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학생회는 신화 그 자체였다. ‘전대협 불패신화’ 어쩌고 하는 책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김민석이나 임종석, 허인회같은 사람들의 인기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총학생회장인 이정우는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연설을 한 뒤 여장을 하고 유유히 빠져나갔다는 등의 영웅담이 전설처럼 떠돌기도 했다. 다른 단과대만큼은 못하지만, 의대 학생회를 맡은 사람들도 운동깨나 하던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생회와는 거리를 뒀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 옳다는 데는 대충 동의했던 것 같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많은 것이 변했다. 군사독재 정권과는 달리, 절차적 정당성을 지닌 정부에 맞서 싸우는 것은 대중의 호응은 물론이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공감을 얻기가 힘들었다. 그러자 학생회는 타깃을 정권이 아닌, 대학으로 바꾼다. 등록금 인하투쟁이 벌어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날로 가파르게 상승하는 대학 등록금이 가계에 부담이 되었던 터라 그 운동은 일정 부분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그 운동은 이내 한계를 드러냈다. 담배값을 올려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애연가처럼, 등록금이 아무리 인상돼도 등록금을 안낼 수는 없었으니까. 이제 학생들은 더 이상 학생회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 강의실에서 한 학생이 목소리를 높여 말한다.
“우리 학년에서 한명이 학생회장을 해야 하거든요. 지난번 과대표처럼 아무도 안나서서 억지로 떠맡기는 대신, 자발적으로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식의 학생회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고, 다른 학생들 역시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면 존재할 이유가 있을까. 내 생각을 말하자면, 학생회의 몰락은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타도해야 할 군부독재 정권이 사라진 마당에, 계속 적을 만들어 가면서 투쟁 일변도로 나아간 게 잘못이 아닐까 싶다. 학생들이 필요로 했던 것은 제왕처럼 군림하면서 학교와 유리된 정치사회적 문제에 맞서 싸우는 학생회가 아니라, 자신들에게 봉사하는 학생회였지 않았을까.
초중고 때 반장을 하는 건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학생회장이 아무도 안하려 하는 천덕꾸러기가 된 것은 성적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학생회장 중에는 희한하게 공부 잘하는 학생이 없다. 급우들 심부름도 잘 하면서 성적도 좋은 학생회장이 계속 배출된다면 학생회의 어두운 이미지도 나아질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