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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50년대편 1권 - 6.25 전쟁에서 4.19 전야까지 ㅣ 한국 현대사 산책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사 산책> 시리즈를 읽으면서 마음이 짠했다. 수난으로 점철된 역사건만, 즐거운 일이 이리도 없었던가 싶을 정도로. 그 중에서도 50년대는 수난의 결정판이라고 해야 할 듯 싶다. 우리 선배님들,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 우리나라가 유독 부정부패가 심하고, 보신주의와 기회주의가 만연한다면, 그 뿌리는 한국전쟁을 비롯한 50년대의 수난에 있을 것이다. 정직하게 살아서는 굶주림에 허덕여야 했던 그 시절에 부정부패가 창궐하지 않는다면, 줄을 잘못 서면 영락없이 ‘골로 가는’ 세상에서 기회주의가 만연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것이다. 예컨대 다음 대목을 보자.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오지 않는가.
[등나무를 칡뿌리로 잘못알고 벗겨먹다 27명이 중독된 사건이...죽산국민학교에서는 학생 922명중 210명이 하루에 한끼를, 135명이 하루 두끼를 굶고 있었는데, 이 학교 교장은 결식아동용으로 배급된 분유를 자기 집 돼지 사료로 먹였다는 게 밝혀졌다 (3권 145쪽)]
난 이 책을 이승만을 국부로 떠받드는 사람들-조선일보의 이한우 기자를 비롯해서-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을 보고 있자니 어떻게 이승만이 국부일 수 있는가 회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50년대의 한국은 진정한 국가가 아니었으며,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승만에게 있었다. 60년 85세의 나이로 4선에 도전해 역사에 남을 부정선거를 자행한 것을 비롯해서, 초대 대통령을 잘못 앉힌 것에 대한 댓가는 너무도 컸다. 지도자가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잣대로 삼는다면 그 정권은 결코 잘될 수 없다. 이승만이 그랬다. 예컨대 56년 선거에서 이승만이 순전히 폼으로 불출마를 선언했을 때, 당시 유행하던 관제데모가 일어나 이승만의 출마를 권유했다. 흐뭇하게 시위를 바라보던 이승만의 말이다.
“외국에서는 선거 때가 되면 돌아다니며 해달라고 운동을 하지만, 나는 안나오겠으니 들어달라고 간청하니 우리의 민주주의가 높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3권 30쪽)”
하지만 부통령 선거에서 이기붕이 낙선하고 장면이 되자 이승만의 태도는 돌변한다.
“나는 과거에 민중의 인텔리젠쓰, 즉 명철을 믿어왔던 것이나 지금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이번 선거 결과를 보면 친일하는 사람과 용공주의자들을 지지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3권 41쪽)”
이승만은 이렇듯 자기중심적이었고, 그건 결국 인의 장막을 만들어 스스로의 눈과 귀를 가렸다. 아무리 그가 미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웠다 해도, 그는 그전에 체득했던 봉건적인 습속을 전혀 바꾸지 못했던 거다.
이승만도 문제지만, 주위 사람들도 문제였다. 이승만이 방귀를 뀌었을 때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했던 이익홍은 내무장관이 되고, 공보처장 갈홍기는 “이승만은 예수나 석가처럼 아무런 나도 없고 어떠한 ‘사’도 없이...”라는 낯뜨거운 아첨을 해댔다. 그건 박종화를 비롯한 문인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권의 부패에 맞선 언론이 있었기에 민중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 당시의 신문들은 광고 수입이 30%밖에 되지 않았기에 정권에 대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고, 정권에 비판적인 신문은 부수가 크게 올라갔다고 한다. 친일의 전력과 더불어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데 앞장섰던 신문들이 ‘비판언론’을 자임하며 언론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오늘날은 민주주의와 진보에 대한 희망을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까?
어느덧 <현대사 산책> 시리즈를 60년대만 빼고는 다 읽은 것 같다. 이제 무슨 재미로 살아야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성실함’이 무기인 강준만의 노고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