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화사에서 터미네이터 3만큼 저평가된 작품은 없다”
방글라데시 영화 평론가인 우르바바(43세)의 말이다. 난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난 <터미네이터 3: 이하 터3>을 극장에서 봤다. 평이 그다지 좋지 않았음에도 2편까지 봤으니까 결말은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본 거다. 본 느낌은 매우 무미건조하다는 거였다. 열심히 달리고 싸우는 주인공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난 별반 공포감, 긴박감, 스릴, 서스펜스 그 어느 것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어제, 집구석에 드러누워 책을 보는 짬짬이 <터3>을 다시 보다가 나도 모르게 탄식하고 말았다. “이게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였다니!”
제임스 카메론이 <터1>과 <터2>를 연짱으로 히트시키는 바람에, <터3>를 맡은 모스토우 감독은 정말이지 심난했을 거다.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스카이넷은 2편에서 없애는 데 성공했고, 심판의 날도 막았다. 그러니 3편이 왜 나와야 하는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어떻게 만들어도 전작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상황-도박 용어로 잘해야 본전이라고 한다-에서 제작진은 2가지 전략을 택한다.
첫째, 뜸을 들인다. 2편이 히트하고 무려 12년만에 3편이 나온 건, 2편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지기를 기다린 거였다. 하지만 이건 전략적 착오였다. 제작진의 기대와는 반대로 <터2>는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신격화되었고, 그건 <터3>에 대한 지나친 냉소로 돌아왔다. 우르과이의 영화감독 파이드리카스(작고)에 의하면 히트한 영화의 속편을 만들 가장 적당한 시기는 4년이라고 한다. 월드컵이나 올림픽이 4년마다 열리는 것도,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4년인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 기인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니 12년은 지나치게 길었다. 더구나 그 12년간 기대와는 달리 과학기술이 별반 달라진 게 없다는 것, 그래서 2편보다 화려한 특수효과가 거의 없었다는 것도 영화가 실패한 이유가 되었다.
둘째, 여자를 쓴다! 모스토우는 크리스티나 로켄이라는 미녀를 TX 역에 쓰는 모험을 했다. 다른 영화와 달리 터미네이터 역은 연기를 못할수록 잘하는 거다. 표정이 없어야 하고, 움직이는 것도 자연스러워서는 안된다. 연기 경험이 거의 없었던 아놀드가 이 영화로 뜬 것도 바로 그래서가 아니던가. 로켄 역시 연기파 배우는 아니었고, 다른 작품에서 하던대로 로봇같은 연기를 했다. 그녀의 연기는-내가 볼 때-흠잡을 곳이 없었다. 문제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는 거였다. 우리는 1편에서 불에 타고도, 차에 깔리고도, 총에 맞아 박살이 나고도 계속 달려드는 징한 로봇을 기억한다. 또한 우리는 2편에서 몸을 자유롭게 변신시키면서 가공할 공격을 하는 더 징한 로봇을 잊지 않고 있다. 그가 손을 칼로 만들어 찌르는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악몽에 단골로 나올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에 비해 로켄은 너무 예쁘고, 그래서 하나도 안무섭다. 어차피 쫓고 쫓기는 게 <터> 줄거리의 전부인데, 쫓는 자가 무섭지 않다면 게임은 끝난 거다.

이런 이유로 영화는 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3>가 평가절하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교 대상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내가 토익 920점을 맞았다고 해보자 (물론 절대로 그럴 리는 없다). 잘했다고 뿌듯해하고 있는데 950점을 맞은 놈이 “그게 점수냐”고 한다면 얼마나 화나겠는가. 게다가 주위 사람까지 합세해 “920은 점수도 아냐”라고 한다면 그 억울함은 얼마나 클까. <터1>과 <터2>은 토익 990점짜리 작품이다. <터3>는, 반응은 안좋았지만 900점은 된다. <터3>로서는 왜 하필 990점짜리와 비교하느냐고 볼멘소리를 할만하지 않는가? <헐크>나 <매트릭스2> 등 비슷한 시기에 개봉했던 다른 영화들과 겨뤘다면 그렇게 냉정한 평가를 받지 않았을텐데. 물론 속편은 전편과 비교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지만, “전편 개봉 후 10년이 지났다면 속편이 아닌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판례도 있는만큼, 냉정하게 다시 생각을 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내가 모스토우라면 아예 제목을 바꿨을거다. ‘핵전쟁 일촉즉발’라든지 ‘툼 레이더 3’ 정도로).
끝으로 <터> 시리즈에 대한 의문점을 제시해 보겠다. 1편은 이런 내용이다. 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의 어머니(사라 코너)를 죽이러 터미네이터가 과거로 간다. 그 터미네이터를 막기 위해 또 다른 남자가 과거로 간다. 그런데 그 남자는 사라 코너를 보호하다가 정이 들어 한번 한다. 거기서 나온 애가 바로 존 코너. 그렇다면, 기계들이 터미네이터를 보내지 않았다면 사라 코너의 남편도 과거로 안갔을 거다. 사라 코너가 낳은 애는 무조건 존 코너라는 어머니 결정론을 믿지 않는다면, 기계들로서는 굳이 사라 코너를 죽이러 가지 않는 것이 더 유리했지 않았을까?
<터3>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아놀드는 존 코너와 케이트를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는데, 아놀드는 그 둘이 결국 결혼한다는 얘기를 해준다. 그는 케이트 역시 저항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고, 그래서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만약에 기계들이 TX를 보내 케이트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면 케이트는 원래 있던 약혼자와 결혼했을테고, 저항군에 가담할 생각도 안했지 않았을까. 긁어 부스럼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 3편까지 속편이 나온 영화가 여럿 있다. 그 이상 나온 것은 3편까지만 종합해서 내가 재미있게 본 순서대로 나열해 본다.
1위 백투더 퓨쳐
2위 매트릭스
3위 리셀웨폰
4위 다이하드
5위 터미네이터
6위 애마부인
7위 반지의 제왕
8위 해리포터
9위 총알탄 사나이
10위 슈퍼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