,500만원을 주고 전임에 임명된다. 전임만 된다면 사실 1,500만원이 문제일까. 5천만원에 전임을 준다면, 백이면 백 대출이라도 받아서 그 돈을 마련하리라. 시간강사와 전임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고, 그깟 5천은 전임만 되면 얼마든지 갚을 수 있으니까.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시간강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나 역시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교육의 질이 국가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라면, 그 절반을 담당하는 시간강사에게 어느 정도의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모두가 공감하고 있으면서 그게 안되는 이유가 뭘까? 난 수요와 공급이라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론에 기대어 이 문제를 설명하고 싶다.


이 세상에는 시간강사가 너무나도 많다. 시간강사가 그렇게 많지 않다면, 구하기가 겁나게 어렵다면 지금 같은 보수로 강사를 구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으니 인건비도 안되는 허접한 값에 시간강사를 부리는 거다. 시간강사가 많은 이유는 교수를 노리는 사람이 너무나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중 교수가 되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교수 자리라는 것도 쉽사리 늘지 않고, 한 교수가 정년퇴임을 해야 겨우 자리가 난다. 그럼에도 왜 그토록 교수를 하려고 하는 걸까.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은 왜 안할까. 집에 돈이 많거나 처가가 많으면 모르겠지만, 그것도 아닌 사람이 시간강사 일을 하면서 마냥 그날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 죽겠다. 교수밖에 길이 없는 것일까. 그리고 교수는 다른 직장에 비해 그다지도 좋은가. 편하고 자유로운데다가 사회에서 알아주니 좋기는 하다만, 떼돈을 버는 직업은 결코 아닌데 그렇게까지 목을 맬 필요가 있을까? 교수가 하고픈 사람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우리가 사농공상의 이데올로기에 깊이 빠진 탓은 아닐까.


사실 시간강사의 원래 취지는 이런 게 아니었다. 다른 대학에 반도체 분야에 기가 막힌 사람이 있고, 그 강의를 들음으로써 우리 학생들이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때, 비싼 돈을 주고라도 그 분을 초빙해 오는 게 시간강사의 취지였다. 그러던 게 교수 희망자의 적체현상으로 오늘의 사태가 초래된 거다. 이 책임은 교수에 목을 매고 허드렛일을 해온 시간강사들에게도 일부 있다.


우리나라의 교수 숫자는 외국에 비하면 많이 모자라는 편이다. 그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주는 게 바로 시간강사다. 바꿔 말하면 시간강사가 강의를 도와주지 않으면 학교에서도 전임을 지금보다 최소한 1.5배 정도 늘릴 수밖에 없다는 거다. 4년제 대학의 교수 숫자를 4만명으로 볼 때, 앞으로 2만명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시간강사 문제의 해결은, 그들이 썰물처럼 대학 근처에서 빠져나가는 데 있을지 모른다. 어떻게 해서든지 일년만 버틴다면 시간강사의 수당도 오를 테고, 학교에서도 교수 숫자를 좀 더 늘리거나 그러지 않을까?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는 건 십분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막연하게 “시간강사 문제 해결해라!”고 가끔씩 외치는 것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시간당 2만원인 수당을 50% 올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시간강사는 본인이 원해서 된 거다. 그들은 교수가 되고픈 사람들이고, 교수만 된다면 그간 겪었던 수모는 몽땅 다 잊을 수 있다는 일념으로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고시생을 한번 보자. 대략 5만명 정도의 젊은이들이 고시 합격만을 기다리며 열심히 공부한다. 그 중 고시에 합격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다들 없는 돈을 써가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그들의 생계를 해결하자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그런 삶을 살기 때문이다. 자문해 본다. 시간강사는 고시생과 얼마나 다를까? 한큐에 신분이 급상승하는 것도 같고, 그날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생도 이겨낼 수 있다는 것도 같은데.


대학에 있다보니 시간강사들에게 갖는 부채의식이 더 크다 (의대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강사는 없다). 그래서 난 교수들 월급에서 얼마를 제해서 시간강사에게 줬으면 좋겠지만,  그건 미봉책일 뿐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되는데다, 얼마나 많은 교수가 그런 발상에 찬성할지 모르겠다. 갑갑해서 몇 자 적었고, 두서없는 글이었다. 모자란 이 글에 다른 분들께서 많은 가르침을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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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리 2005-05-06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무지 길다...

조금, 답답해서요. 제 주변 친구들 중에도, 앞으로가 암담하니까, 하고 싶은 건 공부이지만 그 공부 중간에 때려치우는 사람들이 좀 있거든요. 친구 하나는 논문을 앞두고 폐인생활을 하고 있고, 또다른 친구 하나는 논문 제출을 미룬 채 그냥 이런저런 아르바이트와 백수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중이라...


마태우스 2005-05-0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바리님/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의 지식을 사회에 유용하게 써먹고 싶어하는 게 인지상정이고, 그러다보니 교수를 원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왜 이런 거 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는 거죠? 제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속삭이신 분/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님의 생각을 정리하면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간에 혜택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현실이 문제라는 거죠? 음, 저도 교수가 지나친 혜택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수혜자로서 혜택을 선뜻 포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교수들이 혜택을 포기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고민스럽네요.

니르바나 2005-05-06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은 언제 뵈어도 참 넉넉하십니다. 재벌 2세라서 그러신가요.
제가 아는 교수님들은 당신들 월급이 많다는 분은 한 분도 안 계시고 월급쩍다 하시던데요.

마태우스 2005-05-06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니르바나님/어떻게 쓰느냐가 문제겠지요.저도 가정 있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시종님/쿠폰으로 하면 저만 유리한걸요. 일찍 끝내주는 교수를 학생들은 선호합디다^^
진주님/알라딘의 생활화가 이루어지겠군요^^
에피님/어쩜 그리 깜찍한 생각을 하셨나요
매직님/하여간 전 님 편이어요!
라일라님/님의 추천에 힘입어 지금 9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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