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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 정유정 장편소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6월
평점 :
작년에 내가 읽은 책 중 최고의 책은, 국내작가에 한정짓는다면, 단연 <7년의 밤>이다.
주인공이 취직할 때마다 투서를 보내는 사람은 누구일까, 7년 전 그날엔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등등
책의 시작부터 사람의 호기심을 확 잡아당기는 뭔가가 있었다.
그 책을 읽던 사흘간 난 책읽는 시간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에 짜증이 났었다.
열시가 넘었는데도 파하지 않는 모임, 때가 되면 잠이 오는 내 한심한 인내심,
심지어 내가 하는 연구를 위해 나랑 계약한 사냥꾼이 강원도에서 잡은 멧돼지 근육을 보내왔을 때,
닌 “아이 참...며칠 있다 잡히지”라며 멧돼지를 원망했다.
그 후 작가의 이전 작품을 찾아 읽은 건 아니었지만,
정유정이란 이름은 내 머릿속에 단단히 박혀서, 새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게 됐다.
그리고 새 책이 나왔다.
<28>이라는 독특한 제목과 함께.
책날개에 의하면 저자는 “2년 3개월을 장편소설 <28> 집필에만 몰두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 책의 설정은, 과학적으로만 본다면, 저자가 정말 열심히 공부했구나,는 걸 느끼게 해줬다.
개를 통해 전파되는 바이러스 질환을 전제로 한 이 소설은
실제 그런 일이 닥쳤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을 리얼하게 그려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책에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이건 순전히 내가 개를 지나치게, 비율로 따지자면 상위 0.1%에 들 만큼, 좋아하는 탓이 컸다.
개들이 죽어나가는 게, 그리고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게 영 불편한 나머지
책에 잘 집중이 안됐다.
책에서는 개가 바이러스의 감염원이라 학대를 받지만,
현실에선 이렇다할 해도 끼치지 않는데도 해마다 8만마리의 개가 버려지고,
그 대부분이 차에 치여, 물을 못먹어, 그리고 안락사를 통해 저 세상으로 간다.
저자 역시 개를 좋아하니까 이런 책을 쓸 수 있었겠지만,
내가 워낙 개 애호가인지라 개가 죽어나가는 장면들이 불편했고,
결말 역시 찜찜하기 짝이 없었다.
전제로 삼은 동물이 개가 아니었다면 난 이 책에 열광했을까?
그랬을 수도 있지만, 모든 아귀가 잘 맞아 떨어진 7년의 밤과 달리
<28>은 뭔가 부족하단 느낌이 든다.
개 바이러스는 어떤 이에겐 사람 간의 접촉만으로 쉽게 전파가 되는 반면
어떤 이는 아무리 환자를 만나도 전파가 안되는데,
내가 아둔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게 왜 이런지 책에선 설명을 해주지 않았던 게
애견가가 아닌, 과학자의 입장에서 아쉬운 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28>이 재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전작에서도 정유정은 미친 살인마를 그리는 데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 줬는데,
그 재능은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시네 21에서 이런 구절을 봤다.
“우리나라 소설은 주로 내면의 갈등을 다뤄 영화 시나리오로 쓸만한 게 없다.”
그나마 다행이다. 정유정이 있다는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