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인가 미국 대통령이던 레이건이 저격당한 적이 있다. 심장을 비껴나가 죽진 않았는데, 범인은 힝클리라는 젊은 남자였다. 그는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의 스토커였는데, 그녀에게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를 만나주지 않으면 레이건 대통령을 암살하겠다”

그가 진짜로 그럴 줄은 조디 포스터도 몰랐겠지만,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우리나라라면 ‘불고지죄’로 구속되었을게다.


비슷한 시절, 우리 누나 친구가 다니던 여고는 담장 하나 사이로 남자 고등학교가 위치해 있었다. 고교 시절이면 한창 피가 끓는 때, 남자애들은 허구한 날 담장 밖으로 편지를 써서 던지곤 했다. 대부분이 “사랑한다” “한번 만나자” 따위의 유치한 구절이었지만, 그중 한 편지는 엄청난 히트를 했다.

“나를 만나주지 않는다면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겠다”

그 정도의 유머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못이기는 척하고 만나줘도 되었지 않았을까.


이건 다른 얘긴데, 힝클리가 레이건을 저격하기 전 꽤 유명한 심령술사가 FBI에 제보를 했단다. “몇월에 대통령이 저격당하는데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물론 FBI는 헛소리로 치부하고 신경도 안썼는데, 진짜로 레이건이 총을 맞자 경호팀에 그 얘기를 했다. 경호팀에선 그 얘기를 미리 해주지 않았다고 불같이 화를 냈는데, 글쎄다. 니네 같으면 믿었겠니?


그 일로 명성을 얻은 심령술사는 가만히 앉아서 명성을 유지하는 대신, 또다fms 예언을 했다. “올해 9월이나 10월쯤 외국 군복을 입은 사람이 대통령을 암살한다고” 물론 레이건은 멀쩡했다. 그 대신 엉뚱하게도 이집트의 대통령이던 사다트가 극렬분자-이스라엘과 사이좋게 지내는 걸 반대하는-의 총을 맞고 죽었는데, 암살범이 외국 군복을 입고 있었으니 전혀 틀린 건 아니다. 심령술사로 봐서는 정말 다행이지 않는가.


한가지 의문. “언제 누가 암살된다”고 예언을 했다고 치자. 갑자기 몇배로 늘어난 경호원들 때문에 암살범이 암살기도를 포기했다면,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예언은 맞은 걸까, 틀린 걸까. 그리고, 그런 예언을 한 사람이라면 자기 심복 중 하나를 암살범으로 둔갑시켜 저격을 기도하게 하지 않을까. 자신의 주가가 오른다면 심복의 뒤는 확실히 봐줄 수가 있으니까 말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도사를 자처하는 사람이 나타나 “어디어디에 사람이 묻혀있다”는 예언을 했다. 정말로 사람이 있었고, 그는 구출되었다. 그 뒤 그는 여러번 예언을 했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그사람의 성공 이후 전국의 도사들이 다 현장에 몰려와 “여길 파봐라” “저길 파봐라”라며 난리를 피우는 바람에 현장 발굴이 훨씬 더 어려워졌다. 무시하기도 찝찝하고 그렇다고 따르기도 난감한 예언을 해댄 그 도사들, 그들은 정말로 뭔가가 있어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 현장으로 간 걸까. 그 사람들 중 아무 곳이나 찍어서 운좋게 사람을 구해낸다면 자신의 명성이 올라가리라는 생각을 했던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몇 년 전 이인제와 이회창 중 하나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여론이 지배적일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점쟁이 한분이 이런 놀라운 말을 했다. “다음 대통령은 이씨 중에서 나올 것이다!” 그사람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갑자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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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후사 2004-09-26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재밌네요. 그래서 추천.

깍두기 2004-09-26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요즘 <세상은 언제나 금요일은 아니지>를 읽고 있어요. 자꾸 마태님 생각이 나네요. 왜일까요?
1.유머의 방식이 서로 비슷해서
2.미인을 좋아해서
뭐라고 생각합니까?ㅎㅎㅎ

플라시보 2004-09-26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언이라는게요. 일단 입 밖으로 나오면 그때부터는 예언과는 상황이 달라진다고 하더라구요. 예언이 어디까지나 몰랐을 경우에 한해서인데 님 말씀처럼 예언을 들어서 경호를 늘인다고 하면 그건 이미 예언의 이전 상황과는 달라져버리는 것이죠. 그래서 과거는 맞춰도 미래는 추측하기가 힘들대요. 이미 일어난 사건에 변수는 없지만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은 버터플라이 이펙트처럼 작은 하나의 조건이 큰 변화를 부를 수 있으니까요^^

stella.K 2004-09-26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는 아니지만, 자가 예언이란 게 있는 것 같긴해요. 갑자기 누군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으면 그에게서 전화가 오든가, 만나게되는 뭐 그런 거. 암튼 이 글 재밌네요. 대통령이 이씨에게서 나온다. 전, 90년대 중반에 김씨가 대통령이되서 얼마나 기뻤는데요.나중에 빛 좋은 개살구라는 거 뼈저리게게 깨달았지만. 저도 추천해요.^^

부리 2004-09-26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마태가 추천해 주셔서 감사드린답니다. 마태가 요즘 계속 30위 밖으로 밀려나니 우울한 모양이예요. 우리 돈이라도 걷어 줘야겠어요^^
플라시보님/프, 플라시보님, 님의 풍부한 학식에 그저 고개를 숙일 수밖에요...꾸벅.
깍두기님/호어스트에 비하면 마태의 유머는 애들 장난 수준이죠^^ 그렇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에피메테우스님/시공을 오가면서 추천을 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