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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가서 써먹기 좋은 대사 메뉴얼
한동원 지음 / 북하우스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어디 가서 써먹기 좋은 대사 매뉴얼>이라는, 다소 긴 제목의 책을 읽었다. 제목은 길지만 책이 워낙 재미있다보니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유익성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제목에 나와있지 않는가. “어디 가서 써먹기 좋”다고.
제목 그대로 이 책은 여러 영화에 나왔던 대사들 중 멋있었던 대사들을 뽑아내 분석하고 어느 곳에서 써야 하는지 가르쳐 준다. 소개되는 영화들이 내가 대부분 본 것이지만, 그런 대사가 있었는지는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내가 대사보다 줄거리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본 탓일 텐데, 나와는 달리 저자는 멋진 대사들, 특히 작업용으로 쓰기 좋은 대사들을 중심으로 영화를 봤나보다. 영화 전문가와 아마츄어는 영화 관람에 있어서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 법이다.
책에 나오는 유익한 대사를 하나만 소개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원작의 <붉은 돼지>에 나오는 대사 하나. ‘붉은 돼지’라는 별명을 지닌 전투기 조종사인 마르코에게 여자가 그만 출정하라고, 당신 장례식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마르코는 이렇게 말한다.
“날지 않는 돼지는 돼지일 뿐이야”
이걸 어디다 응용할 수 있을까?
아버지: 너 스케이트 보드같이 위험한 짓 그만할 수 없니? 그러다 다리 부러지면 어쩌려고?
주인공: “날지 않는 돼지는 돼지일 뿐이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에 나오는 대사예요.
매우 그럴듯하지만, 실제로 잘 될지는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오는 멋진 대사들 중 여럿을 여친에게 써먹어 본 결과,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으니까. 쓰는 단어도 20단어 이내고, 표현력도 영 바닥이었던 내 화술이 부쩍 풍부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들이 멋진 대사에 열광하는 건 그게 브래드 피트같이 멋진 배우들의 입을 통해서 나왔을 때에만 국한되는 것 같다. 내가 자꾸 책의 대사들을 언급하자 친구들 역시 “너 왜그러냐?”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걸 보니 틀림없이 그렇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이 유익하지 않다는 건 결코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그래서 아름답게 윤색된 대사들을 기억했다 써먹는 습관을 들인다면 우리의 언어 문화가 얼마나 발전하겠는가? 이 책을 읽은 탓에 이제부터 난 영화 하나를 봐도 멋진 대사에 더 주목을 하게 될 것 같다.
작업을 하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른다거나, 나처럼 스무개 내외의 단어로 하루를 살아가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