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타란티노의 <킬빌>을 보지 않았다. 1편을 보고나면 2편이 기다려질까봐서다. 얼마 전, <킬빌 2>가 개봉되었다. 그래서 난 지난 일요일 비디오로 킬빌 1을 보고, 영화로 2편을 보자는 깜찍한 아이디어를 세웠다. 하지만 시간이 안맞는 바람에 영화 보는 건 다음으로 미루고 1편만 비디오로 봤는데, 어찌나 재미있던지 안봤으면 후회할 뻔했다. 타란티노.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그의 영화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우마 서먼, 남들은 그녀가 몸매가 죽이니, 미모가 뛰어나니 하는 말들을 하던데, 난 잘 모르겠다. 눈이 풀려 보이는 여자는 안젤리나 졸리로 족하다. 그녀 대신 난 미녀삼총사에 나왔던 루시 류를 더 좋아하는데, 악당 두목으로 변신한 그녀는 여전히 이뻤다.

영화 내용에 대해서는 남들이 한번씩 다 썼을테니 딱 한 대목에 대해서만 쓰겠다. 보스의 윤리에 관한 거. 복수를 위해 루시 류의 회식자리에 온 우마 서먼, 그녀의 목적은 단지 루시 류를 죽이는 거였다. 류는 처음에 보디가드들을 잔뜩 내보내지만, 우마서먼의 현란한 칼솜씨에 모두 쓰러진다. 실력이 보통이 아닌 걸 알았다면 자신이 나서야 할테지만, 류는 자신의 에이스 보디가드인 고고를 내보낸다. 표정부터가 심상치 않은 고고는-<배틀로얄>에서도 나왔다고 하는데, 분위기가 있어 보인다-쇠공을 휘두르며 우마서먼을 위기로 몰아넣지만, 마무리가 부족해 역습을 당하며 죽고 만다. 이 대목이 아쉬운 부분이다. 루시 류가 그토록 아꼈다면 혹시라도 자신이 질 가능성에 대비, 살려뒀어야 하는 게 아닌가. 류가 죽고 나서도 조직은 굴러가야 하니까. 좋다. 이것도 그냥 이해하자. 루시 류한테 우마서먼이 한판 뜨자고 할 때, 차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나더니 류의 부하들 수십명-한 88명은 되어 보였다-이 떼로 몰려온다. 초고수에게는 인해전술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상식적인 얘기, 진정한 보스라면 '너희들 상대가 아니야. 물러서!'라고 했어야 한다. 하지만 류는 싸늘하게 웃으면서 부하들의 족수를 믿어 버리는데, 결과는 물론 전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의 죽음은 개죽음일 뿐이다. 류만 죽인다면, 어쩔 수 없을 때만 살생을 하는 것으로 전형화된 주인공인 우마 서먼은 그들을 내버려두고 자신의 갈길을 떠날 것이었다. 바퀴벌레가 쎄다지만 아무리 떼로 몰려와도 나한테 당해낼 수는 없다.....아니다. 바퀴벌레는 좀 그러니 개미로 바꾸자. 개미 300마리가 몰려온다 해도 내가 눈하나 까딱할까? 한번에 수십마리씩 열 번 밟으면 끝난다. 이런 허무한 죽음, 루시 류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조직을 절딴내 버린 것이다. 보스는 이래서는 안된다. 힘을 빼게 해서 싸울 때 좀 유리해 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겠지만, 그 조그마한 실리에 비해 희생이 너무 크지 않았는가? 자신의 안위보다 조직의 안전을 더 생각하는 보스, 그런 보스야말로 제대로 된 보스인 것이다.

킬빌 2를 본 사람 중 호평을 쓴 사람이 별로 없다. 어떤 분의 말에 의하면 킬빌 2에서, 주인공이 복수를 결행한 동기나 그밖의 일들이 너무 보잘 것 없어 웃음만 나왔다고 한다. 속편이 1편보다 재미없는 일은 너무 흔한 얘기지만, 이 영화만큼 그런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게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매트릭스 2>가 재미 없다고 안볼 수는 없는 노릇, 보잘 것 없는 동기라 할지라도 난 보고야 말 생각이다. 학문적 호기심을 이렇게 가졌다면 운명이 달라졌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만 집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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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nyside 2004-05-19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마태우스님 말씀 들으니 일리가 있군요. 조직에 위해한 말 한마디를 했다는 이유로, 부하의 목을 베어버리는 보스였건만. 훨씬 큰 위협 앞에선 부하들을 모조리 희생시켰네요.
허나 영화 만드는 타란티노로선 어쩔 수 없었을 거에요. 그의 영화는 마치 전자 오락 같거든요. 끝도 없이 몰려오는 잔챙이 적들을 죽여야 겨우 보스가 나오는 겜을 한 판 할 수 있습니다. 중간 보스가 나오는 겜을 몇 판 더 끝내야 겨우 '빌'을 만날 수 있겠죠. ^^

sweetmagic 2004-05-19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직 킬빌을 못 봤습니다. 무삭제판 구하면 그때 보려구요 ^^ 가위질 된 거 싫어요.
특히 킬빌 한국판은 가위질이 많이 되었다던데.... 일본판이라도 구해 보려구요...자막도 같이..언어가 자유롭지 못 한게 참 한스러워요....학문적 호기심을 이렇게 가졌다면 운명이 달라졌겠지만에 처절한 동감 ㅠ.ㅠ;;;;;;;;;;;;;;;;;;;;

마태우스 2004-05-19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nnyside님/님의 말씀을 듣고보니 영화라서 그런 것 같군요. 하여간 어찌나 피가 튀고 그러는지, 속이 좀 울렁거리기까지 했어요.
sweetmagic님/어머나, 제 서재에 와주시다니. 반갑습니다. 전 무삭제판은 못볼 것 같습니다....

H 2004-05-30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쿠리야마 치야키... 그녀

배틀로얄에서
내 존재를 걸고 널 부정하겠어 라고 말한 육상부 애 아니였나요???