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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과 사상 33
강준만 외 지음 / 개마고원 / 2005년 1월
평점 :
품절
극장에서 화장실에 간 친구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극장표를 검사하던 아저씨가 내게 책을 잠깐 보자고 한다.
“아, 책 표지가 이렇게 바뀌었구나!”
내가 보고 있던 책은 단행본 <인물과 사상 33권>, 얘기를 해보니까 그 아저씨는 그 책을 1권이 나온 97년부터 쭉 읽어오다가, 2년쯤 전부터 안읽었단다. 그러니까 그와 나는 ‘인물과 사상’ 독자, 갑자기 친해진 우리는 약 7분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이 책이 마지막이래요”라고 하니까 쓸쓸해하시면서 이유를 묻는다. 그래서 책 머리말을 보여드렸다.
“지난 몇 년간 시사적인 이슈를 다루는 책이 대중의 호응을 얻은 건 거의 없다. 특히 정치 분야가 그렇다. 왜? 인터넷이 그 기능을 완전히 흡수해버렸기 때문이다....<인물과 사상>은 그런 세상의 변화에 순응하기로 했다”
늘 말하지만 난 이 책으로 인해 '사람‘이 되었다. 사회를 보는 눈을 비롯해 내 인생 자체가 정말 많이 바뀌어 버렸으니까. 물론 난 그렇게 해준 이 시리즈에, 그리고 책의 대부분을 혼자 저술한 강준만 교수에게 언제나 감사드리고 있다. 그런 책의 종간호를 읽는 기분은 시원섭섭했다. 97년 이 책과 인연을 맺은 이래 난 이 책만을 기다리며 삶을 살았었다. 시리즈가 20권을 넘기면서 책을 사는 기쁨은 조금 덜해졌고, 언젠가부터는 의무감에서 샀다. 모르던 것을 깨닫는 즐거움이 점점 없어지니 책의 재미도 시들할 수밖에. 하지만 이 시리즈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우리 사회에 실명비판을 정착시킨 점, 글쓰기에 있어서 성실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점, 게다가 나같이 사회에 무지한 사람에게 우리 사회의 작동원리를 알게 해준 것 등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진중권, 김정란, 고종석, 김규항 등 내가 스승으로 모시는 분들을 처음 만난 것도 다 이 시리즈를 통해서다.
97년, 직장 테니스장에 놓인 신문 쪼가리에서 <인물과 사상 3권>의 서평을 보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어찌 되었을까. 여전히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연예인과 프로야구 얘기만 하면서 지금까지 살고 있을까. 아니면 나중에라도 그 시리즈에 관한 정보를 얻어 지금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 비교 자체가 좀 말이 안되는 것 같지만, 내가 읽은 어떤 책에 의하면 세르비아 청년이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하지 않았다고 해도 1차대전은 일어났다고 한다. 그 말이 맞다면 그 신문 쪼가리가 아니었다 해도 난 강준만을 만나 스승으로 삼지 않았을까. 그 시리즈에 매료되었던 나는 아는 선배의 생일 때 그 책 1-3권을 선물했는데, 그 선배는 “뭐 이딴 책이 있냐”며 읽다 말았단다. 그러니까 보는 순간 필이 통했던 나와 강준만의 만남은 그 자체로 운명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몇 달 뒤냐 앞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우리는 반드시 사제지간이 되었을 터였다.
내겐 큰 의미가 있을 33권 종간호를 선물해주신 선인장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민주당 분당 이후 정치적 글쓰기를 자제하는 강준만 교수님이 다시금 힘찬 글을 써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강교수님, 감사드립니다.
* 이 책을 제게 선물해 주신 선인장 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