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과 영화를 보러 갔다. xx 마감이 얼마 안남아 우리 둘다 그럴 처지는 아니었지만, 없는 시간을 쪼개서 보는 영화가 더 재밌는 법이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노트북>을 보고 나니까 세상의 모든 노트북들이 싫어졌고, 여친에게 “재밌다”는 거짓 정보를 흘린 사람에게 보복을 하고픈 심정이다. 복선 같은 건 애당초 없고, 결말이나 스토리가 뻔하디 뻔한 그런 영화, 나 혼자 봤으면 머리를 쥐어뜯었겠지만, 여친과 함께라 그리 지루하진 않았다.
돈많고 미녀인 A는 가난하고 비젼 없는 B와 사귀다 집안 반대로 헤어진다. 몇 년을 그러고 있는데 A 앞에 집안이 부자고 직업도 괜찮은데다 잘생기기까지 한 C가 나타난다. A는 놀랍게도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기로 한다. 그때 우연히 신문에 난 B의 사진을 본 A, 그녀는 B에게 달려가고, B는 다시 돌아온 A를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A가 누구를 선택했을지는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난 여기서 B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다.
A를 잃고 약간 맛이 간 삶을 사는 B에게 A의 출현은 꿈같은 얘기였을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A를 붙잡으려 하는 게 과연 온당한 일이었을까. 사랑을 신성시하는 사람은 그렇다고 얘기할 거다. 과연 그럴까. A 집안에서는 B를 사위감이 아니라고 결사반대하던데, 반대하는 결혼을 한 A는 마음고생이 많을거다. 게다가 인생은 사랑만으로 살 수는 없는 법, 돈많은 C가 A를 그렇게 사랑하고, 멋진 프로포즈까지 해줬는데, A를 다시 붙잡아야 할까? 그러니까 내 말은 자신보다 그녀를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와 결혼 날짜까지 잡혀 있는 상태라면 보내 주는 게 진정한 사랑이 아니냐는 거다.
이렇게 말하는 건 내가 너무 나이를 많이 먹어 현실적이 된 탓도 있지만, 집안 반대로 여자와 헤어져본 쓰라린 경험이 있어서일 것이다. 내가 버는 얼마 안되는 돈으로 도망가서 살 용기마저 없었던 나는 결국 그녀와 헤어지고 말았는데, 그때 난 집안의 반대가 얼마나 힘든 것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고, 내가 만일 자식을 낳는다면 누구와 사귀든 간섭을 안하리라 결심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결혼이 집안간의 만남이란 성격이 더 강하지만, 성인이 된 남녀가 결혼을 하겠다는데 집안에서 반대한다는 건 참으로 부당하다. 말로는 “너를 위해서야”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좀더 좋은 조건과 결혼을 함으로써 자신의 허영을 충족시키고자 함이 아닐까 싶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이긴 해도, <노트북>은 정말 ‘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