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 책의 저자는 본문 내용과 대략 관계없음.
1. 상황
13일은 한국 축구 운명의 날이란다. 왜? 레바논과 숙명의 일전을 벌이기 때문. 한국이 레바논에 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월드컵 1차 예선 탈락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게 되니까.
히딩크 시절의 영광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지금 한국 축구의 위상은 너무도 형편없다. 옛날엔 1차 예선을 가지고 머리를 싸맨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동안엔 1차 예선서 만난 팀들에겐 언제나 열골차 이상의 대승을 거두었고, 그게 워낙 당연한 일이라 아무도 칭찬하지 않았다. 문제는 늘 2차 예선이지만, 거기서도 대충 다 통과를 했던 게 지난날의 축구역사다. 그런데 지금은 레바논전에 한국축구의 운명을 걸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옛날 우리의 숙적은 말레이시아였다. 결정적일 때마다 우리의 덜미를 잡던 말레이시아, 수중전에 강한 그들이 우리랑 붙기 전에 운동장에 물을 퍼다 나르고 했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86년 이래, 말레이시아는 더 이상 우리의 적수가 아니게 됐다. 월드컵에 단골로 출전하며 실력을 키운 우리나라는 2002년-홈 어드밴티지 덕을 보긴 했지만-포루투칼, 이탈리아 등 유럽의 강호들을 연파하고 독일과도 대등하게 싸우며 4강 신화를 일궜다. 레바논. 난 이 나라가 축구를 하는지 몰랐었다. 베트남. 국가대표팀이 있겠지, 하고 추측만 했었다. 오만. 아시안지 아프리칸지 헷갈렸다. 그런데 이 나라들이 이제 우리나라와 대등한 위치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이젠 베트남전에서 2-1로 이기면 잘 싸웠다고 칭찬한다. 싱겁기 그지없던 예전에 비해 이젠 1차 예선도 한경기 한경기가 다 박진감이 넘친다. 우리가 바랐던 것이 1차 예선의 활성화라면 코엘류의 영입은 성공적이다.
2. 코엘류는 무엇을 남겼나?
코엘류도 사실 나쁜 사람은 아니다. 결과가 안좋아서 그렇지, 그 역시 한국 축구를 더 발전시키고자 애를 쓴 사람이다.
전문가의 글에 의하면 코엘류가 원했던 것은 루이 코스타였단다. 포루투칼의 천재적인 게임 메이커였던 그 루이 코스타. 코엘류의 생각은 이랬다고 한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윙 플레이가 강한 팀이다. 발빠른 윙이 파고들어가 센터링을 올려주면 어찌어찌하다가 골을 넣는 그런 플레이. 그런 플레이는 아시아 최강은 할 수 있어도 세계 정상은 못한다. 세계 정상이 되려면 역시 중앙돌파를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루이 코스타같은 게임 메이커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코엘류는 수없이 평가전을 하면서 루이 코스타를 찾았던 것. 하지만 우리나라에 그런 선수가 있을 턱이 있겠는가. 별의별 선수를 다 해봐도 눈에 차는 게임메이커는 나타나지 않았고, 계속 중앙돌파에 의존하다보니 한국의 강점이던 윙 플레이마저 실종되었다. 국대팀의 평가전 다음날, 찌푸린 얼굴로 있는 애한테 다가가 “왜 그러냐”고 한마디만 하면 축구 얘기를 이삼십분 쏟아내곤 했던 게 바로 코엘류 시절이다.
결국 코엘류는 물러갔지만, 그 여파는 아직도 남아있다. 베트남, 레바논, 태국, 말레이시아, 이름만 들어도 긴장되는 팀들이 아닌가. 월드컵 4강의 함성이 불과 2년 전인 게 믿겨지지 않는다.
물론 난 코엘류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4강 신화를 재현하기 위해서는 어차피 코엘류의 방식대로 갔어야 하니까. 윙 플레이는 사실 아시아에서나 통하지, 키들이 겁나게 큰 유럽과 상대할 때는 별 위력이 없다. 지금은 몹시 삐져 있겠지만, 코엘류를 불러서 청소년 유망주들을 장기간 맡도록 하면, 그래서 그가 원하는 팀 컬러를 만들어 보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당장이야 힘들겠지만, 십년 후에 뭔가를 이루려면 그렇게 해야지 않을까? 2년 전에야 감독을 영입해서 성적을 내라면 벼락치기밖에 더하겠는가? 그래서 난 주장한다. 코엘류는 무죄라고. 결과는 나빴을지언정, 그가 가려는 방향은 옳았다고.
피에스: 형들을 따라서 그러는지, 평소 형보다 나은 성적을 거두던 청소년팀도 이라크에 3-0으로 지더니 엊그제 태국과 1-1로 겨우 비기고 8강에 올라갔단다. 형만한 아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