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6월 6일 (일)
마신 양: 생맥주 왕창--> 소주, 취해서 잠깐 졸기까지...
소재에 목마른 사람에겐 모든 일이 다 소재로 보이듯이, 내게 있어서는 친구의 어떤 제안도 다 술로 귀결된다. 저녁을 먹자는, 어찌보면 지극히 평범한 말도 내게는 "술한잔 하자"는 말로 들린다. 야구를 보러가자는 제안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많은 관중을 끌어들이는 기아-엘지전을 보러 야구장에 갔다. 예전에는 야구장에 갈 때마다 팩소주를 사가지고 가든지, 아니면 빈 물병에 소주를 가득 채워서 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난번에 야구장에 갔을 때, 야구장 내에서 생맥주를 컵에 담아서 파는 걸 확인했기 때문.
그간 야구장에 술 반입이 안됐던 것은 술에 취한 사람들이 행패를 부렸던 어두운 과거에서 기인한다. 특히 밤경기처럼 누가 사고를 쳐도 잘 안보이는 경우에는 그런 일이 더더욱 빈번했다. 오래전 고교야구가 인기 절정이던 시절 야구장에 갔는데, 근처에 있던 응원단간에 감정 대립이 있었다. 급기야 그들은 가지고 있던 것을 던지면서 싸웠는데, 병들이 위아래로 날라 다니는 모습은 매우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걸 보면서 난 "저 많은 소주를 다 마셨단 말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엘지와 해태가 맞붙었던 어느날, 해태가 개박살이 나자 흥분한 관중들이 뭔가를 던졌다. 다른 건 다 이해한다. 하지만 어떻게 국물이 들어있는 사발면을 던지나. 난 용케 안맞았지만, 낙하지점에 있던 관중은 옷을 다 버린 채, 위를 보면서 험악한 동작을 취했다. "어떤 xx야?" 두산 경기를 볼 때, 엘지가 일방적으로 이겨서 관중이 많이 빠져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 간간히 비가 내렸었는데, 술에 취한 게 확실한 관중 한명이 위에서 계속 비닐우산을 쪼개서 던지는 거다. 다들 피하는 와중에 나 혼자만 남아-우산으로 막으면서-경기를 끝까지 봤는데, 그런 사태가 벌어지는데 청원경찰은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다. 미국 야구를 보다보니 경기를 방해하는 관중은-예컨대 경기장에 난입하거나 플라이볼을 건드리는 등-가차없이 끌려나가던데...
하여간 그런 슬픈 역사 때문에 야구장에 술 반입이 안되었던 거지만, 이제 컵으로나마 맥주를 파는 걸 보니 팬들의 관전의식이 좀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난 경기장 내에서 떳떳하게 맥주를 마신다. 몇잔째인가를 사는데 뒤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이러신다. "쟤 좀 봐, 또마셔!" 후후, 내가 취해서 행패라도 부릴까 걱정하시는 모양이다. 술에 취하면다들 괴물로 변하지만, 내가 부리는 꼬장이라봐야 기껏해야 자는 것밖에 더있나. 대충 6잔 정도 마신 것 같고, 나가서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를 마셨더니 아주아주 기분이 좋았다. 어제 하루는 그렇게 흘러갔다. 술과 야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