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이후 내 머리 스타일은 늘 한결같았다. 자연 그대로,란 스타일.
외모에 신경을 쓴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
옷도 대충 입었고, 몸도 함부로 굴렸던 것 같다.
예를 들어 테니스를 치던 지난 18년간, 선크림을 제대로 바른 건 결혼 후 5년 정도가 전부라,
원래는 고운 편이었던 내 피부에 온갖 잡티가 다 들어서 버렸다.
흰머리가 나기 시작했지만 그것 역시 신경쓰지 않았다.
방송에 나가자 이 모든 것들을 바꿔야 했다.
1) 베란다쇼야 옷을 다 준비해 주니 편했지만,
1-2주에 한번 나가는 아침마당의 의상은 내가 준비해야 했다.
아마도 올해가 내 인생에서 가장 옷을 많이 산 한해일 것이다.
아내는 평소 생각도 못했던 붉은 계통의 바지, 울긋불긋한 윗도리 등등을 사서 입혔고,
평소 같으면 “이걸 어떻게 입냐”고 투정을 부렸을 나도 점차 그런 색깔에 둔감해졌다.
언젠가 아침마당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6개월치 옷을 샀거든요. 저 6개월간 잘리면 안 돼요!”
2) 한번도 파마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머리 자르는 것도 극도로 귀찮아해 2달에 한번씩, 아내가 제발 좀 자르라고 보채면
그제야 미장원에 가곤 했지만,
방송에 나가고 나서 내 인생 처음으로 파마라는 걸 했다.
최대한 파마한 티가 안나게 해달라고 주문하긴 했지만,
파마한 머리도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고,
이젠 내 머리가 곱슬거리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지난주, 방송 분장실에서 머리를 만져주는 분이 “파마가 좀 풀렸네요”라고 말하자마자
오늘 미장원에 가서 파마를 한 걸 보면,
내가 참 달라졌다 싶다.
3) TV를 본 사람들 중 일부가 내게 한마디씩 했다.
“너 주름이 그게 뭐냐? 보톡스 좀 맞아야겠다.”라든지
“피부 보면 할아버지 같아. 제발 관리 좀 받아.”라는 얘기를 들은 게
아내 것까지 합치면 20차례 정도 들었던 것 같다.
그러던 차에 아는 분의 도움으로 피부과를 찾았고,
거기서 한시간이 넘도록 시술을 받았다.
원체 주름이 깊고 많아 갑자기 좋아지진 않겠지만,
한번 받고나니 갑자기 얼굴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진 게 느껴진다.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받으셔야죠”라는데,
지금같은 일정에서 그게 가능할까 의문이다.
뭐 어쩌겠는가. 시간을 내야지.
4) 언젠가 아내가 염색 얘기를 했을 때 난 극도로 저항했다.
하지만 얼마 전 재연 촬영을 찍던 피디는 이렇게 말했다.
“염색 좀 하셔야겠어요. 얼굴은 좀 젊어 보이는데 흰머리가 너무 많아요.”
따지고보면 피디는 내 직장상사, 난 결국 오늘 미장원에 가서 염색을 해버렸다.
연예인도 아니고 일주에 한두번 얼굴을 내미는데도 이리 할 일이 많다면,
직업 연예인은 정말 상상도 못할 관리를 받을 것 같다.
출연료를 받을 때마다 아내에게 차비만 빼고 송금을 해주지만,
아내는 그 돈으로 날 치장해 준다.
그러다보면 남는 게 과연 뭔가 하는 회의도 들지만,
다른 건 몰라도 옷과 피부는 남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