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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초 : 연인들 ㅣ 사랑의 기초
정이현 지음 / 톨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주제넘게도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다.
그것도 2년째로, 강좌 제목은 <과학적 글쓰기>다.
믿는 거라곤 경향에다 3년째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는 것과
빈약한 결과에도 미사여구를 동원해 그럴듯하게 논문을 써왔다는 건데,
학생들이 뭘 좀 얻어갔는지 여부는 강의평가가 말해주겠지만
개인적으론 무지 부끄럽다.
내가 대체 뭐라고 그런 걸 가르치나.
외부강사를 모시는 건 그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작년엔 내 영원한 은인이자 무영문학상 수상작가인 xxx 작가님을 모셨는데,
감동을 받은 학생들이 "한명 더 모셨으면 좋겠다"고 강의평가에 썼기에
올해는 두분의 강사를 목표로 했다.
물론 내 영원한 은인 xxx 작가님은 어려운 와중에도 흔쾌히 와주셨지만
나머지 한명이 문제였다.
ㄷㄱㄴ로 유명한 xxx, 문화평론가 ㅈoo, ㄲoㄴ oㄹo의 xxx 등등
많은 작가들에게 문자나 메일로 강의를 부탁드렸지만,
이곳은 천안이고, 강의시각은 오후 1시 20분이었다.
내 강의에 오면 하루를 다 날려야 하니, 선뜻 내키지가 않는 것 같았다(강사료도 적은데다!).
그나마도 대부분 응답을 안하는 걸로 답변을 대신했지만
정이현 작가님은 "그럼요, 서민님 기억하죠"로 시작되는 따뜻한 답장을 보내주셨다.
결론은 하는 일이 많아서 안되겠다,는 거였지만,
날 기억하고 계시다는 게 무지무지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난다.
메일을 받고나서 인터넷 검색을 해봤더니
프랑스의 유명작가 알랭 드 보통과 사랑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란다.
정말 바쁘시겠구나, 싶었고 그 와중에도 답장을 보내주신 것에 감사드렸다.
그 바쁨의 결과물인 <사랑의 기초>를 읽었다.
아, 바빴던 보람이 있구나,라는 감탄이 나오는 그런 책.
대부분의 책들이 사랑을 장밋빛으로 그리건만
이 책은 어떤 다큐보다 더 사랑의 진짜 모습을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다.
만남 초기엔 자기들의 만남에 작용한 수많은 우연들을 생각하며 서로를 운명이라 생각하다
권태기가 되면 헤어지잔 말도 못한 채 상대가 먼저 그 말을 해주길 기다리는 모습이라니,
"원래 그런 사람들 있어요. 관계가 끝난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끝까지 자기가 악역을 맡기 싫은 거예요. 미적미적.
상대방이 알아서 정리하기를 바라는 거죠."
이 대목을 읽고 마음 한구석이 따끔했다.
"어느 순간부터 현석은 늘 바쁘다고 했다. 주중에는 피곤했고, 주말에는 친구들 모임에 나가야 한다고 했다."라는 대목에서도 과거의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지금 아무리 좋은 사람인 척해도, 사실 난 나쁜 놈이었단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닫는다.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이런 책이야말로 좋은 책이 아닐까.
정작가님, 우리 학교 강의는 그냥 제가 알아서 잘 하겠습니다. 대신 좋은 책 많이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