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틀맨 리그’의 예고편을 극장에서 봤을 때, 구미가 좀 당겼다. 추억의 영웅들이 모여 지구를 구한다는 내용은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던가. 하지만 의외로 평이 안좋아 결국 안보기로 했었는데, 그 결정이 참으로 훌륭했다는 걸 어제 케이블로 보면서 알았다. 낮잠을 다섯시간이나 잤는데 하품이 나오다니, 정말 대단한 영화 아닌가.
지구가 위기에 빠졌다. 위기상황에서 젠틀맨 리그에 모인 영웅의 면면은 다음과 같다.
-쿼터메인: 영국의 영웅이라는데 난 모르겠다. 인종과 국적을 따지지 말고 세계 사람이 다 아는 신바드를 등장시키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이 역을 맡은 숀 코너리도 그렇다. 007 역도 한 원로 배우가 왜 이런 영화에 나왔는지 모를 일이다.
-네모선장; 이 사람도 난 잘 모른다. 내가 아는 유일한 선장은 ‘하록선장’이고, ‘네모’라는 별명은 얼굴이 각진 박경림밖에는....
-투명인간; 러닝머신을 뛸 때 난 꼭 팬티를 입고 뛴다. 안그러면 덜렁거려서 뛸 수가 없다. 그런데 투명인간은 어떻게 팬티도 안입고 달리고 싸우는가? 희한하네.
-불사신: 이 사람은 초상화가 대신 나이를 먹고, 자신은 아무리 총을 맞아도 안죽는다. 하지만 뭔가 다른 특기가 있어야지 단순히 오래 살기만 한다고 악을 이길 수는 없지 않을까.
-드라큘라 여인: 여자도 한명 등장시켜 구색을 맞췄는데, 드라큐라가 지구를 구한다니 좀 우습다. 박쥐 떼를 몰고다니며 싸우는 걸 보니, 꼭 지구를 구해야 하는가 회의가 들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하이드를 무슨 헐크처럼 그려놨다. 움직임도 영 어색했고.
이 사람이 드라큘라다. 이쁘긴 한데 좀 늙었다...
(이제부터 스포일러 많음)
베니스에서 열리는 유럽 정상회담을 저지하려고 폭탄을 설치한 악의 세력(두목은 팬텀)이 있다. 이 폭탄이 터지면 세계대전이 일어난단다. 왜? 왜 그렇지? 하여간 그렇단다.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무기를 팔아먹어 떼돈을 벌려는 게 팬텀의 계략. 4일 뒤로 다가온 그 사태를 막기 위해 M이란 사람은 젠틀맨리그라는 걸 소집하고 영웅들을 모은다. 가뜩이나 시간도 없는데, 아프리카에 있는 쿼터메인까지 불러오는 등 영웅을 모으는 데에 쓴 시간은 줄잡아 일주일. 차리라 베니스 회의를 연기시키거나 장소를 바꾸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폭탄은 결국 터지고 베니스가 무너지는 찰나, 젠틀맨 리그는 난데없는 로켓포를 쏴서 베니스를 구한다. 과학기술에 문외한이라 그런지 이 대목 역시 이해가 안갔다. 그런데 알고보니 M이란 놈은 사실 나쁜놈이며, 지구를 위협하는 ‘팬텀’이란 자와 동일인인거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는 셜록홈즈에 나오는 모리어티 교수. 영화를 보다보니 낮술이 깬지 한참 되었는데도 어지러웠다. 세계정복을 하려면 그냥 하지, 왜 이상한 클럽을 만들고 난린가. 그렇게 하니 그 클럽이 M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지 않겠는가. 결국 M은 총에 맞아 죽고, 세계는 구해진다. 워낙 어이가 없다보니 지구가 구해졌는데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덧붙이는 말; M이자 팬텀이자 모리어티 교수는 참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 정도 돈이 많고 조직원을 수없이 거느렸다면 말로 지시하면 충분할텐데, 범행 현장마다 일일이 동행한다. 그래서 그는 총에 맞을 뻔하고, 등에 칼을 맞기도 하고, 결국 총에 맞아 뒤진다. 이 영화를 만든 스티븐 노링턴에게 권한다. 등에 칼맞기 전에 영화 그만 만들어라.
하나 더. 갑자기 이런 리그가 생각난다. 스티브 노링턴과 ‘낭만자객’을 만든 윤제균 감독, ‘해피에로크리스마스’를 만든 이건동, 3.58로 맥스무비 사상 최악의 별점을 받았던 ‘마법의 성’의 방성웅(방성윤과 어떤 관계?) 등이 모여 ‘shet league'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