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2월 11일(토)
마신 양: 하루 총량을 따진다면 기록적인 양이 될 듯..
누구와: 고2 때 만나 지금도 같이 노는 친구들과
97년 내가 보건원에서 공보의 생활을 할 무렵, 거기서 열리는 테니스 대회에 나간 적이 있다. 추첨 결과 가장 잘하는 사람과 한편이 된 탓에 나는 대번에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하지만 내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건 큰 시합만 나가면 바짝 긴장해 실력발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였다. 첫판을 나 때문에 지고, 둘째 판마저 그렇게 내주고 나자 정말이지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평소 실력만 발휘하면 지더라도 덜 속상할텐데, 뭐하나 제대로 한 게 없이 바보같은 플레이만 연출하고 있었다. 속상함을 풀기 위해 점심을 먹으면서 술을 마셨다. 소주를 한 여덟잔쯤 마시고 세 번째 경기에 임했으니 잘 될 리가 있겠는가. 술에 취한 탓에 긴장은 풀어졌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빠른 발이 주무기였던 나는 내 앞에서 튀기는 공을 물끄러미 보기만 했고, 헛스윙도 수없이 해댔다. 3패로 최하위가 된 나는 그 사람에게 미안한 나머지 공보의 생활의 나머지 기간 동안 그 사람을 열심히 피해다녔다.
어제, 최근 내가 가입한 테니스 모임에서 송년 테니스 대회가 열렸다. 그때만큼은 아니었지만 난 내 실력에 비해 너무도 못침으로써 민폐를 끼쳤는데, 첫판을 지고 나서 막걸리를 4잔쯤, 둘째판을 지고 나서는 막걸리를 대략 여덟잔 마셨던 것 같다. 세 번째 판은 7년 전의 재판으로, 내 특유의 빠른 발과 스트로크를 전혀 보여주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지고 말았다. 그래서 난 어제 우리 팀이 준우승을 하는 데 주역이 되었다. 청팀과 백팀으로 나뉘어 경기를 했는데 내가 속한 청팀이 7승8패로 졌으니 3전전패를 한 내가 주역이 아니겠는가. 술을 더 마시고, 심지어 소주까지 마신 뒤 가진 친선 경기에서도 난 몸을 거의 움직이지 못한 채 지고 말았다. 준우승 상품인 쌀을 가지고 집에 가면서 ‘죽고 싶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낮술 때문에 쓰러져 자느라 난 결혼식을 가지 못했고, 저녁 약속도 한시간이나 늦었다. 하지만 낮술을 마시면 밤에 아무리 마셔도 술에 안취하는데, 밤에 술을 마시면서 낮에 마신 술이 깨는 느낌은 의외로 상쾌하다. 낮술이 아니더라도 요즘의 난 술이 무진장 세져서, 아무리 마셔도 취하지가 않는다. 어제 역시 새벽 한시까지 들이부었지만 정신이 계속 말짱했는데, 이게 최후의 발악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조금은 된다. 참고로 어제 술자리는 근래 참석한 술자리 중 가장 재미있었는데, 그렇게 재미있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